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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피아 Feb 19. 2024

매일 공짜로 남이 만들어 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이유

'남'편이 타준 커피도 '남'이 타준 커피다 

최근 인터넷 포털에서 한 여행 유튜버가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는 이유를 설명한 재미있는 짤을 보았다. 그 이유는 '똑같은 커피도 내가 타서 마시는 거보다 남이 타준 커피가 더 맛있어서'이다. 진심으로 동의 한다.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 학생시절, 커피의 맛과 향이 좋아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몇 달 동안 매 주말마다 티, 커피, 카페운영에 관한 수업을 듣기 위해 집 근처 바리스타 학원에 다녔다. 평일 이른 아침에는 학원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종종 방문해 커피 만드는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 한때 이렇게 노력을 했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커피를 사 먹으러 카페에 잘 가지 않는다.


카페에 잘 가지 않게 된 첫 번째 이유로는 내가 충분히 집에서 맛있는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두 본연의 향과 맛을 느끼기 좋은 핸드드립 커피를 선호하는데, 내가 사는 시골동네에서는 핸드드립 커피를 찾기도 어렵고, 있다 한들 가격이 합리적이지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집에서도 남이 타준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남'은 내 '남'편이다.


연애시절 때부터 나는 내가 가진 커피에 대한 지식을 꾸준히 남편에게 전수했다. 처음에는 이론적인 부분에서 시작해 점차 실습으로 넘어갔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커피를 좋아하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감사하게도 그는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커피 만들기는 일종의 과학이다. 좋은 품질의 원두를 알맞은 굵기로 갈아 정해진 양의 물을 일정 시간 동안 부으면 된다. 구체적으로 원두와 물의 무게를 1:16의 비율로 잡고 천천히 2분 안에 물을 다 부어야 한다. 이 방식을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내 입맛에 맞는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 수 있다. 덕분에 커피는 다 쓰다는 남편도 카페에서 파는 것 같은 드립커피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 밀크티까지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홈바리스타 남편 덕분에 아침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남이 타주는 커피와 밀크티를 마실 수 있게 되니 카페에 가질 않게 된다. 이건 소소하지만 매일 만날 수 있는 내 하루의 즐거움이다. 집안 가계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보너스.

집에서 남이 타준 커피와 함께 즐기는 치즈케이크

유튜브에 '결혼은 좋다'라고 검색해 보니 나오는 영상이 없다. 분명 '결혼은 좋다'라고 검색했는데 뜨는 영상이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거라는 사람들에게 - 조만간 암에 걸리실 겁니다'이다. 검색 결과를 보고있으니 '결혼에 이렇게 좋은 점이 하나도 없나?' 싶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결혼생활에 묵직한 한방의 즐거움이 매일 있을 수는 없지만, 매일의 일상에 소소하게 존재하고 있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마치 남편이 타주는 커피 한잔처럼.


이 소소한 즐거움들이 모여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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