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소비쟁이가 투자보다 먼저 해야 할 일 1
나는 "수도사와 장관"이란 우화를 좋아한다.
베스트 프렌드였던 두 남자아이는 성장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하나는 소박한 수도사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왕을 섬기는 부유하고 강력한 장관이 되었다. 몇 년 후, 그들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고급 의복을 입었으나 살찐 장관은 가난하고 남루한 수도사를 불쌍하게 여겼다. 도움을 주고자 그는 말했다. '너도 왕의 비위를 맞추는 법을 배운다면, 쌀과 콩만 먹으며 지내지 않아도 될 텐데.' 이에 수도사는 답했다. '너도 쌀과 콩으로만 살 수 있다면, 왕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될 텐데.' ( J.L. Collins, The Simple Path to Wealth에서 발취)
대부분의 우리는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속한다.
요즘 재테크에 관한 책들이 참으로 많다. '어떻게 성공적으로 투자를 해서 빠른 시간 안에 부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주제는 매혹적이다.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는 서적들을 읽어보면 내가 모르는 많은 정보가 있고 그중에는 유용한 정보도 많이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많은 책들이 어떻게 돈을 아껴서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뿐, 이 과정을 겪을 때 갖고 있으면 도움이 될만한 가치관과 마음 가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투자는 어렵다. 돈을 불리는 것도 어렵고 가진 돈을 지키는 것 또한 어렵다. 이 어려운 투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한 가지는 인내심이다. 한마디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두 가지 상태 중에 하나라도 해당되는 것이다: (1) 자산의 가치가 하락해도 수중에 가진 돈이 많아서 기다릴 수 있는 상태 (2) 자산의 가치가 하락해도 당장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이 적어서 기다릴 수 있는 상태. 첫 번째보다는 매 달 필요한 돈을 적게 만드는 두 번째가 더 실현 가능하다. 아낄수록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이 적어진다.
다만 ‘돈을 아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으면 사람들은 허리띠를 확 졸라맨다. 다이어트 시작할 때 저칼로리 식단 먹고 매일 운동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마음을 딱 먹고 꾸준하게 실천하면 최고지만, 절대 쉽지 않다. 돈을 아끼겠다는 일념으로 소비욕구를 계속 억제하다 보면, 타고난 소비쟁이는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스트레스 많은 인생은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아끼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지갑이 열린다. 마치 다이어트를 하다가 폭식으로 요요가 오듯이.
타고난 소비쟁이가 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돈을 절약하려면 자신의 가치관과 마음 상태를 한번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한 사람의 가치관과 마음 상태는 그 사람의 소비 패턴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비쟁이는 수도사보다는 장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소박한 수도사의 그것에 가까워지게 할수록, 돈을 절약해야 하는 강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관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만약 본인의 가치관을 바꾸고 싶은 의향이 있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투자를 하고 싶다면 나는 내 집/공간 정리 정돈이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지영 정리컨설턴트의 책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 드립니다'는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리팁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저자는 정리정돈의 시작은 '비우기'라고 강조한다. 효과적인 비우기를 위해서 저자는 자신의 고객의 짐을 모두 꺼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짐을 꺼낼 때 종류별로 한 곳에 모두 모은다. 예를 들어 집에 있는 모든 책을 꺼내서 한 곳에 놓고, 모든 옷을 꺼내서 한 곳에 모은다. 이렇게 하고 나면 고객들이 '내가 이렇게 물건이 많았다니!'하고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종류별로 모인 짐들을 보며 내가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남겨야 할지에 대해 감을 잡는다고 한다. 이 방법은 돈을 들여 정리컨설턴트를 고용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하루는 옷을 모두 꺼내 정리하고, 또 하루는 신발, 또 하루는 전자용품을 모두 꺼내서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중고로 팔면 된다. 또 다른 정리컨설턴트 마리에 콘도는 의류-책-서류-소품-추억이 깃든 물건 순서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을 권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고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는 과정을 통해 소비욕구를 줄일 수 있다. 물건을 덜 소유해도 괜찮은 마음 상태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수도사에 가까워진다.
나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물건들만 가지고 살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을 사람들은 '미니멀 라이프'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밥공기 한 개, 컵 한 개, 수건 한 개 같이 아주 적은 양의 물건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간다.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완벽한 수도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활 방식도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다. 다만 넘쳐나는 물건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언인지 알고 그 외에 소중하지 않은 물건을 줄여야 한다는 가치관에 동의한다.
나의 공간을 정리 정돈할수록 '우리의 인생에는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은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항공사에서도 여행 가방 두 개면 장기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 않는가. 에세이 '퇴사하겠습니다'를 쓴 이나가키 에미코는 '없으면 못 사는 것'들을 줄일수록 돈이 덜 필요해졌고 본인 안에 있는 '회사 의존도'가 낮아졌다고 했다. 낮은 회사 의존도 덕에 그녀는 이전보다 더 즐겁게 회사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불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원들은 언젠가는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을 꿈꾸며 일한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식공부, 부동산 공부보다 우선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항상 고급의복과 맛있는 음식이 많이 필요하다면 우화의 장관처럼 오랫동안 왕의 비위를 맞춰야 할지도 모른다.
추천도서: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 드립니다 (이지영 지음)
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