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로소피아 Aug 17. 2024

셀프 배달의 민족, 미국

2톤 트럭 운전해서 가구 배달하기

최근 몇 년 동안 사고 싶었으나 찾지 못했던 스타일의 소파를 미국의 집안용품 할인상점인 홈굿즈(HomeGoods)에서 발견했다! 흰색 가죽에 등받이 높이를 조절할 수 있고 성인 한 명이 충분히 누울 수 있는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소파. 가격도 35% 할인되었다.

심봤다.

오늘 사지 않으면 내일은 물건이 사라지는 홈굿즈라서, 점원을 불러 나 이거 찜하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배달시키고 싶은데 비용이 얼마예요?"라고 물어봤다 (참고로 미국은 '가구를 구입하면 배달과 설치는 무료'라는 개념이 대부분 없다). 직원이 말했다.

우리는 유료 배달 서비스도 없어요. 님이 알아서 집에 들고 가야 함^^.


아, 이럴 때 노동력을 돈으로 사려고 월급 받고 일하는 건데... 여긴 돈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순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원빈이 했던 대사가 생각났다.

추억의 가을동화 (캡쳐 출처: 라이프 스타일 유튜브 채널)

"우리 차 트렁크에는 소파를 실을 수가 없는데, 배달 서비스가 없다고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데요?"라고 물어보니, 직원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5분 거리에 있는 홈디포에 가서 트럭을 빌리면 돼요. 실는 건 우리가 도와줄 테니 돈 워리.


트럭을 빌려서 230cm가 넘는 일체형 소파를 셀프 배달해서 집안으로 옮기는 건 식은 죽 먹기인가 보다.


소파를 안 사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기에, 어떻게 하면 둘이서 이걸 옮길 수 있을까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렸다. 남편이 핸드트럭이랑 레일이 포함되어 있는 트럭을 빌리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젠 못 먹어도 고다.


홈디포(The Home Depot)에 갔다. 주차장에 첫 75분 렌탈비가 19달러라는 싸인이 붙어있는 홈디포 1톤 트럭이 바로 보였다. 집 관리 때문에 홈디포에 자주 가는데 왜 이런 렌탈 서비스가 있는지 몰랐을까? 사람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만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문제는 홈디포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흐리기만 하고 내일부터 비 온다더니...

비 오는 날 오픈 트럭은 무용지물이다. 홈디포 직원에게 트렁크를 닫을 수 있는 트럭이 필요하다고 하니, 펜스키(Penske)라는 회사에 전화해서 홈디포 주차장에 있는 펜스키 트럭 한 대를 렌탈하라고 알려줬다. 오늘 처음 알게 된 펜스키란 회사에 전화를 하니, 상담원이 지금 빌릴 수 있는 제일 작은 트럭이 2톤짜리라고 한다. 그래서 결국 2톤 트럭 한 대를 빌리기로 했다.

중간에 있는 노란색 트럭 적재량이 2톤인데, 양옆에 있는 트럭들은 도대체 몇 톤짜리일까?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우리가 2톤 트럭을 몰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트렁크'란 단어가 적합하지 않은 적재함 내부가 무슨 방 하나 사이즈다.

우리 집 살림을 다 넣을 수 있을 거 같은 적재함 내부와 생각보다 작았던 핸드트럭.

렌탈용이라 운전자석과 보조석에는 최소한의 기능만 있었다. 기어도 차 핸들 옆에 붙어있었는데, 스틱을 위아래로 조정하는 거였다. 옛날 버스 운전사분이 조정했던 스틱 기어 느낌이랄까. SUV도 시야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2톤 트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차들이 경차같이 작게 느껴진다.


남편이 시속 30km로 출발하기 시작하는데, 체감은 60km 같았다. 긴장한 탓에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앞만 보며 홈굿즈로 갔다.

레어뷰 미러로 뒤를 전혀 볼 수 없는데 왜 있는 걸까.

홈굿즈에 도착하니 직원 두 명이 소파를 가뿐하게 들어 척척척 레일을 걸어 올라가 1분 만에 적재함에 안착시킨다. 누가 보면 스티로폼으로 만든 소파인 줄 알겠다. 타고난 DNA가 다른 건지, 백인 직원들의 힘은 언제나 놀랍다.

포장 따윈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소파.

집에 도착했는데도 계속 비가 온다. 우선은 적재함 문을 열고, 레일을 내려보기 시작한다. 레일을 적재함 끝부분에 걸칠 수 있는데, 레일 경사가 생각보다 많이 높아서 무서웠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홈굿즈 직원들은 깃털같이 가볍게 든 소파였는데, 막상 옮기려고 보니 소파가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머릿속에 그린 시나리오대로 핸드트럭을 소파 아래로 넣어 봤는데, 소파 다리가 문제다. 나중에 결국 드라이버로 다리를 분해하고 집안에서 다시 조립했다. 핸드트럭도 생각보다 작다. 아, 총체적 난국이다.

 생각처럼 한 번에 안된다.

소파가 무거우니 트럭에서 현관문까지 1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가 1km처럼 멀게 느껴졌다. 심지어 가죽이라 비를 맞으면 안 되는데, 저 큰걸 어떻게 비를 안 맞게 할지 적재함안에 털썩 앉아 또 고민했다.


문득 우리 부엌에서 사용하는 비닐랩이 떠올랐다! 부엌에서 랩을 가져와 소파의 윗부분에서 바닥아랫부분까지 칭칭 감는 것을 무한 반복하니, 그럴듯하게 포장이 됐다. 대형 소파를 옮겨본 경험으로 이 Glad 랩 강추한다. 방수효과가 제대로다.

랩을 감지 않았으면 소파가 망가질 뻔 했다.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리다가 집으로 소파를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는 사진이고 뭐고 없다. 분명 1분 만에 옮겨진 소파였는데, 우리 둘이 거실까지 (모든 아이디어를 총 동원하여) 소파를 옮기려니 몇십 분이 걸렸다. 내가 더 힘만 셌어도 더 빨리 했을 텐데, 내가 1인분의 힘이 안되니 남편이 2인분의 몫을 해야 해서 굉장히 고생했다 (이 순간만은 당신이 어벤저스!)


팁 아닌 팁이라면, 실내에서 무거운 가구를 옮길 때 가구 아래에 큰 천을 깔고 당기면 무거워도 옮길 수는 있다.  

집으로 입성. 영혼이 탈탈 털렸다.

지금은 이 소파에 누워 브런치를 쓰면서,  그 비 오던 날의 노동이 준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아, 그래도 돈으로 서비스를 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미국 Z세대 남학생 패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