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네피림의 감옥

프로젝트 네피림

by 머니이룸

1. 백진우 (The First Nephilim)

[시점: 2051년 4월 4일 새벽 1시 15분. 부산 해운대 폐허]

바람이 차가웠다.

하지만 우리는 춥지 않았다.

500명의 거인.

우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43도의 체열이 주변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젖은 몸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쉬익... 쉬익...

마치 500개의 활화산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열 화상 카메라로 보면.

우리는 밤하늘에 떠 있는 500개의 붉은 점.

온도: 43℃.

주변 기온: 8℃ (새벽).

온도 차: 35℃.

열 신호가 강렬했다.

인공위성에서도 보일 정도.

발밑은 진흙탕이었다.

건물 잔해.

뒤집힌 자동차.

부러진 가로수.

그리고 자주색 남세균 덩어리들이 뒤엉켜 악취를 풍겼다.

썩은 달걀 냄새.

황화수소.

농도: 50ppm (위험 수준).

하지만 우리는 괜찮았다.

강화된 간.

해독 효소.

실시간 분해.

나는 등 뒤에 남아 있던 수트의 잔해를 마저 뜯어냈다.

철컥. 툭.

1.2톤의 쇳덩어리가 진흙 위로 떨어졌다.

철썩.

진흙이 튀었다.

이제 나도 그들과 똑같이 맨몸이었다.

벌거벗은 채.

340kg 거인.

키: 원래 195cm였는데...

지금은?

나는 옆에 선 42번을 올려다봤다.

그의 시선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 차이: 약 1미터.

나는 자랐다.

해일 속에서.

고농도 산소를 마시면서.

뼈가 더 자랐다.

키 2미터 10cm.

체중 380kg.

하지만 내 주변에 선 500명에 비하면 나는 오히려 작은 편이었다.

그들은 평균 3미터였다.

최소: 2.8미터.

최대: 3.5미터 (42번).

평균: 3.0미터.

평균 체중: 300kg.

"형제여."

가장 거대한 사내.

피험자 42번.

아니, 이제 번호가 아니다.

"...이름이 뭐야?"

내가 물었다.

"42번."

"아니, 진짜 이름. 캡슐에 들어가기 전 이름."

그가 잠시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었다.

약물로 흐릿해진 기억.

"...강민준."

"민준이형."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강민준의 목소리.

불안은 없었다.

다만, 갓 태어난 맹수처럼 방향을 묻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귓바퀴의 통신기를 켰다.

초소형 무선 이어폰.

방수 설계.

해일에도 살아남았다.

"선호야."

지지직-

"어, 듣고 있어."

선호의 목소리.

벙커에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타닥타닥타닥.

"위성 사진 띄웠어. 부산 해안가는 완전히 지워졌어."

"해운대구 사망자 추산: 47,000명."

"수영구: 23,000명."

"남구: 18,000명."

"총 88,000명 이상."

"시신 수습 불가. 자주색 독성 바닷물에 잠겨 있어."

"지옥이야."

침묵.

"우리가 살길은."

내가 물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선호의 목소리가 건조해졌다.

숫자를 다루는 회계사의 목소리.

감정 배제.

팩트만.

"첫째, 식량."

"너희들의 대사량은... 괴물이야."

"일반인 기초대사량: 1,500kcal/day."

"너희: 8,200kcal/day."

"5.5배."

"500명 × 8,200kcal = 일일 410만 킬로칼로리."

"쌀로 환산하면: 하루 1,200kg 필요."

"지금 너희 몸속에 저장된 글리코겐..."

선호가 계산했다.

"일반인 글리코겐 저장량: 500g (2,000kcal)."

"너희: 약 2,000g (8,000kcal)."

"하지만 대사량이 높으니까..."

"길어야 24시간이면 바닥나."

"그 뒤엔 근육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쓰게 될 거고."

"일주일이면 근력 50% 감소."

"2주면 보행 불가."

"3주면..."

"아사(餓死)해."

나는 배를 만졌다.

