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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Dec 24. 2018

[라이터스 모임] '쌀밥'을 주제로 한 다양한 글들

참가링크 모임앱(http://somoim.friendscube.com/g/5cb56560-f543-11e8-9e76-0a2da97069cc1)

참가링크 오픈채팅(https://open.kakao.com/o/gTtOc85)


[라이터스: 허허허 작가] 먹는다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에서 늘 그렇듯 미지근한 피를 내어주고

기력없는 몸을 병원 식당 한구석에 눕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허연 쌀밥을 우겨넣고 있을때면

가만히 식당안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픈사람과 아픈사람의 가족들

시간이 한참 지나 공기가 앗아간 누렇게 뜬 쌀밥처럼

아픈얼굴에 갓 나온 밥을 받아 내어주고 수저뜨는 모습을

지긋이 혹은 당연하게 응시하는 그들의

숟가락, 젓가락질의 움직임을 보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밥을 먹는걸까.. 아픔을 먹고 있는걸까

당연한 관계와 당연하게 정의된 상황은 없다

어쩌면 아름다운 변호 또한 없을지도 모른다

손을 벌벌 떠며 바라보는 나의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떨리는 수저에 담긴 미역국을 얼른 입에 쑤셔 넣어

입을 훔치는 모습이,

행여나 흘릴세라 누가 볼세라 눈을 위로 높이 치켜 뜨는 모습이

왜이리 따가운지 난 모르겠다

천천히 먹으라며 물한잔 떠다 내오는 아들은

그런 모습이 익숙한건지 모른채하고 싶은건지

머리를 박고 밥을 후벼파듯이 먹는다

그리고는 처연한 얼굴을 들어 이것 저것 농담을 반찬위로 내던진다

그제야 엄마는 밥을 먹는다

밥을 먹는다

그제야 아들도 밥을 먹는다

밥을 먹는다

그제야 나도 밥을 먹는다

밥 한번 제대로 먹기 참 버겁다는 생각에

그대로 밥을 식어버린 국에 담궈 휘적거렸다



[라이터스: 허수정 작가]쌀 알 한 알


한 알 한 알 놓여있다.

한 알 한 알 세어본다. 

한 알 두 알, 그리고 세 알 뭉쳐본다.

그리고 한 입 크게 호호 불어 먹어본다. 

입 안에 가득 들어있는 쌀 알들이 고소한 내음으로 어우러져 입 속에서 춤을 춘다.

그래 인생이란 이 맛이지.



[라이터스: 허수정 작가]야근


쌀쌀한 니 태도.

살살하자 오늘 하루. 

너 아니어도 쌀쌀맞다 내 인생.

식어버린 쌀밥은 그만먹자 이제. 


[라이터스: 허수정 작가]밥맛


니 얼굴이 쌀밥으로 보인다. 

오물오물 씹고싶다. 

잘근잘근 씹어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소한 맛조차 없어질 정도로, 

죽이될 정도로, 모조리 씹어버리고 싶다.

넌 참 밥 맛이다.



[라이터스: 허수정 작가]다 된밥

안익었어 쌀밥. 

되버렸어 된밥.

괜찮아, 안익어도 쌀밥.

익지 않아도되. 그래도 쌀밥이야.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아도되. 그래도 인생이야. 밥이 익어가는 과정 자체뿐만으로도 이미 다 된밥이야.


[라이터스: 글꾸니 작가]쌀밥

그는 정말 몰랐다. 그 강인한 여편네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무너질 거라고는. 그냥 한 번 치우면 됐다. 밥상 위에 남은 반찬을 뚜껑 덮어 냉장고에 넣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사고 밖에 할 줄 모르는 그는 아내가 밥 차려주기 싫어서 도망갔다며 동네방네 떠들어댔다. 정말 끝까지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의 이름은 박대기. 그는 피임이라는 게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던 때에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워낙 다산하던 시절이라 아이가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하던 때였다. 더군다나 촌구석이었으니 얼마나 아이 소식이 잦았겠는가. 박대기네 집은 말할 것도 없었다. 딸 다섯에 아들 다섯. 오죽하면 박대기의 이름을 막대기를 보고 대충 지었겠는가. 아무튼 이 박대기라는 놈은 어렸을 때부터 보통 놈은 아니었다. 그릇이 컸다. 

