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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ug 19. 2023

옐로 스톤은 정말 노란가요?

옐로 스톤


1805년 이전에도 옐로스톤은 'Rock Yellow River'이라고 불렸다. 옐로 스톤에는 '그랜드 캐년'이라는 이름의 폭포가 있는데, 이 폭포 옆 사암 절벽이 당시 탐험가들에게는 노란색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진짜 노란색같은가? 보고 또 봤다. 붉은색과 연한 황톳빛이 섞여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보면 대충 '노란색' 이라고 정의할 법도 했다.


1850년대에 로키 산맥을 건너 서부로 향했던 개척자들이 옐로 스톤을 지났을 때 그들은 부글부글 끓는 진흙과, 형형색색의 강,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화석화된 새들을 봤다. '금보다 쏠쏠할 것 같은' 옐로스톤에서 본 것들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서부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동부로 돌아갔다. 아마 금보다 더 돈벌이가 됐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부 사람들의 반응은 "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 수 없소." 였다.


하지만 이런 보고들이 계속 이어졌는지 1871년 미국 정부는 하이든 지질 탐사대 Hayden Geological Survey를 파견한다. 지금도 바이슨을 흔히 볼 수 있어서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관찰하러 가는 Hayden Vally도 첫 탐사대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 사진사와 화가도 동행했던 탐사대는 미신 같았던 그곳이 실제 존재하는 곳임을 밝혔다. 그리고 1872년 3월 1일 옐로 스톤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넓이는 8987 제곱 킬로미터. 남북으로는 102킬로미터, 동서로 87킬로미터 뻗어있다. 심지어 델라웨어주보다 넓다. 옐로스톤은 세 주에 걸쳐있다. 96퍼센트는 와이오밍주, 3 퍼센터는 몬타나 주, 1퍼센트는 아이다호 주다.


그 옛날 탐험가들은 빈 가방 무게만으로 50파운드, 그러니까 20킬로그램은 넘는 가방 안에 맛도 없는 육포와 견과류와 상하지 않게 수분을 뺀 비스킷을 가방에 넣고, 가죽으로 만든 물통 안에 물을 넣고 옐로 스톤으로 왔다. 날이 더울 때는 가죽 물통 속의 물은 절절 끓어서 면도 삶을 정도였다고 한다.


노트와 펜을 손에 들고 쌍안경을 보며 길을 잃지 않게 지도를 그려가며 다녔고, 바이슨이나 곰에게 해코지당하지 않게 총을 늘 지니고 다녔음은 물론이다. 호텔도 없던 시절이니 텐트를 치고 침낭을 가지고 다녔고, 삽으로 땅을 파고 길을 만들어야 할 때면 도끼로 나무도 베어야 했다. 높은 산을 넘어야 할 때는 필요한 로프도 필요했다. 이 모든 짐이 지금처럼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가벼운 소재도 아니었고 바이슨이나 늑대나 여우 가죽이었으니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짐을 실어주는 나귀 없이는 불가능한 여행이었을 거다.


2023년 옐로 스톤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은 자동차에 머핀과 사과와 초콜릿과 어쨌든 맛있는 음식을 잔뜩 가지고, 펜과 노트 대신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지도는 직접 만들 필요 없이 미리 다운로드한 구글맵이나 국립공원에서 받은 지도를 펴고, 나귀 대신 자동차에 모든 걸 싣고 다닌다. 정말 편안한 여행 아닌가! 그런데 몸살이 웬 말이람. 고지대라 그런 건지 그랜드 테턴 에서부터 무리를 해서인지 둘 다인지.


옐로 스톤에서 3박 4일의 일정은 몸살과 함께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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