이미 배가 고팠다.

해일과 싸우면서.

천장을 부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위가 비어 있었다.

꼬르륵...

장이 울렸다.

"둘째, 군대."

선호가 계속했다.

"해일이 내륙 깊숙이는 못 갔어."

"침수 범위: 해안선에서 최대 3km."

"대구에 있는 제2작전사령부는 건재해."

"거기서 전국 육군 지휘해."

"윤기호는 죽었지만, 군 지휘부는 살아 있어."

"그리고 너희가 탈출했다는 걸 알았어."

"어떻게?"

"위성. 열상 인식(Thermal Imaging)."

"너희 체온 43도야. 야간에 눈에 확 띄어."

"지금 무장 헬기 편대가 해운대로 날아가고 있어."

"AH-64E 아파치 가디언 4대."

"30mm 체인건 + 헬파이어 미사일."

"도착까지 5분."

식량 부족.

그리고 군대의 포위망.

지하 5층의 유리 캡슐은 부쉈지만.

세상 전체가 여전히 우리를 가두는 거대한 '감옥(Prison)'이었다.

식량이 없으면 굶어 죽고.

싸우지 않으면 총 맞아 죽는 감옥.

"방법은 하나뿐이야."

내가 거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500쌍의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파란 빛.

달빛을 반사하는 눈동자.

"선호야. 아까 말한 '에덴(Eden)'의 좌표. 내 렌즈로 띄워."

잠깐.

렌즈?

나는 렌즈를 끼고 있지 않다.

수트를 벗으면서 다 벗겨졌다.

"아, 미안. 렌즈 없지."

선호가 말했다.

"구두로 알려줄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청와대 본관 지하 150미터."

"국가 1급 스마트팜 시설."

"코드명: 에덴(Eden)."

"면적: 50,000m² (축구장 7개)."

"재배 작물: 쌀, 밀, 감자, 각종 채소."

"일일 생산량: 쌀 5,000kg."

"충분해?"

나는 계산했다.

500명 × 하루 쌀 2.4kg = 1,200kg.

에덴 생산량: 5,000kg.

4배 여유.

"충분해."

"하지만."

선호가 경고했다.

"거긴 군사 요새야."

"지상: 청와대 경호처 + 수도방위사령부."

"지하: 대통령 전시 지휘소 + 특수전사령부."

"병력 추산: 5,000명."

"뚫을 수 있겠어?"

"어차피 굴어 죽어."

내가 대답했다.

"탄수화물이 있는 곳은 거기뿐이잖아."

나는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위로 올라섰다.

높이 3미터.

가장 높은 곳.

500명의 형제들을 내려다봤다.

달빛이 그들의 근육을 비췄다.

티타늄 골격 위의 강철 근육.

"들어라!"

내 목소리가 폐허의 밤공기를 갈랐다.

울렸다.

500명에게 전달됐다.

"정부는 우리를 배터리로 쓰려 했다!"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뿜어내는 열과 이산화탄소로 벼를 키우고!"

"그 쌀을 자기들 입에 쳐넣으려 했다!"

"우리는 죽어갔고!"

"그들은 살을 찌웠다!"

거인들의 눈동자에 파란 불꽃이 일렁였다.

분노였다.

주먹이 쥐어졌다.

우드득.

뼈마디 소리.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가슴을 쳤다.

쿵!

"가벼워진 이 행성이 부서지지 않게 붙잡고 있는 닻이다!"

"이 지구가 우리의 힘을 원했다!"

나는 주먹을 쥐어 하늘 위, 거대한 슈퍼문을 가리켰다.

붉은 달.

14% 더 큰 달.

"북쪽으로 400킬로미터!"

팔을 북쪽으로 뻗었다.

"서울의 심장부 지하에!"

"우리를 위한 무한한 식량과 안식처가 있다!"

"'에덴(Eden)'!"

"우리가 내쉬는 숨으로 그곳을 지배할 것이다!"

"에덴..."

