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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Dec 16. 2022

집주인 양반! 보는 눈은 있구만

본격 집주인 칭찬하기 

  또 시작이다! 집주인은 밤마다 노를 저어댄다. 정확하게 무슨 소린지는 알 수 없으나 노를 젓는 듯한 소리가 시도때도 없이 들려온다. '쉬이익, 쉬이이이익' 어쩌면 부자들은 집 안에 배 한척 정도는 두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집에서 맨날 조정 연습을 하는거지.



  나는 집주인의 상가건물에 살고 있는 세입자이다. 세입자로서 층간소음이 생긴다고 집주인에게 항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세입자의 비애란 말인가. 세입자의 슬픔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집주인은 계약할 때 건물 관리비가 있어야 한다고 매달 5만원씩을 달라고 했다. 5만원씩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내고는 있다. 하지만 집주인은 이 돈으로 과자를 사먹는지 건물 관리하는 꼴을 못봤다. 건물 바닥에는 먼지가 뒹굴고 있고 건물 복도 센서는 불도 나갔다. 밤에는 폰 후레쉬를 켜고 걸어야 했다. 내 오만원. 이 건물에 사는 사람 오만원씩 걷어서 나한테 주면 주말마다 건물 바닥 쓸고 물청소도 내가 다 할거다. 열받아.



  생각해보니 더 열받는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제일 구석 주차자리를 내주었다. 건물에 구석탱이에 박혀있어 주차도 하기 어려운 그 곳.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던 나는 '내 자리가 있는 게 어디야' 하면서 열심히 그 자리에 주차했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고 내 차를 살펴보았는데 차는 얼룩말이 되어있었다. 뽀얀 크림 색 내 귀여운 왕눈이(내 차 애칭이다) 몸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잘 살펴보니 주차 자리 윗편 건물에서 보일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이 내 차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룩은 지워지지도 않았다. 나는 오밤중에 세제를 들고 나와 내 차의 피부를 긁어대야 했다. 자기들은 아무 것도 흐르지 않는 좋은 자리에 주차하고 말이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까지 이 집은 정말 지저분했었다. 창고에 쌓인  온갖 물건에 기름 때가 더덕더덕 붙은 부엌, 수납공간 안에서 풍겨나오는 시큼한 냄새들. 나는 그런 더러운 흔적들을 없애려 부단히 청소를 해댔다. '그럼 뭐해. 내 집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집주인에게 보복을 결심한다. 집을 나가기 전 2달정도부터 절대 청소를 하지 않고 개기다가 이 집을 다시 원상복구시켜놓는 상상, 새로운 세입자가 구경오면 집 주인 앞에서는 빙긋 웃으며 '이 집 너무 좋아요'라고 말한 후 '이 집 주인이 시도때도 없이 노를 저어대는데 미칩니다'라고 쪽지를 적어놓서 그의 손에 쥐어주는 상상. 그런 상상들을 해보며 혼자 정신승리해본다.  



   이 집을 만난 건 작년 가을, 집을 구하러 다닐 때였다. 집을 보여주던 부동산 아저씨는 자신만만했었다. "아마 이 집 마음에 드실걸요" 정말이었다.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서 또 열받는 건 처음에 이 집을 전세로 내놓았으면서 우리가 마음에 든다고 하니까 집주인은 바로 월세로 바꾸고 싶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울며겨자먹기로 2천만원을 전세금으로 더 올려주고서야 겨우 계약했다. 아쉬운 놈이 지는 법이다. 



  마음에 든 포인트는 거실 풍경이었다. 건물 앞 쪽에는 정말 작은 규모의 공원이 하나 있고 조금 멀리 떨어져 야산이 하나 있다. 그래서 이 집에 들어오면 그 공원 뷰가 촥 펼쳐지고 그 너머 산이 보인다. 이 집의 거실에는 자연 액자가 있는 셈이었다. 집주인은 열불나게 하지만 이 풍경 때문에 이 집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이 아름다운 뷰는 계절마다 사람을 흔들어 놓았다.  봄이 되면 꽃들이 피어났다. 파릇파릇한 귀여운 풀들. 그그 연두빛이 아이처럼 귀여웠다. 그러다 점점 짙어지는 여름 풍경. 그 푸르름에 냄새마저 상큼했다. 가을은 또 어떻고. 가을에는 집 앞 야산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 풍경을 볼 수 있음에 두근거렸다. 그러면 겨울은 좀 아쉬워야지. 하지만 겨울도 실망시키진 않는다. 모든 나무가 잎을 떨어뜨렸지만 집 앞 나무 하나만은 잎을 온전히 품고 있었다. 끝까지 푸르름을 놓지않는 나무가 집 앞에 있다니. 다 가진 것 아닌가.  



  주말에 거실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그 풍경만으로 벅찰 때가 있었다. 그리고 꺄르르 웃는 사람들의 소리. 집 앞 작은 공원은 정말 규모가 작아 아주 소수의 사람만을 허락한다. 시간대별로 몇명의 사람들 만이 이 공원에 드나든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벤치에서 책을 읽는 엄마의 모습, 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견주들, 아침마다 작은 공원을 한바퀴씩 도는 할머니. 소수의 사람만이 이 공원을 알고 이 풍경을 즐긴다. 평화로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가 된다. 



"거, 집주인 양반, 보는 눈 있구만"  

  


  이토록 아름다운 장소 앞에 건물을 지은 집주인의 안목만은 인정한다. 집 보는 눈이 탁월한 점 하나 칭찬합니다. 젠장. 부럽다. 나도 이 건물 사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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