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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피아 Dec 30. 2023

열명의 친구와 함께한 우리의 결혼식 이야기

결혼식장이 아니라 테마파크에서.

우리 부부는 미국에 살지만 가족과 친지들이 다 한국에 계시기 때문에 메인 결혼식은 한국에서 간소하게 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니 오랫동안 못 봤던 친척들을 보게 되어 좋았는데 미국에 사는 내 친구들을 초대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결국 결혼식이란 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반려자를 소개하며 "우리의 시작을 너희와 함께 하고 싶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벤트 아닌가.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남편과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미국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 중 하나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친구들과 하루 제대로 놀기로 했다.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가기 쉽지 않은 테마파크이고 이곳에는 해리포터월드도 있고 어른을 위한 스릴감 있는 놀이기구들이 많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타려면 주말에는 각 놀이기구마다 1-3시간 이상의 줄을 서야 한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비행기 타고 오는 친구들을 저렇게 기다리게 하기는 싫어서 테마파크에서 제공해 주는 VIP패키지를 쓰기로 했다. 테마파크 직원이 8시간 동안 가이드를 해주며 최적의 동선으로 인기 놀이기구를 줄 설 필요 없이 바로 타게 해 준다. 심지어 아침과 점심까지 포함되니 식당 예약에 대한 걱정도 한시름 덜 수 있다. 물론 당연히 가격이 싸진 않았지만 우리의 최대 예산에 맞았다. VIP 패키지에 인원제한이 있어서 우리 둘이 합쳐 최대 10명의 친구를 초대할 수 있었고 당연히 누구에게 연락할까 신중히 고민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있는 해리포터 호그와트성

하루를 놀아도 여행시간까지 2박 3일이 필요하다. 시간을 충분히 두고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패키지를 예약을 한 뒤 내가 초대하고 싶은 6명의 친구들한테 전화를 했다. 나의 절친이며 이들은 우리 부부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내 남편에게도 이미 내적친밀감이 있는 사람들이랄까. 아이 엄마인 친구들도 있다. "XX야, 미안한데 인원제한상 가족이 올 수 없을 거 같아. 네가 못 와도 이해하는데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어." 친구들이 말한다, "남편이랑 상의해 볼게." 한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남편이 휴가 내고 자기가 애기 볼 테니까 갔다 오래." 또 다른 친구도 답을 해준다. "유니버설에서 노는 건 힘든데 남편이 나 먼저 전날 가서 너랑 시간 보내고 있으면 나중에 자기가 애기 데리고 오겠대." (친구들의 남편분들과도 이미 오랫동안 알고 지내긴 했다). 한창 레지던트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는데 병원에 말해서 미리 휴가를 내놓는다고 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놀기로 한 주말 전 금요일, 친구들이 하나둘씩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직장인 친구들은 휴가를 내고, 애기 엄마들은 남편이 애를 봐주고, 애 둘 아빠도 아내가 놀고 오라고 해서 애가 생긴 후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왔다. 우리까지 총 12명의 직장인, 애 엄마, 애 아빠가 동시에 2박 3일 시간을 내서 한 곳에 모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과 나는 우리 서로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초대받은 사람들도 서로가 초면일 텐데 잘 지내줘서 초대한 사람으로서 고마웠다.


다음날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없는 체력을 끌어올리며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를 불태웠다. 그 다음날에는 늦잠을 자고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들 바빠지니 또 언제 이런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싶다. 나중에 결산을 해보니 총 $4,500 (580만 원)을 썼는데 우리 보겠다고 몇 달 전부터 스케줄을 조율하고 비행기표랑 호텔 예약해서 온 사람들에게 쓰는 돈은 지금 생각해도 단 한 푼도 아깝지가 않다. 진심으로 그저 와주는 게 선물인데 같이 있는 동안 밥 한 끼는 자기들이 돈을 모아 사주고 축의금과 선물을 준다.

내 인생에 중요했던 사람들이 내 결혼을 축하해 주러 와서 먹는 밥값은 아깝지가 않다. 그저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갔음 좋겠다. 결국 결혼식이 다 끝나고 남는 기억은 '사람'인것 같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결혼식장의 꽃장식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지만 너와 내가 한 공간에서 우리부부의 시작을 축하하며 쌓은 친밀감과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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