강민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들이 우리를 막을 것이다."

"총과 대포로 우리를 죽이려 할 것이다."

"어떻게 할 텐가?"

내가 물었다.

강민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

3.5미터 거구.

팔뚝 둘레: 70cm.

주먹 크기: 농구공.

우드득득득.

뼈마디에서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부순다."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부순다!"

"부숴버린다!"

500명의 거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우오오오오!

그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진동.

지진파처럼.

진흙 바닥이 떨렸다.

우우웅...

그때였다.

투투투투투투-

남쪽 밤하늘.

헬리콥터 로터 소리.

멀리서.

점점 가까워졌다.

탐조등.

강렬한 흰색 빛.

폐허를 훑었다.

건물 잔해.

자동차.

시신.

그리고.

우리.

500명의 거인.

빛이 우리를 정조준했다.

눈이 부셨다.

쉬이익.

나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선호야, 왔어."

"AH-64E 아파치 가디언 개량형."

"4대."

"무장: M230 체인건 30mm +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조심해!"

헬기 4대가 우리 위 200m 고도에서 호버링했다.

투투투투투...

로터 소리가 귀를 때렸다.

헬기 아랫배에서 확성기가 켜졌다.

삐이익-

기계적인 음성.

[경고한다.]

[신체 변이자 전원.]

[제자리에 엎드려라.]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저항을 포기하라.]

[10초 내에 불응 시 전원 사살하겠다.]

[10.]

[9.]

[8.]

"엎드릴까?"

강민준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의 입가엔 기괴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웃고 있었다.

비웃음.

"아니."

나는 바닥을 굽어보았다.

해일에 휩쓸려 부서진 해안도로.

그곳에 굴러다니는 아파트 외벽의 잔해들.

강철 철근이 박힌 콘크리트 덩어리들.

무게: 500kg ~ 1톤.

크기: 50cm ~ 1m.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리에겐 대공포(Anti-Air Artillery)가 500문이나 있다."

내 말의 뜻을 이해한 거인들이 일제히 몸을 숙였다.

500명.

동시에.

그들의 거대한 손이 진흙 속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움켜쥐었다.

우드득.

[7.]

[6.]

[5.]

거인들이 허리를 숙였다.

던질 자세.

포환던지기.

육상 선수처럼.

[4.]

[3.]

팔을 뒤로 당겼다.

[2.]

[1.]

[사격 개시!]

드르르르르르륵!

아파치 헬기 4대의 30mm M230 체인건이 불을 뿜었다.

발사 속도: 분당 625발.

초당 10발 이상.

빗발치는 예광탄.

붉은 궤적을 그리며 쏟아졌다.

챙! 카강! 팅! 콰앙!

콘크리트 바닥이 폭발했다.

진흙이 튀었다.

거인들 주변에.

퍽! 퍽! 챙!

하지만 거인들은 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팔을 들어 머리와 가슴을 가렸을 뿐이다.

티타늄으로 채워진 골밀도 +15.0.

그리고 그 뼈를 덮고 있는 고밀도의 근육.

근육 밀도: 일반인의 1.5배.

탄성: 고무처럼.

30mm 철갑탄.

관통력: 25mm 강철판.

하지만.

퍽!

근육을 파고들었다.

5cm 깊이.

챙!

뼈에 부딪혔다.

팅!

튕겨 나갔다.

피가 튀었다.

뚝... 뚝...

하지만.

그들을 쓰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치명상이 아니었다.

몇 명이 팔에.

어깨에.

허벅지에.

총상.

하지만 서 있었다.

무릎 꿇지 않았다.

"던져!"

내가 소리쳤다.

500명의 거인이 동시에.

허리를 뒤로 젖혔다가.

슈우우웅-

앞으로 튕겨냈다.

전신의 힘.

다리 근육.

허리 회전.

어깨.

팔.

손목 스냅.

모든 힘이 콘크리트 덩어리에 실렸다.

거인 1명 투척력: 약 500kg 물체를 초속 50m.

