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다. 특출 난 능력이나 기술은 없다. 취재를 잘 하지만 월등하진 않다. 글도 고만고만 쓰지만 감동을 주진 못한다. 금융과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전문가에 비할 건 또 아니다. 난 쉽게 호기심을 느끼고, 쉽게 포기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다. 이것저것 찔러보며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육아에도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일 말고 나의 일을 하고 싶었다.
난 무엇을 잘 알까? 그리고 나의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내가 항상 하지만 남들은 하지 못하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람 만나는 일
나는 꽤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체 직장인을 감안하면 상위 5% 이내일 거다. 또 대부분 사람을 '처음' 만난다. 이메일, 전화, 페이스북 메시지 등으로 데면데면한 인사를 건너고 미팅을 잡았다. 가끔 어색한 기류에 휩싸인 채 미팅이 끝나기도 하지만, 나는 대체로 그 만남이 좋았다. 산업 내 인사이트를 듣거나, 다시 만날 약속을 잡거나, 즐거운 잡담을 나눴다. 많은 기자는 그래서 "사람만 만나고 기사만 안 쓰면 좋겠다"라고 말도 안 되는 희망을 말한다.
아기가 아이가 되고, 아이는 학생이 된다. 그러면서 인간관계는 넓어진다. 엄마와 아빠에서 친척으로,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들로. 교수님과 선후배,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그런데 직장인이 되면서 우리는 변화를 맞는다. '지인의 고인물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친구를 기본 그룹으로, 그리고 직장 내 동료 및 선후배가 서브 그룹이 된다. 이직을 했다면, 전 회사 지인이 또 하나의 그룹이 된다. 그러나 이 그룹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 속으로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어찌 됐건 적극적인 직장인이 아니라면 지인의 풀(Pool)은 한정되고, 또 조금씩 줄어들게 된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등 쓰리 콤보는 '지인의 사슬'을 녹슬게 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만날 기회를 만드는 일
핏줄은 사람을 잇는 가장 강력한 매개다. 사랑의 감정은 그다음이다. 그 뒤를 일과 놀이가 잇는다. 혈연이 아닌 이상에야 우리는 구실이 있어야 사람을 만날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그 구실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은 구체적인 목적과 의도를 두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구실은 찾아진다. 그러나 그 첫 번째 매듭이 어렵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그냥 만나자"가 안 되는 거다.
이 지점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근처 직장인끼리 만나서 점심을 먹는다면?
점심 식사란 구실로 서로 만나면 어떻게 될까? 분위기가 어색할까? 서로 어느 수준의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나이대가 이런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을까? 그리고 이런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까?
그냥 해보기로 했다. '린하게'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8월, 구글 폼으로 등록 서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블로그, 페이스북 그룹 등에 글을 올렸다. 초기에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이 관심을 보였다. 9월에 100여 명의 직장인이 등록했다. 그리고 몇 번의 모임을 강남에서 진행했다. 난 모든 모임에 참석했다. 직접 보고 싶었다. 피드백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다른 회사,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좋다.
가끔씩 갈만한 모임이다.
몇 천 원의 비용은 부담되지 않는다.
일단 가설은 어느 정도 확인되었다. 직장인은 새로운 직장인 친구를 만나기 원하나 기회가 없었고, 점심에 나가 가볍게 만나는 건 좋다. 물론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한 피드백은 긍정적인 피드백보다 많았다.
시간이 너무 짧다.
한 번 만남으로 끝나니 아쉽다.
누가 언제 올 지 몰라 불편하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일
'직장인 네트워킹 런치'의 풀(Pool) 규모는 12월 현재 500여 명 이상으로 커졌다. 강남역, 선릉역, 역삼역, 삼성역, 을지로역, 광화문역, 판교역, 여의도역 근처에서 여러 차례의 '네트워킹 런치'를 진행했다. 이 경험을 거치며 이 사이드 프로젝트가 나아갈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네트워킹 런치가 약한 연결을 위한 것이라면, 더 강한 연결만을 위한 모임도 필요해 보였다. 또, 점심 모임 전과 후, 사람들 간의 연결이 더 선명하도록 몇 가지 장치를 더해야 할 필요성도 드러났다.
최근엔 <쉘위잇 Shall We Eat?>이란 애초 프로젝트의 이름을 <회사_밖>으로 바꾸었다. 좀 더 직관적인 이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할 마케터와 디자이너, 그리고 개발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본다. 언제든 연락 주었으면 좋겠다.
회사_밖
회사_밖는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네트워킹 런치 프로젝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강남, 여의도, 을지로, 판교 등을 중심으로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직장인끼리의 점심을 매칭 하는 프로젝트죠. 아래 링크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쉘위잇이 고른 맛집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특별한 만남을 선사합니다. 우리 프로젝트는 향후 직장인들의 아침과 저녁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도 진행하려 해요.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