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치녀였다
나는 김치녀였다.
재벌가에 시집간 고모가 있었는데
집안의 모든 여자들이 그녀를 동경하고 부러워했다.
‘여자는 시집을 잘 가야 해!’
할머니는 어린 나를 안고
‘열두대문 달린 집에 금송아지 우는 집에..’ 시집가라는 노래를 불러 주시곤 했는데
자연히 그런 내 눈에 사업을 하며 자기 영역을 키우느라 고군분투하며 살림은 뒷전인 엄마의 삶은 바보 같고 거지같이 보였다.
외모나 가꿔 돈 많은 남자어깨에 좀 기대 살려던 꿈을 한동안 꾸며 살았는데 그런 삶은 내 운명이 아니었는지 내 운명은 돈 많은 자린고비, 다정한 무능력자같은
백마 타고 온 왕자가 아니라 경운기 타고 온 왕자, 수레를 끌고 다니는, 왕자라 하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왕궁으로 가서 시중을 받기보다 경운기라도 끌고 온 게 어디냐며 발을 씻어라, 수레를 밀어라 하는 상대들뿐이었고 단물을 좀 빨아먹으려다 영혼까지 탈수기로 탈탈 털리기 일쑤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홀로서기를 한 게 아니라 삶이 나를 홀로 설 수밖에 없이 밀어붙였다.
정신 차려 보니 반지하에 빚에, 앙상히 홀로 남겨진 거다.
부모님 단물을 빨 때 캐나다에 몇 년 머문 경력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투자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는데 뭘 알지도 못하고 남의 말만 듣다 말아먹고 사기당하길 몇 번.. 그냥 죽자 하고 손목을 그었지만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더라.. 하얀 옷을 입고 병원침대에 누워 ‘ㅅㅂ! 살자! 살 거면 ㅅㅂ 제대로 한번 살자!’했다.
그리고는 돈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내 마인드가 쓰레기였다는 걸 딱 깨달은 거다.
그걸 고쳐먹어야 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는 삶의 실타래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안거다.
나는 건강해졌을 뿐 아니라 반백이 넘어 몸짱이 됐고 전 세계를 넘나드는 투자자가 되었으며 작가가 되고 강사가 됐다.
이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사는 삶보다 넘어지든 깨지든 자신의 삶을 살고 가꾸고 투쟁하는 엄마의 삶을 더 존경하고 동경한다.
삶이 힘들고 마음대로 안된다면 삶이 내게 가르쳐주려는 게 있어서다. 아주아주 힘들다면 배울 게 아주아주 많다는 뜻이다.
그걸 아픔으로 받아들이면 삶이 저주가 되지만 배울 자세를 가지면 삶은 경이로움이 된다.
나는 삶을 감사와 존경으로 바라보게 됐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아직은 배울 게 더 많다는 걸 알지만 이젠 호기심 어린 눈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여유를 갖게 됐다.
Try me!…
그 어려운 걸 이기고 새로 태어났으니 다가 올 파도도 잘 넘을 거다.
잘 넘지 못해도 된다. 그땐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