운동 에너지 = 1/2 × 500kg × (50m/s)²

E = 625,000 J

625킬로줄.

수류탄 폭발 에너지: 400kJ.

그보다 강하다.

500개.

슈우우우웅-

수백 개의 500kg~1톤짜리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공기를 찢으며 밤하늘로 솟구쳤다.

포물선을 그리는 투석기의 돌이 아니었다.

각도: 거의 수직.

70도.

80도.

직선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이었다.

초속 50m.

시속 180km.

"뭐, 뭐야 저게!"

헬기 조종사의 다급한 무전이 하늘을 울렸다.

"회피! 회피!"

아파치 헬기들이 급기동했다.

좌측으로.

우측으로.

상승.

하지만.

콰아아앙!

하늘을 뒤덮은 콘크리트 비.

500개.

동시에.

회피 불가.

선두에 있던 아파치 헬기 1번기.

메인 로터(프로펠러)에.

1톤짜리 콘크리트 덩어리가.

쾅!

직격.

챙그르르륵!

프로펠러 날개 박살.

균형 상실.

위이이잉-

회전.

빙글빙글.

삐빅! 삐빅!

경고음.

"추락한다! 비상 탈출!"

조종사 비상 탈출 시도.

하지만 고도 200m.

너무 낮다.

콰아아앙!

자주색 바다로 추락.

풍덩! 쾅!

폭발.

불길.

2번기.

꼬리 날개에 콘크리트 덩어리 명중.

쾅!

꼬리 로터 파괴.

방향 제어 불가.

위이이잉-

제자리 회전.

빙글빙글빙글.

"으악!"

쾅!

건물 잔해에 충돌.

폭발.

3번기, 4번기.

콘크리트 파편 무수히 명중.

기체 손상.

경고등 난무.

"철수! 철수!"

"목표물... 목표물이 인간이 아니다!"

"30mm가 안 박힌다!"

"근력 측정 불가!"

"1톤 물체를 200m 상공까지 투척!"

"이건... 이건 괴물이다!"

공포에 질린 보고와 함께.

남은 헬기 2대가 꽁무니를 빼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투투투투투-

점점 멀어지는 로터 소리.

전투는 90초 만에 끝났다.

총알을 맞은 거인 27명이 피를 흘렸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상처는 이미 무서운 속도로 아물고 있었다.

혈소판 응고.

섬유소 형성.

30초 만에 딱지.

우리는 추락해 불타는 헬기의 파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붉은 불길.

검은 연기.

"진우야."

선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장되어 있었다.

"방금 그 교전 데이터."

"헬기 블랙박스에서 실시간 송신됐어."

"군 지휘부로 고스란히 넘어갔어."

"영상도, 음성도, 센서 데이터도."

"이제 그들은 너희를 '구조 대상'이나 '환자'로 보지 않아."

선호가 숨을 삼켰다.

"'국가 전복 세력'으로 규정했어."

"국가비상사태 선포."

"계엄령 검토 중."

"전군 비상 1호 발령."

침묵.

"상관없어."

내가 진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육군, 공군, 다 오라고 해."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북쪽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비추는 경부고속도로의 잔해.

해일에 파괴된 도로.

하지만 걸을 수는 있다.

그 길 끝에.

400km 북쪽에.

우리가 원하는 탄수화물과.

이 미친 세상을 통제하는 권력의 심장이 있다.

"형제들이여."

내가 앞장서며 손을 치켜들었다.

"400킬로미터."

팔을 북쪽으로 뻗었다.

"목적지는 에덴이다."

"진격한다!"

쿵. 쿵. 쿵.

500명의 거인들이 발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보폭: 2미터.

속도: 시속 8km (빠른 걸음).

400km ÷ 8km/h = 50시간.

2일.

대한민국을 종단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겁고 파괴적인 행군이 시작되었다.

150톤의 행군.

500명 × 300kg = 150톤.

쿵. 쿵. 쿵. 쿵.

발걸음이 대지를 울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7장 질량 결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