그릇이 큰 그를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밥大器. 탑을 쌓듯 대접에 밥을 꾹꾹 눌러 담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안 그래도 가난한 살림에 입은 여럿인데, 밥을 그렇게 처먹으니 부모의 예쁨을 받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마른 몸을 유지하니 보통 밉상이 아닌 거다. 얼굴은 또 어떻게? 여러 여자들을 그렇게 울려댔다. 

그 끼가 어디 가겠는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그는 저질러버렸다. 아이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것도 동네에서 제일로 어여쁜 여자의 아이가. 예쁜데 음식까지 잘하는 여자였다. 쪽방에서 가난하게 살아도 한동안은 우쭐하던 박대기였다. 하지만 그 끼는 어디 가지 않았다. 아내가 애 키우면서 돈도 벌 때 박대기는 바깥으로 나돌아 댕겼다. 한량이 따로 없었다. 어쩌다 집에 들어올 때면 밥만 찾았다.

쥐똥만 한 촌구석에서 박대기가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나다니던 서방이 돌아오면 밥 차려주고, 애 학교 보내고, 일하며 그렇게 19년을 살았다. 그러고 살다 보니 어느덧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 되었다. 

그 어디에서도 박대기를 볼 수 없었지만 그날은 분명 하나뿐인 아이의 졸업식 날이었다. 부탁이라는 걸 잘 하지 않는 아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박대기는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화난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박대기가 잔뜩 취해 들어왔을 때도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밥을 차려줬었다. 딱 하나, 평소와 다른 게 있었다면 먹고 난 뒤 밥상 좀 치워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집을 나갔다.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박대기의 흐린 기억 속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내의 화내는 모습이 남아 있을 뿐. 어쩌면 대접에 담긴 흰 쌀밥은 알지도 모른다.



[라이터스:허상범 작가]알을 종일 읽었습니다.


우리 저 밥알처럼

진득하게 붙어있자.

뜨거운 우리 식어서도

저 밥알처럼 하나가 되자.

그동안의 당신과 나는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던지

얼마나 많은 약속을 다짐한지

얼마나 많은 나날을 함께한지

홀로 남은 식탁에서

밥그릇 속 밥알을 

종일 읽었습니다.


[라이터스:김지수 작가]쌀밥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아주 늦은 저녁 쌀을 씻는다. 이 겨울 보일러를 틀지 않은 냉수에 손을 빨갛게 붓고 먹먹해져갔다. 그 손을 별 처럼 잘강잘강 간질이는 쌀 들 사이로 검은 물결이 은하처럼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우리집 밥 솥의 내솥은 검정색이기 때문에 정말로 은하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은하수를 본 적도 없지만, 전혀 은하수 같지 않은 생활의 소리가 나지만. 

그래도 아마 시간을 만진다면 이런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져 먹먹해진 손 끝으로 흐름만을 느낄 수 있는 그 느낌. 멀리서 보면 작은, 수 많은 사건들이 나를 때리고 지나치는 것. 내 손은 아주 많이 움직인 것 같지만 사실 같은 자리를 돌고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거대할 그 사건과 사람들은 사실 내가 쥐고 갈 수 없는 것이라서 나중에 멀리서 보면 자꾸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것 처럼 보일 것이다. 아니면 그냥 내 빈약한 이 겨우 쌀을 씻는, 작은 행위에 큰 의미를 담고싶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허황되어 보이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과학 지식에 의하면 먼 옛날 별이 죽으면서 탄소가 배출되었고 그것이 생명체의 근안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와 쌀은 별의 자식들이다. 아마 이 밥솥이나 싱크대도 별의 자식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쌀이 내게 먹혀 살이 되는 과정이 별의 죽음과 인간의 탄생의 알고리즘과 다르지 않다. 후엔 나도 이 빙빙 도는 물 속의 쌀 들처럼 죽어서 누군가의 살이 되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같은 과정이 어디에선가 계속될 것이다. 다시 거대한 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손을 떼도 쌀을 안고 빙빙 도는 밥물처럼. 

나의 이 긴 생각은 새빨갛게 언 손을 툴툴 털며 전기밥솥의 버튼을 눌렀을 때야 끝이났다. 나는 내일을 위해 밥을 지었을 뿐인데 아주 먼 눈길을 걸어온 것처럼 코 끝이 빨갰다. 


