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질량 결손

프로젝트 네피림

by 머니이룸

1. 백진우 (The First Nephilim)

[시점: 2051년 4월 3일 밤 11시 58분. 제7 핵융합 발전소 B5F]

"일어나라, 형제여."

거인의 거대한 손이 내게 내밀어졌다.

손바닥 크기: 30cm.

내 얼굴만 했다.

손가락 두께: 5cm.

강철 파이프 같았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우드득.

악력.

강철 벤치를 구부릴 수 있는 힘.

하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조심스럽게.

마치 계란을 다루듯.

철퍽.

나는 1.2톤의 고철이 되어버린 수트에서 빠져나왔다.

팔을 빼고.

다리를 빼고.

수트가 허물처럼 벗겨졌다.

340kg 거인의 몸.

벌거벗은 채.

물이 허리까지 찼다.

온도: 15도.

차가운 바닷물.

치이익.

내 피부가 물에 닿자 김이 피어올랐다.

체온 40도.

물 온도 15도.

온도 차 25도.

하지만 500명의 거인들이 뿜어내는 체열 때문에, B5F 전체가 거대한 온탕으로 변하고 있었다.

500명 × 체온 43도 × 발열량 8,200kcal/day.

물 온도가 올라갔다.

15도 → 20도 → 25도.

물안개가 자욱했다.

시야 10미터.

"나는... 42번이다."

나를 꺼내준 거인이 말했다.

피험자 #042.

신장: 3.2미터.

체중: 287kg.

나보다 훨씬 컸다.

어깨 너비: 1.5미터.

가슴둘레: 1.8미터.

팔뚝 둘레: 60cm.

허벅지 둘레: 80cm.

온몸이 근육 덩어리.

하지만 얼굴은 젊었다.

20대 후반.

턱에 수염이 자라다 만 흔적.

눈빛은 맑았다.

약물이 빠져나가면서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백진우다."

내가 대답했다.

500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500명.

모두 캡슐에서 나왔다.

약물에서 갓 깨어나 비틀거리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맹수처럼 형형했다.

가슴과 허벅지에 꽂혀 있던 냉각 파이프.

스스로 뜯어냈다.

쩍! 푹!

지름 5cm 파이프가 살을 뚫고 나왔다.

피가 흘렀다.

뚝... 뚝...

하지만 금방 멎었다.

티타늄 강화 혈소판.

응고 속도: 일반인의 3배.

30초 만에 상처가 딱지로 굳었다.

콰르르르륵!

그때.

벽면 균열에서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분당 유량: 3,000톤.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1분 전: 허리 지금: 가슴 1분 후: 천장

"출구가 없다."

42번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깊었다.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비상계단은 쏟아지는 물살 때문에 올라갈 수 없다. 수압이 너무 강하다."

수심 3미터.

수압: 0.3기압.

계단 입구 쪽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곧 천장에 닿는다.

완전 침수까지 남은 시간: 90초.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높이: 15미터.

재질: 강화 콘크리트.

두께: 50cm.

내부 철근: D25 (지름 25mm) 간격 20cm.

설계 하중: 1,000 톤/m².

일반인으론 절대 뚫을 수 없다.

하지만.

"계단으로 안 가면 돼."

내가 말했다.

거인들이 나를 보았다.

500개의 눈동자.

"위로 뚫는다."

"콘크리트를? 맨손으로?"

누군가 물었다.

"우린 일반인이 아니야."

내가 42번의 어깨를 짚었다.

단단했다.

화강암 같았다.

아니, 화강암보다 단단했다.

티타늄 골격 위에 근육이 감긴 것.

압축 강도: 500 MPa.

콘크리트 압축 강도: 25 MPa.

20배 차이.

나는 소리쳤다.

지하를 울리는 거인의 포효.

"내 말을 들어라!"

목소리가 물안개를 가르고 500명에게 전달됐다.

"우리는 무겁다! 뼈가 금속이다! 부력이 작아서 물에 뜬 채로는 힘을 못 써!"

물속에서 인간의 체중은 약 10%만 남는다.

부력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일반인 체중: 70kg 물속 체중: 7kg (10%)

거인 체중: 300kg 골밀도: +15 (티타늄 함량 높음) 물속 체중: 90kg (30%)

밀도가 높아서 부력을 덜 받는다.

"바닥에 발을 박아라! 어깨를 걸어라!"

거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을 헤치며 모여들었다.

철벅! 철벅!

500명의 거인.

그들이 촘촘하게 원형으로 밀집했다.

스크럼(Scrum).

럭비의 그것처럼.

