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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쇼츠 Mar 02. 2017

어느 날 갑자기, 육아 투잡

2015년 1월 8일, 나는 하나의 직업을 새로 얻었습니다. 천직(天職)이었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빠입니다. 쌍둥이는 나에게 10개월이란 긴 준비 시간을 주었지만, 나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는요. 사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물건'만 사놓았을 뿐이었습니다. '물건'보다 '마음'을 준비해야 했다는 것은 한참의 육아를 겪고 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별안간 시작된 나의 투잡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업무의 강도로 보자면 '기자'보단 '육아'가 훨씬 높았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아는 힘들었고, 그래서 정신없었습니다. 이 글을 쌍둥이가 24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쓰는 것도 그 '정신없음' 때문입니다.


아빠는 엄마보다 느립니다. 엄마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하는 그 순간부터 엄마가 되지만, 아빠는 눈앞에 마주한 생명을 보고, 안고, 키우면서 '진짜 아빠'가 됩니다.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 나는 기뻤지만 그 기쁨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아빠들에겐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지금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입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사랑은 더 깊어집니다. 아이들의 특별함을 느끼고,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생명의 신비를 알아가면서 나는 뒤늦게 출생의 기쁨과 재회했습니다. '얘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는데, 그때마다 드는 불편한 감정은 그만큼 아이를 얻은 행복이 커졌음을 방증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서적인 일과 가장 이성적인 일


나의 투잡 생활의 시작은 고단했습니다. 두 아이는 모유수유를 했고, 아내는 젖몸살을 앓았습니다. 밤은 낮보다 바빴고, 나와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쪽잠과 쪽잠이 이어졌습니다. 첫 몇 개월의 밤은 그렇게 지났습니다. 쌍둥이 아들 둘은 번갈아 엄마의 젖을 물었습니다. 아이는 배고프면 울었고, 배가 부르면 잠을 잤습니다. 자는 아이의 얼굴은 천사였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면 정신은 몽롱했습니다. 노트북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그제야 잠이 깼습니다. 젖내 나는 따뜻한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향할 때면 기자 일과 육아의 경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서적인 일, 육아와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인 일, 취재를 동시에 하면서 나는 마치 두 개의 세상을 사는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투잡이 시작됐지만 나의 스케줄은 오히려 더 단순해졌습니다. 기자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그리고 남은 시간 모두와 주말은 육아를 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오롯이 거의 대부분을 시간을 쌍둥이를 위해 사용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습니다. 아이가 둘이기에 적어도 어른 둘이 있어야 그 둘을 울리지 않고 보살필 수 있었습니다.


취재는 사색을 바탕으로 합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유의미한 것을 추리고, 취재 방향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만 이후의 작업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기자의 일이지만, 실제 기자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됩니다.


반면 육아는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수 십 가지의 일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수유를 하고, 젖병을 삶고, 빨래를 하고, 아이와 놀고, 재우고, 달래는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쌍둥이니 두 가지의 일이 겹치기도 합니다. 육아의 일은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두 가지의 천직


두 직장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게 줍니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천직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이 내게 준 천직입니다.


맞벌이가 흔해진 지금, 육아를 책임지는 전업주부의 가치가 저평가받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육아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매일매일 바뀌는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세심한 관찰과 대응이 필요한데, 그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생계를 위해 부와 모 둘 모두가 긴 시간 아이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결국에 우리 공동체의 손실입니다.


남과 여, 아빠와 엄마가 모두 일할 수 있는 사회도 좋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배운 것들을 활용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회사를 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아이는 엄마도 사랑하고, 아빠도 사랑합니다. 부모라는 천직을 무탈하게 해낼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절실합니다. 육아를 일임하는 엄마 혹은 아빠가 공동체의 한 직장인으로서 충분한 보상과 지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오늘도 첫 번째 직장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두 번째 직장의 일을 시작합니다. 나의 상사 쌍둥이는 어김없이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합니다. 가끔 생떼를 피우는 상사이지만, 이 세상 이보다 사랑스러운 상사도 없습니다.



FACT CHECK

(1) 아빠도 육아 휴직을 많이 하나요?

: 2016년 기준 전체 육아휴직자 중 아빠의 비율은 8.5%입니다. 2015년 5.6%보단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습니다.


(2) 우리나라 아빠는 얼마나 자녀와 시간을 보내나요?

: 2016년 발표된 'OECD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아빠는 자녀들과 평균 6분을 보낸다고 합니다. OECD 34개국 가운데 최하위입니다. OECD 평균은 47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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