[라이터스:Kang 작가]쌀알

안개가 자욱한 아침 그녀는 밭으로 나와 고구마를 캔다 아들이 첫월급을 탔다며 보내온 내복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녀는 이제 고구마를 팔지 않으며 소소하게 캐낸 고무라를 아들에게 보낸다 아들이 보내는 돈은 그녀의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꿈속에서 술도가의 주인이 국밥집으로 걸어온다 밤새 술독을 지키느라 지친 그의 주조술은 완벽에 가깝다 국밥집 주인은 그의 술을 팔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어도 밥을 차려드려야지 국밥집 주인이 그를 맞는다 길가에 금싸라기가 순풍에 넘실댄다 술도가의 주인은 몸이 작아졌다 이내 헐렁해진 옷이 흘러내리고 알몸이 되었다 그는 여자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약속을 지키러 왔다며 그녀에게 말을 건다 이곳에는 약속이 뿌리내리고 있어 이것은 모두 너의 것이다 땅에 약속이 뿌려진다 밭을 갈아엎은 대지에서 어느 작물이 자라난다

쌀통에서 쌀벌레가 태어났다 쌀알 하나가 쌀벌레가 되기까지 쌀알 하나가 사라지기까지 쌀이 똥이 되어 나올 때까지 정체가 드러나버린 쌀벌레 하루 아침에 가지고 있던 표정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익숙한 표정을 짓기로 약속한 날부터 이상한 생각이 자란다

쌀은 우연히 태어났다 너는 이 척박한 땅에서 쌀을 길들이려고 한다 이곳에서 네가 없으면 쌀이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생명이 이땅에 도래한다 영원을 숙원으로 삼는다 영혼은 안주할 곳을 찾아 방황하지 않는다 마침내 완성된 순환의 고리 너는 결코 그 불씨를 꺼뜨리지 못하리라


[라이터스:권호]라면

아침 출근길, 허전한 속을 라면으로 달래다

학창시절 등굣길, 엄마가 챙겨주던 아침밥이 생각났다

밥 먹고 가라던 엄마의 귀찮은 잔소리 한 마디, 생선구이 한점

퇴근길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데 걸려온 전화

“밥은 먹고 다니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라이터스: BH 작가]쌀밥. 규칙과 질서.


나는 잡곡밥을 좋아한다.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아버지도 잡곡밥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몇십 년간 쌀밥만 먹어왔다. 할머니가 쌀밥 이외에는 입에 대지 않으시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어린 시절 쌀밥을 먹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쌀밥이 가장 맛있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 나에겐 그 대답이 이해가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단순히 어린 시절 일들이 뇌리에 남아 일평생이 지난 후에도 습관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에겐 그럴만한 어린 시절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조금 뒤에 일이다. 군입대를 하고, 한 달쯤 뒤였다. 한 달 동안은 훈련소에서 샤워 및 빨래가 극히 제한되고, 빨래도 속옷류를 제외하곤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샤워 및 빨래를 옷 갈아입는 시간을 합쳐서 십 분을 주었기 때문에 흔히들 신병 냄새라고 하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는데 그때 만난 선임이 샴푸와 바디워시 등을 사주었다. 그때 당시에 사준 샴푸와 바디워시가 케라시스와 도브였는데, 아직도 나는 그 두 가지만 사용한다. 한 달만에 씻는 그 개운함과 향기가 뇌리에 박힌 것이다.

처음엔 그냥 할머니의 고집인 줄 알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고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할머니는 자신의 기준이 있었고, 사소한 어긋남도 용납치 않으셨다. 그런 할머니의 기준을 합리적이지 않다며 큰소리를 쳤던 나는 알량한 시간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판단하려는 어리석은 탕아였다. 나는 고작 한 달 남짓의 시간만으로도 습관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과 기분을 나는 합리와 논리, 이성의 잣대를 들이댔다.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존재하지 않는 취급해 버린 것이다. 삶을 살아갈수록 나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며, 내가 진리라고 떠들어댔던 것들의 무지함을 느낀다. 저 산이 전부라고 올랐던 산 꼭대기 위에 오르면 더 높은 산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걸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느낄 때 그 산에 머무르며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우리 집은 아직도 쌀 밥을 먹는다. 할머니는 나에게 아직도 양말을 신어야 한다, 뜨거운 물을 적게 쓰라 등의 말을 하신다. 홀로 있을 때,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다가도, 그렇게 아프다, 아프다 하시면서, 내가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자 밥통 안의 밥을 꺼내 주러 무거운 몸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낸다. 나는 아직 먼 길에서 돌아오지 못한 탕아다. 진정으로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래서 내 행품에 오늘 먹은 순두부찌개처럼 부드러운 행품을 가지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도 이 먼길에서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돌아오는 그 길이 너무 멀어 늦어버리진 않을까.