어깨와 어깨가 맞닿았다.

체온 43도 × 500명.

온도가 겹쳤다.

중앙 온도: 50도.

물이 끓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거품이 피어올랐다.

"1층! 무릎 굽혀!"

가운데 100명이 무릎을 굽혔다.

허리를 숙였다.

네 발로 섰다.

말(馬) 자세.

"2층! 올라가!"

100명이 1층 등 위로 올라갔다.

발을 어깨에 올렸다.

균형을 잡았다.

"3층!"

또 100명.

"4층!"

"5층!"

인간 피라미드.

높이: 12미터.

천장까지: 3미터.

최상층 100명의 손이 천장 콘크리트에 닿았다.

물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숨을 쉴 공간: 20cm.

거인들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입과 코를 물 위로.

마지막 숨.

후우우...

깊게 들이마셨다.

산소 농도 28%.

폐포가 산소로 포화됐다.

근육에 산소가 공급됐다.

ATP 생성 극대화.

"밀어!"

내가 소리쳤다.

우오오오오!

거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5층 100명의 팔이 동시에 위로 뻗어 나갔다.

4층 100명이 5층을 떠받쳤다.

3층 100명이 4층을 떠받쳤다.

2층 100명이 3층을 떠받쳤다.

1층 100명이 온몸으로 하중을 지탱했다.

다리 근육이 팽창했다.

대퇴사두근.

비복근.

가자미근.

티타늄 척추가 하중을 전달했다.

요추 5개.

흉추 12개.

경추 7개.

총 24개 척추뼈.

각각 500kg 하중 지탱 가능.

거인 1명 근력: 최대 1,500kg (일반인의 3배)

5층 100명 × 1,500kg = 150톤.

쩌저저적!

B5F 천장.

즉, B4F의 바닥.

균열이 갔다.

가느다란 금.

쩍...

퍼져나갔다.

거미줄처럼.

"더! 더 밀어!"

나도 2층에 올라가 있었다.

아래 거인의 어깨를 밟고.

위 거인의 엉덩이를 떠받치고.

온몸에 힘을 실었다.

끄으윽!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혈관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심박수: 분당 200회.

혈압: 220/150 mmHg.

위험 수준.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터졌다.

두께 50cm의 강화 콘크리트가 폭탄에 맞은 것처럼 위로 터져 나갔다.

구멍 지름: 3미터.

콘크리트 파편이 위로 튀어 올라갔다.

쾅! 쾅! 콰당!

B4F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구멍 사이로 고여 있던 B4F 물이 분수처럼 역류하며 쏟아져 내렸다.

촤아아아악!

우리 머리 위로.

"올라가!"

42번이 부서진 철근을 잡았다.

지름 25mm.

휘어진 철근.

끼익.

팔 힘으로 당겼다.

몸을 끌어올렸다.

3미터 수직 등반.

340kg 체중.

하지만 팔 힘 1,500kg.

가볍게 올라갔다.

나도 따라 올라갔다.

다른 거인들도.

500명이 차례로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B4F.

여기도 물에 잠겨 있었다.

수심: 2미터.

"또 뚫는다!"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B4F 천장.

다시 피라미드.

다시 밀어붙였다.

콰앙!

뚫렸다.

B3F.

또 뚫었다.

콰앙!

B2F.

또.

콰앙!

B1F.

또.

콰앙!

1F.

지상.

침수된 지하실을, 우리는 일직선으로 천장을 부수며 올라갔다.

압도적인 힘.

정부가 두려워하여 캡슐에 가둬두었던 힘.

5분 만에 지하 5층에서 지상까지.

우리는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시각.

물이 목까지 차오른 B5F 통제실 구석.

윤기호 실장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살려... 꼬르륵..."

61세.

체력: 평균 이하.

수영: 할 줄 알았다.

젊었을 때 배웠다.

하지만 50년 전이었다.

근육이 기억하지 못했다.

발버둥.

손버둥.

소용없었다.

발전소로 밀려 들어온 바닷물은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자주색(Purple).

끈적했다.

점도: 물의 3배.

남세균과 자색황세균이 뿜어낸 점액질 때문이다.

수영하기 불가능했다.

마치 젤리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윤기호가 물을 한 모금 삼켰다.

"캑! 커헉!"

쓰디쓴 맛.

화학 약품 맛.

순간.

신경독소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이 그의 식도를 타고 퍼졌다.

흡수 속도: 즉시.

작용 기전: 신경 전달 물질 아세틸콜린 차단.

증상 발현: 30초.

근육이 마비되었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가 굳었다.

