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로소피아 Sep 06. 2024

왜 미국 엄마들의 육아가 더 수월해 보일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왜 서양 부모들은 기본이 애 셋일까? 육아가 안 힘들까?"


결혼을 하고 나서 내 주위를 관찰하며, 꽤 오랫동안 나 혼자 궁금해하고 생각했던 질문이다.


"육아가 안 힘들까?"는 어리석은 질문이다. 대학원을 다닐 때, 쌍둥이 아빠가 된 백인 동료의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보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육아는 정말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엄마들이 아시안 엄마들보다 평균적으로 육아를 더 수월하게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워킹맘을 이해하는 조직 문화"를 이유로 생각하기에는 같은 나라, 같은 직업군, 같은 직장 안에서도 차이가 나서 이것 하나만으로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직장 동료, 지인, 동네 이웃들과 일상 얘기를 나누면서 최근 몇 가지 이유가 보이는 듯하다.


첫 번째: 상상을 초월하는 남다른 체력

어릴 때부터 워낙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 걸까, 미국 엄마들의 체력은 남다르다. 룸메이트와 함께 살던 대학생 시절, 내 체력이 100% 방전될 때 내 룸메이트 체력은 20% 정도만 소모된 것 같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몸은 날씬해도 속은 무쇠인 사람들이 참 많다. 장을 보러 갈 때, 애 둘을 양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친구 애기 한 명 번쩍 드는 것도 나는 힘들던데...
대학교 룸메이트였던 내 친구는 최근 제왕절개로 셋째 딸은 낳은 지 5일 만에 첫째 딸 생일 파티에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지 1개월 된 셋째와 함께 모터보트를 타고 있는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내 머리로는 이해 못 하겠지만, 이런 엄청난 회복력과 오래가는 배터리 같은 체력을 가진 미국 엄마들이 많다.


두 번째: 청소, 요리, 살림, 위생에 대한 낮은 기준치

전반적으로 서양 엄마들은 청소, 요리, 살림, 위생에 대한 기준치가 높지 않다. 돈이 있으면 그냥 청소 업체를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할 만큼 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신발 신고 실내에서 생활하는 문화인데 뭘 그렇게 열심히 쓸고 닦을까 싶긴 하다.

한 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단체 피크닉에 여자 동료 한 명이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들을 데리고 왔다. 아들이 유모차에서 버둥거리니 아기를 그냥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놓고 기어 다니게 하는 게 아닌가. 뭐 이상한 거 먹지 않는 이상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요리 또한 대충 해서 먹는다. 특히나 미국식 요리는 굽거나 찌는 음식이라 불 앞에 서있는 일이 많이 없다. 이유식도 별거 없다. 그리고 식기세척기로 설거지한다.


냉동 음식도 많이 사서 먹는다. 직장 동료들 보면 전자레인지에 덥혀 먹는 냉동식품이나 전날 먹고 남은 음식을 유리용기에 담아와서 한 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손 많이 가는 음식은 사 먹는다.


세 번째: 자취 경험 있어 살림할 줄 알고,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들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이다 보니, 사람들은 결혼 전에 대부분 자취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남녀노소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을 할 정도의 살림을 할 줄 안다. 이런 사람들이 부모가 되니, 둘 다 가사노동이 가능하다.


내 직장 남자 동료는 자기가 아침에 자녀들 도시락을 싼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두 번째 포인트로 돌아가서, 들어보니 이 도시락도 대충 만든다.


살림 외에도 아빠의 육아 참여도가 굉장히 높다.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주말 스케줄 대부분이 애들 액티비티 따라다니는 거다 (도대체 그 에너자이저 같은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아빠가 육아를 '도와준다는'게 아니라 '당연히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받는다.
연휴에 갔던 리조트 수영장에서 아빠들이 아이들과 놀아 주는 걸 많이 봤다.

네 번째: 가깝게 살고 운전할 줄 알아서 어린이집에서 손주를 픽업해 주는 조부모

많은 미국 사람들(특히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가족들이 대부분 근처에 산다.


은퇴를 앞두고 자식이 사는 동네 근처로 이사 오는 노부부들도 많이 본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비행기 3시간 거리 대신 운전 15-30분 거리를 택하는 것이다.


나랑 친한 이웃 할머니 또한 근처에 딸이 사는데, 그 할머니의 중요한 일과는 오후에 손녀들을 어린이집에서 자기 차로 픽업해서 한두 시간 정도 본인 집에서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딸이나 사위가 퇴근하면서 할머니 집에 들러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매일 하루종일 조부모가 손주를 보는 경우는 못 봤지만, 이렇게 퇴근 때나 주말에 손주를 맡아주는 조부모들을 많이 봤다.

은퇴 후 무료할 수 있는 시골 일상에서 손주들이 조부모들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 같다.


이 글에 달린 댓글들이 내가 옛날에 즐겨했던 포켓몬스터 같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을 떠올리게 했다.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의 체력(HP)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HP를 복구시켜 주는 마법의 물약(포션)을 먹이거나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 해야 게임을 계속할 수 있었다.


1번 체력이 빵빵해서 HP가 0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이 많은데, 심지어 HP를 복구시킬 포션(가사노동에는 시간 덜 쓰고, 함께 육아하는 남편과 가족)까지 많이 있으면, 육아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1번 체력이 부족해도,  2-4번 중 필요한 포션을 먹을 수 있다면 HP가 0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HP도 낮은데 포션까지 없다면 너무 지칠 것 같다. 육아는 게임오버도 없고 리셋도 없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K과자맛을 따라 하는 미국 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