할머니는 느즈막이 일어나 컴퓨터에 앉아있는 내게 방문을 살짝 열고 귤을 놓고 가셨다. 그리고 나는 씻고 부리나케 밖에 나가고, 지하철에서 그 귤을 떠올린다. 그렇게 별다를 것 없는 겨울 하루가 지나간다.



[라이터스: 심스 작가] 밥 한번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내뱉는 거짓말.

가끔 한번 봤던 사람과 잠깐의 헤어짐 후 헤어질 때 가장 하기 쉬운, 그리고 깨기 쉬운 약속.

왜 하필 밥일까?

어디 놀러가는 것도, 특별한 약속을 잡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 밥일까?

어릴 적 부모님께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잔소리를 떠올려본다.

“언능 들어온나, 밥 먹어야지”

커서도 부모님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어디 가서 밥 굶지 말고 꼭 챙기먹고 댕기라”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수없이 주린 배를 움켜쥐었을 어르신들은

하루 밥 한끼 챙겨먹을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기에

그렇게 밥 한끼의 소중함을 강조하셨으리라.

우리는 그런데 굶지 않았다. 배가 불렀지...

그래서 그 밥 한끼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밥 한번 먹자’는 거짓말을 남발하고 있는거 아닐까?

무언가 결핍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챈다.

미세먼지가 앗아간 맑은 하늘을 그리워하고,

콘크리트 바닥이 앗아간 푸른 들판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누군가와의 밥 한끼의 고마움을 알아차린 때쯤이면,

무언가 큰 일이 생긴 후이리라.

밥 한끼 제대로 먹지 못 할 정도로 건강이 안좋아졌거나,

밥 한끼 함께할 사람이 모두 떠난 후이거나...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이 인사말이 그냥 흘려버리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하는 진지한 내 일상으로의 초대가 되길,

그래서 내가 아직 내가 가진 것들을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그것을 누리길 바랄 뿐이다.


[라이터스:김창현 작가]햇반


 계좌에 남아있는 5,000원으로 담배를 한 갑 사 피울까 아니면 점심을 먹을까 고민이 된다. 평소 같았으면 담배 한 갑을 사 피웠겠지만, 어제 저녁도 오늘 아침도 먹지 못하여 배가 너무 고프다. 뭐가 되었든 점심을 때워야겠다싶어 바닥에 널부러진 파카를 주섬주섬 차려입고 꼬랑내나는 슬리퍼를 신는다. 매 끼니 때마다 고시원 아줌마가 밥을 해놓지만, 같이 먹을 반찬도 마땅히 없고 너무 질어 먹기 싫다. 그냥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이나 사먹으련다.

 더럽게 추운 노량진의 겨울바람을 뚫고 편의점에 도착했는데 도시락이 매진이다. 내가 너무 늦게 출발한 탓이다. 잠시 텅 빈 도시락 매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곧 컵라면 칸으로 눈을 돌린다.

 도시락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괜히 억울한 마음 때문인지 오늘은 큰 맘먹고 컵라면에 햇반까지 하나 사서 먹으리라 하고 육개장과 햇반 소자를 하나 사서 계산한다. 육개장도 평소 먹던 850원짜리가 아닌 큰사발 1,050원짜리를 샀다. 평소 부리지 못한 사치라 생각하니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햇반 껍데기를 살짝 벗겨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 타이머를 맞춰 돌린다. 그 동안 육개장에는 온수를 붓는다. 다른 고시생들이 워낙 많이 사용한 탓에 물이 좀 미지근하다. 하지만 밥이 뜨거우니, 뭐 어떻게든 따뜻하게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라면이 익고, 밥이 익는 시간. 어제 어머니와의 통화를 기억해본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냐는 물음에 나는 잘 먹는다 거짓으로 답하였다. 먹기 귀찮기도 하고, 생활비가 거의 다 떨어져가는 마당에 밥이 대수랴. 더 이상 어머니께 손을 벌릴 수도 없다. 내 밥 한끼 할 돈을 보낼라치면 어머니는 남에게 수십 끼를 먹이셔야한다. 어머니의 백반 정식 값은 6,500원이고 각종 비용을 빼면 1,000원 남는다. 열심히 하고, 밥 잘 챙겨먹고, 담배 좀 끊으라는 말로 어머니와의 통화는 끝이 났다. 그놈의 밥 잘 챙겨먹으라는 말은 질리시지도 않으신가보다.