폐가 수축했다.

호흡근 마비.

횡격막이 멈췄다.

"커헉... 컥..."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익사.

하지만 물을 들이마셔서가 아니라.

독소 때문에 폐가 작동을 멈춰서.

그가 자랑하던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MIT 박사 학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

국가안보실장.

에너지통제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출입증.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

G7 정상회의 배석.

권력.

통제.

질서.

그 모든 것을 삼켜버린 것은.

그가 망쳐놓은 자연이 만들어낸.

작고 끈적한 미생물이었다.

남세균.

크기: 5마이크로미터.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25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던.

가장 오래된 생명체.

통제실의 22도 에어컨이 꺼진 물속에서.

윤기호는 자주색 거품을 물며 조용히 가라앉았다.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동공이 풀렸다.

보글... 보글...

입에서 마지막 공기 방울이 빠져나갔다.

가라앉았다.

바닥에 닿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2. 기록자 (The Observer)

[시점: 2051년 4월 4일 자정.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자정.

슈퍼문이 정점에 도달했다.

지구-달 최근접 거리: 356,500km.

조석력: 평소의 1.47배.

바다가 일어섰다.

비유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실제로.

바닷물이 융기했다.

해수면이 솟아올랐다.

평소 해수면: 0m 슈퍼문 만조: +8m 달 인력 극대: +7m 합계: +15m

높이 15미터.

아파트 5층 높이.

물의 장벽.

색깔: 검붉은... 아니.

자주색.

남세균과 자색황세균이 뒤덮은 바다.

끈적한 슬라임 같은 바닷물.

그것이 거대한 벽이 되어.

시속 80km의 속도로.

쓰나미처럼.

해운대를 덮쳤다.

콰아아아아아-

소리가 들리기 전에.

그림자가 먼저 왔다.

해안가 건물들 위로.

거대한 그림자.

달빛을 가렸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게... 뭐야..."

15미터 물벽.

쾅!

첫 번째 충격.

마린시티의 자랑이던 해안 방파제.

높이 10m, 두께 5m.

강화 콘크리트.

설계 내구연한: 100년.

2초 만에 부서졌다.

콰콰콰쾅!

두부처럼.

아니, 과자처럼.

산산조각.

쾅! 챙! 콰당!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방풍 유리창이 일제히 박살 났다.

해안 도로.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들.

테슬라, 벤츠, BMW, 현대.

수백 대.

우드득! 쾅쾅쾅!

낙엽처럼 쓸려갔다.

공중으로 떠올랐다.

뒤집혔다.

부딪혔다.

콰앙! 챙그랑!

유리가 깨지고.

철판이 구겨지고.

타이어가 터졌다.

가로수.

수령 30년 느티나무.

뿌리 깊이: 3미터.

쩌적!

뿌리째 뽑혔다.

공중으로 날아갔다.

10미터.

20미터.

아스팔트.

두께 30cm.

쩍! 우드득!

종잇장처럼 뜯겨 나갔다.

밑의 자갈이 드러났다.

그것도 쓸려갔다.

건물.

1층.

쾅! 콰콰콰!

유리문 파괴.

물이 로비로 쏟아져 들어갔다.

촤아아아악!

엘리베이터.

계단.

주차장.

순식간에 침수.

2층.

창문 파괴.

챙그랑!

물이 사무실로.

책상이 떠올랐다.

의자가 쓸려갔다.

컴퓨터가 물에 잠겼다.

지지직... 퍽!

3층.

4층.

5층.

15미터 해일.

건물 5층까지 덮쳤다.

송전탑.

높이 50m.

강철 구조물.

기초 깊이: 10m.

끼기기직...

휘어졌다.

엿가락처럼.

쩌적!

부러졌다.

쾅!

쓰러졌다.

불꽃이 튀었다.

파파팍!

전선이 끊어졌다.

정전.

부산 전역.

암흑.

지구의 무게 중심이 흔들린 대가.

인간이 바다를 태워버린 대가.

대자연의 철저한 파멸(Complete Ruin)이 도시를 삼켰다.

그런데.

그 파멸의 한가운데.

발전소 본관 건물 지붕을 뚫고.

솟아오른 자들이 있었다.

콰앙!

옥상 콘크리트가 폭발하듯 터졌다.

구멍에서.

거인들이 나왔다.

한 명.

열 명.

백 명.

500명.

그들이 마침내 지상으로 나왔다.

붉은 달빛 아래.

자주색 해일이 덮치는 순간.

500명의 거인이.

폐허 위에 섰다.


3. 백진우 (The First Nephilim)

"하아... 하아..."

