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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쇼츠 Mar 14. 2017

아이가 태어난 후 달라진 풍경

달라졌습니다.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꽤나 '시니컬'했습니다. 합리적이지만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인 나는 세상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보려 항상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일정 부분 나의 본성이었고, 일정 부분 나의 세계관이었습니다. 엄마의 품 속에 안긴 아기나 뛰노는 아이들을 봐도 별 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 세상 속 나는 수많은 부품 중 하나였고, 나는 그 기계가 부조리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비판적인 시각은 내가 기자가 되게 한 데에도 영향을 미쳤죠.


조금은 방어적인, 조금은 감정적인, 그러나 많이 이성적인, 많이 객관적인 사람으로 나는 나를 정의하곤 했습니다. 이런 캐릭터는 나의 20대를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쉽게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변합니다. 청년의 운동가가 나이가 들어 보수의 아이콘이 되는 것처럼, 미친 듯 일하던 젊은 사업가가 낭만 여행가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나에게 그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는 '쌍둥이 아들 둘'입니다.


아이의 부모는 다른 아이를 어여쁘게 봅니다. 그들은 나의 아이와 이 세상을 살아갈 동반자들입니다. 그들이 우리 아이처럼 다른 이에게 행복을 주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활력을 줍니다. 여느 사업가나 자원봉사자보다 더 선하고 많은 일을 아이들은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몸짓과 웃음소리, 심지어 울음소리마저 긍정의 에너지입니다.


여느 사람에게는 민폐로 여겨지는 아이들의 과한(?) 행동마저도 아이의 부모가 되면 이해하게 됩니다. 아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놀이동산'처럼 새롭고 신기할 뿐입니다. 두근거린 가슴을 안고 경험하고 싶은 아이의 행동은 이제 나에게 사랑스럽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아이들이 다니기 안전한 곳인지 살피게 됩니다. 마트에 가면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아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면 그 안의 엄마와 아이들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아이들이 커가기에 좋은지 관찰하게 됩니다.


달라진 풍경만큼 이제 나는 과거보다 더 밝은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아이들의 풍부한 감정을 몸으로 느끼면서 이 아이들에게 더 밝은 미래가 있길 바라면서 나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보기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좋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경험해야 할 것들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혼재한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내 아이들도 그 길을 걷고 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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