 내일은 알바비가 들어오는 날이니, 오늘만 어떻게 버티면 된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어디 가서 밥 세 끼는 꼭 먹어야된다며 알바 가는 날에는 꼭 점심 저녁을 챙겨주신다. 그런데 알바비는 꼭 하루 이틀 밀려 보내주신다. 감사하긴 하지만 제 때 알바비 보내주시면 더 고마울텐데. 내일은 똑바로 들어오겠지.

 그 새 3분이 지나 전자레인지가 땡- 소리를 내며 멈춘다. 햇반이 잘 익어 김이 모락모락 난다. 컵라면에 넣어 말아먹으면 따뜻하니 좋을 것 같다. 그대로 숟가락으로 퍼서 라면 용기에 넣으려는데-

 떨궜다 젠장. 엄마가 밥 잘 챙겨먹으랬는데.


[라이터스:오도현 작가]밥알 사이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밥알들. 

친해지길 바랐는데 너네는 역시나 사이가 좋지 않구나?

대체 무엇이 너희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니?

물 조절을 못한 내 잘못인가?

아니다. 오래된 밥통이 문제다. 

합리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후두둑.


[라이터스: 유성호] 쌀밥

집에 도착해 후다닥 식탁에 앉으면 그릇에 폭폭하게 쌓여진 쌀밥을 입안 가득 넣고 호호 불어 삼킨다. 

밥알이 씹혀 입을 가득 채우는 순간마다 얼마나 단 지 모른다. 이상하게 집밥이 유독 이렇게 맛있는 이유는 

그건 아마 그 쌀을 고르고 씻고 행구고 했던 엄마의 손끝에서 일어난 마법인가보다.


[라이터스: Blue 작가] 쌀밥아

 

쌀밥아,내가 김치였다면 너의 품에 안겨 행복했을꺼야 

쌀밥아,내가 청국장이었다면 

너의 품에 안겨 행복했을꺼야

쌀밥아,내가 도라지무침이었다면

너의 볼을 빨갛게 물들였을꺼야

언제나 하얗게 빛나는 너

언제나 

너그럽고 넉넉한 품을 내어주고

갖은 여러 반찬들의 향과 개성을

그대로 품어주는 너

모든 반찬이 

너와 만나서

하나의 하모니가 되고

오로라가 되어

누군가에게 미소를 주고

살아갈 힘을 갖게 하지

나는 언제쯤 너처럼 

너그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너처럼

넉넉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늘 말없이, 

그 어떤 반찬이라도

높낮음 없이, 

차별과 구분없이

그대로 조용히 품어주는 너를 보며

나도,

너를 닮아보고 싶다는

혼자만의 잔잔한 약속을 해본다.

방금 막 갓 지은

밥솥 뚜껑을 열며,

그윽하고 포근한 너의 입김을 만난다.


[라이터스: 민수 작가]삼시세끼

‘삼시세끼’ 하루 세번 제 때 식사를 챙겨먹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삼시세끼’는 무척이나 중요했나보다.

오죽하면 삼시세끼를 필두로 한 케이블의 한 예능이 제법 인기몰이를 했을까?

예전에는 나라도 잃고 전쟁을 겪으면서 모두가 가난했다.

밥도 굶어가며 보릿고개를 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 세끼 챙겨먹지 않고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불과 백년도 안된이야기

눈부신 한강의 기적은 밥심에서 나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을 굶지 않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고 나라를 먹여 살렸다.

비록 개개인에게 영광이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식사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버거운 일이였던 삼시세끼.

이제는 나라가 그이들을 돌봐 줄 차례인듯 싶다.

아무생각 없이 평범하게 식사를 했지만 글을 쓰면서 올 겨울, 삼시세끼가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한쪽이 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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