지상의 공기.

산소 농도 28%의 달콤하고 폭발적인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후우우...

깊게 들이마셨다.

폐활량: 일반인의 2배 (12리터).

산소 흡수율: 일반인의 1.5배.

결과: 단번에 3배의 산소.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기분.

미토콘드리아가 ATP를 폭발적으로 생산했다.

더 이상 숨이 차지 않았다.

에너지가 무한하게 솟구쳤다.

근육이 환호했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지옥이었다.

"빌어먹을..."

15미터의 자주색 해일이.

지금.

이 순간.

발전소를 집어삼키고.

내륙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건물들이 무너졌다.

쾅! 콰콰콰!

송전탑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끼기직... 쩍!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발전소 본관 옥상마저도.

엄청난 파도의 충격에.

부서지기 시작했다.

쩌적! 쩍!

옥상 바닥에 균열.

우두둑! 쾅!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쏟아지는 물길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쏴아아아아아!

자유 낙하.

10미터.

철썩! 촤아아악!

엄청난 탁류.

유속: 초속 20미터.

시속 72km.

고속도로 속도.

일반인이었다면.

순식간에 휩쓸려가.

콘크리트 잔해에 부딪혀.

머리가 깨져.

즉사.

자동차도 떠내려가는 유속.

쾅! 콰당! 우드득!

세단이 굴러갔다.

SUV가 뒤집혔다.

트럭이 부딪혔다.

하지만 우리는.

"버텨!"

내가 물살을 가르며 소리쳤다.

몸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했다.

밀도.

일반인:

체중: 70kg


부피: 70리터


밀도: 1.0 g/cm³ (물과 같음)


물속 부력: 90% (거의 뜸)


거인:

체중: 300kg


부피: 200리터 (근육 밀도 높음)


골밀도 T-score: +15.0 (티타늄 함량)


밀도: 1.5 g/cm³


물속 부력: 30% (가라앉음)


티타늄으로 가득 찬 우리의 뼈는 무겁다.

체중 300kg.

밀도가 다르다.

우리의 몸은 급류 속에서도.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쿵.

발이 바닥에 닿았다.

아스팔트.

발바닥이 지면을 움켜쥐었다.

발가락.

다섯 개.

각각 바닥에 박혔다.

5cm 깊이.

"흩어지면 죽는다!"

42번이 소리쳤다.

"잡아!"

그가 내 팔을 잡았다.

악력.

1,500kg.

하지만 부드럽게.

나도 다른 거인의 팔을 잡았다.

오른손으로 42번.

왼손으로 다른 거인.

그 거인도 다른 거인을.

500명의 거인이.

거센 해일 속에서.

서로의 팔을 엮었다.

팔짱을 끼고.

어깨를 걸었다.

거대한 인간 사슬.

아니.

인간 방파제.

콰아아앙!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쳤다.

높이: 10미터.

폭: 100미터.

질량: 수천 톤.

그리고 그 속에.

건물 잔해.

자동차.

송전탑 파편.

쾅! 쾅! 우드득!

우리를 향해.

크으윽!

버텼다.

팔을 끼고.

어깨를 맞대고.

발을 땅에 박고.

500명.

하나가 됐다.

총중량: 500명 × 300kg = 150톤.

그 150톤의 무게가.

티타늄 골격으로 서로 얽혀서.

시속 80km의 해일을.

정면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뒤로 밀렸다.

1미터.

2미터.

발이 아스팔트를 긁으며 밀려났다.

끼기직...

하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무릎이 꺾이지 않았다.

자주색 독성 바닷물이 얼굴을 때렸다.

철썩!

입으로 들어왔다.

캑!

쓰다.

마이크로시스틴.

신경독소.

하지만.

우리의 강화된 간.

해독 효소.

시토크롬 P450.

활성도: 일반인의 5배.

독소를 실시간으로 분해했다.

마이크로시스틴 → 무해한 대사물질.

30초 만에.

우리는 죽지 않았다.

거센 파도가 우리를 때렸다.

콰앙!

갈라졌다.

두 갈래로.

우리를 중심으로.

좌측으로.

우측으로.

촤아아악...

지나갔다.

우리는 탁류 속에 우뚝 선.

500개의 쐐기였다.

"우오오오오!"

우리는 해일을 향해 포효했다.

500명의 목소리.

하나로 합쳐졌다.

우오오오오오!

자연의 분노 앞에서.

무릎 꿇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았다.

우리는 맞섰다.

그리고.

이겨냈다.

[10분 후]

파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물이 빠져나갔다.

허리.

