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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Dec 17. 2022

간결한 언어가 가진 힘

본격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칭찬하기 

 남편과 나는 종종 '하나마나한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야 그거 방금 그 말 하나마나한 소리 아니야?"


  내가 말하는 '하나마나한 소리'란 아무런 정보가 없는 말이다. 예를 들면 '오늘 날씨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 도 있어.' 혹은 '오늘 늦게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이런 말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조금 웃기다고 생각한다. 이거 당연한 말 아니야? 


   남편은 나랑 조금 다른 의견을 보였다. "'오늘 날씨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어'란 말은 일단 날씨에 대한 주목을 시키잖아. 그게 의미있는거 아니야?" 내가 말하는 '하나마나 한 소리'도 상대의 의도에 따라 의미가 있는 말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그것보다는 더 의미있는 말들을 하고 살고 싶다.

 

  그래도 난 그것보다는 더 의미있는 말들을 하고 살고 싶다. 나의 언어가 상대방에게 의미있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의 서툰 말 솜씨로는 마음이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뒤돌아서서 '아 그렇게 장황하게 말하지 말걸.' 후회하곤 한다. 



  그런 나에게 가르침을 준 책이 있다. 심윤경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라는 작품이다. 작가님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렸을 적 할머니의 육아 방식을 떠올린다. 그런 기억들을 기록한 책이다. 할머니는 거창한 육아 방법을 구사하진 않는다. 다만 그만의 조용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작가를 돌봐왔다. 


특히 할머니가 아이를 돌볼 때 구사하셨던 다섯 가지의 언어가 인상적이다.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쨔" 이 단어들이다. 


  "그려(그래)"와 "안 뒤야(안 돼)"는 가능한 것과 안되는 것들을 구분하는 말이다. 이 때 그려의 비율이 안 뒤야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에게 긍정과 부정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주지만 아이가 해도 되는 행동의 허용치가 넓은 것이다. 


  "뒤얐어(됐어)"는 괜찮다는 의미이다. 아이가 깽판치더라도 할머니는 "됐어"로 마무리한다. 엄한 불호령은 없다. 아이가 사고치더라도 관용을 베푸는 말이다. "몰러(몰라)"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아는 것을 쥐어짜서라도 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단순하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오히려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려고 더 신이 났다.  "워쨔"는 어떡해라는 말이다. 아이가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공감의 표현이다. 아이의 상황을 변화시켜줄 순 없지만 공감의 말로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말들은 간결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충족된다. 아이에게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지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준다. 딱 다섯 단어로 할머니의 사랑은 표현된다. 



  평소 난 유려한 말솜씨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엄청난 스토리텔링으로 신명나게 사람들을 사로잡는 인기 강사처럼 말하고 싶기도 했다. 또 좋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늘 어려운 과제였다. 


  할머니의 말들은 그런 어려움을 느꼈던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어쩌면 마음을 표현하는데 많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단순한 말들이 마음을 동하게 할 때가 있다. 간결한 말이라도 진심은 통하기 마련인가보다.  



근데 이 글마저 장황한 건 어떻게 해야하지? '하나마나 한 소리'가 될까 두렵다. 이만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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