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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쇼츠 Mar 03. 2017

아이가 든 토르의 망치

쌍둥이 아들 둘이 태어나면서 우리 집의 가사는 크게 늘었습니다. 신혼 땐 그야말로 널널했습니다.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요리를 해도 뒷처리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빨래가 아무리 쌓여도 부담되진 않았죠. 그저 한가로운 주말, 세탁기를 돌리고 널면 그만이었습니다.


쌍둥이는 마치 '토르'처럼 망치를 휘둘러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 안에 번개 한 번, 거실에 번개 한 번, 주방에 번 개 한 번이면, 아내와 나는 한참의 시간을 들여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쌍둥이의 망치는 치우는 동안에도 어디선가 일을 벌입니다.


육아가 시작된 2015년엔 딱히 분업이랄 게 없었습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일은 많았고, 손은 적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육아가 손에 익고, 아이들이 자라 시간의 여유가 생긴 이후에야 분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건 최근이었습니다.


집안일 가운데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꽤 명확히 나뉘어 있었습니다. 나는 설거지와 손빨래, 그리고 청소기 돌리는 것은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반대로 아내는 이 세 가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싫어하는 장난감 정리나 빨래개기를 아내는 어렵지 않게 합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이 얘기가 오고 간 이후로는 분업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난 설거지를 하고, 아내는 방을 정리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발길은 자신의 일이 있는 쪽으로 향합니다.


"내가"를 주창하는 아이들


24개월이 지나자 아이들도 가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귀여울 뿐입니다.)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자신의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입니다. 쌍둥이는 동그랗게 말린 기저귀를 어디선가 구해 옵니다. 그리고 엄마나 아빠 한 명을 쓰레기통까지 끌고갑니다. 그리고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 안에 기저귀를 집어넣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칭찬을 한몸에 한껏 받으면 '기저귀 버리기 프로젝트'는 끝이 납니다. 칭찬이 흡족하면 이 프로젝트는 반복됩니다.


25개월차에 흥미를 보이는 가사일 중 하나는 나눠주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약 나눠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건강보조제를 직접 한 개, 두 개씩 꺼내어 내 손 위에 올려줍니다. 그리고 약을 삼켜 먹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다 먹고 나서야 아이들은 자신의 일이 끝난 마냥 약통을 반납합니다.


아직까지 그들의 노력이 도움(?)이 되진 않지만, 24개월이란 긴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신도 무엇인가 참여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모두 그러할까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 얻는 쾌감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이 입을 뗀 후 "내가"라는 말을 수 많은 다른 단어보다 앞서 터득합니다. 어른이 되서도 주체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불쑥 나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교육이나 업무는 "내가 하겠습니다"를 장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욕구를 누르고 기계의 부품처럼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나는 오늘도 "내가"하겠다는 아이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엉망진창이 될 집을 걱정함과 동시에 토르처럼 성장할 아이들의 미래가 설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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