무릎.

정강이.

발목.

주변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해운대는 사라졌다.

마린시티.

센텀시티.

광안리.

다 사라졌다.

진흙과 잔해.

자주색 물구덩이만 남은 폐허.

건물 잔해.

뒤틀린 철근.

부서진 자동차.

시신.

뚝... 뚝...

물이 시신에서 떨어졌다.

얼굴이 자주색으로 변해 있었다.

독소 중독.

수백 구.

수천 구.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어둠 속.

슈퍼문의 붉은 달빛을 받으며.

500명의 거인이.

폐허 위에 섰다.

벌거벗은 채.

상처투성이.

하지만.

살아있었다.

지지직...

그때.

내 귓바퀴에 이식해 둔 초소형 방수 통신기.

잡음이 들렸다.

"진우야... 헉... 진우야! 응답해!"

선호였다.

벙커는 무사한 모양이다.

지하 4층.

방수 설계.

살아남았다.

"선호야."

내가 대답했다.

"나 살아있다."

"하아..."

선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진짜... 진짜 다행이야."

목소리가 떨렸다.

"방금, B5F 서버 파괴되기 직전에 다운로드 받은 데이터. 분석이 끝났어."

"뭐가 나왔어?"

"진우야."

선호의 목소리가 경외감으로 가득 찼다.

"정부가 왜 너희를 안 죽이고 살려뒀는지."

"왜 자꾸 밥을 먹여서 키웠는지."

"진짜 이유를 알아냈어."

"전력 생산? 탄소 포집?"

"그건 부수적인 거였어. 진짜 목적은..."

선호가 숨을 삼켰다.

"$E=mc^2$."

"질량-에너지 등가원리."

"발전소들이 10년간 물을 에너지로 태워버리면서, 지구의 질량이 미세하게 줄어들었어."

"알아."

내가 대답했다.

"그래서 지각 반동이 오고 달이 가까워진 거잖아."

"어. 바다 질량이 2% 감소했어. 1.386 × 10²¹ kg에서 1.359 × 10²¹ kg으로."

"차이: 2.7 × 10¹⁹ kg."

"27경 톤."

"지구 전체 질량의 0.00045%야."

"미미하지?"

"하지만."

선호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타닥타닥타닥.

"지구의 무게 중심이 흔들렸어."

"바다는 표면에 있잖아. 지각 위에. 그 무게가 줄어들면..."

"지구의 관성 모멘트가 변해."

"자전축이 불안정해져."

"세차 운동 주기가 바뀌어."

"26,000년 주기가... 수백 년으로 줄어들 수도 있어."

나는 숨이 멎었다.

"그럼..."

"그래. 계절이 사라져. 여름이 겨울이 되고, 겨울이 여름이 돼. 몇 년 주기로."

"농사 불가능."

"식량 생산 붕괴."

"그리고 최악의 경우..."

선호가 말을 멈췄다.

"공전 궤도를 이탈할 수도 있어."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멸망이야."

침묵.

"하지만 지구는..."

선호가 계속했다.

"스스로 살길을 찾은 거야."

"가벼워진 바다를 대신할."

"아주 무겁고 밀도 높은 무언가를."

"지표면에 만들어야 했지."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산소가 늘어난 건."

선호가 말했다.

"단순히 너희를 거대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야."

"공기 중의 티타늄 먼지를 호흡하게 만들어서."

"너희의 뼈를 금속으로 꽉 채우기 위해서였지."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340kg의 무거운 몸.

티타늄 골격.

"그래."

선호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다.

"윤기호의 파일에 적혀 있었어."

"프로젝트명: ANCHOR(닻)."

"부제: Living Ballast(살아있는 밸러스트)."

선호가 읽어내렸다.

"대상자들(거인)은 돌연변이가 아니다."

"이들은 질량 결손(Mass Defect)을 보상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선택된."

"지구 표면에 균등 분포될."

"고밀도 생체 질량 단위이다."

"목적: 행성 무게 중심 안정화."

"예상 필요 인원: 500만 명."

"현재 확보: 524명."

"목표 달성률: 0.01%."

침묵.

"너희는..."

선호가 속삭였다.

"흔들리는 지구를 붙잡아줄."

"'살아있는 닻(Living Anchor)'이야."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거대한 붉은 달.

슈퍼문.

그리고.

폐허 속에서 숨을 쉬는.

500명의 닻.

우리는 이제.

쫓기는 괴물이 아니다.

정부가 가두려 했던 배터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 병든 행성의 무게를 짊어질.

새로운 주인.

네피림(Nephilim).

거인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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