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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Feb 22. 2019

[뮤즈 모임] '와인'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와인

*사진출처:<unsplash.com>


[뮤즈:오도현 작가] 마리아주(Mariage)


 와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정보들은 와인의 맛에 버금가는 만족감과 신선함을 느끼게 되었다. 와인의 종류,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 와인을 대대로 만들어내고 있는 뿌리 깊은 가문, 와인 매너, 그 외에도 와인의 세계는 배경지식 없이 달려든 나에게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영역이었다. 그중에서도 와인마다 어울리는 안주에 대한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와인에는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디저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등 여러 가지 종류가 나눠져 있다. 여기서 신기했던 것은 안주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어느 소믈리에가 말하길, 안주를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색을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주가 뭐 얼마나 중요하겠어?'라는 생각에 겁 없이 레드 와인을 색이 다른 여러 안주들과 마시기 시작했고, 와인의 맛이 안주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드 와인에 해산물을 같이 먹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드 와인이 한약처럼 쓰고 텁텁해지기 시작하면서 해산물의 맛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은 사약을 마시는 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빠졌다. 와인과 안주의 궁합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게 된 날이었다.


 와인과 안주의 궁합, 결국에는 인간관계에서도 궁합은 쉽게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부분이다. 이 궁합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지만, 연애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의 연애는 다른 나라보다 많이 힘든 경향이 있다. 바로 제 3자의 오지랖 때문이다(물론 좋은 영향이 없다는 건 아니다.) 연애를 하다 보면 제 3자의 간섭으로 인해 연애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애인이 준 정성 어린 선물, 애인의 패션, 외모에도 남의 평가가 들어가 있다.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문화, 남에게 간섭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문화는 우리에게 꽤나 깊게 들어와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자기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데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끼면 더 잘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떠나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그 관계를 힘들게 이어간다. 이렇게 연애를 하고 있거나 결국 결혼까지 한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결국 후회라는 단어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관계는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끝이 좋지 않게 된다. 와인을 어울리지 않는 안주들과 같이 마시게 되면 맛과 향이 변하고 뒤틀려서 마시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후회 없는 끝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관과 궁합을 찾아가는 과정을 후회 없이 해내가다 보면, 만족스러운 마리아주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와인과 안주도, 사람과 사람도.



[뮤즈:송진우 작가]


만약 촛불이 일렁이던 그 가게에서 익숙한 와인 향기가 코 끝을 찡하게 치거든 애써 외면하지 말고, 바쁜 손 잠시라도 멈추고 그 향기에 취해보길 바랍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와인을 권하거든 사양하지 말고 당신의 가녀린 손 끝으로 잔을 살짝 흔들어 붉게 찰랑이는 물결을 촛불에 비춰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껏 느긋한 표정으로 꼭 한 모금 삼켜 그 깊이를 직접 느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뮤즈:심규락 작가] <부처님의 술: 와인을 눕힌다>


그는 끈으로 된 에어셀에 결박되어있다.

17세기 중반, 풍차보다 더 큰 폭풍우로 인해 탐라도에 표착한 하멜.

입 안에선, 생사에 대한 괴로움이 만든 타닌이 가득 느껴진다.

astringent. 떫다.


그는 살기 위해 뇌물을 건넸다.

예수님의 술, 와인 그리고 은잔이 향한 곳은 탐라 목사의 재물선이 긴 손바닥 안.

그렇게 서구의 넥타르를 맛본 첫 번째 조선인이 나타난다.

prickly. 알싸한 거품이 난다.


이것이 예수님의 술이란 말인가? 아니다. 부처님의 술이다.

더 나음을 위해 눕는 것,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와상과 다름없다.

진동이 없는 곳에 위치함. 와인은 마음의 가부좌를 튼다.

편안하여 흔들리지 않는 각성을 향함. 불자는 마음속에 진리를 디캔팅한다.

근엄이 덕목인 조선인의 입은 점점 바빠진다.

upfront. 솔직하다.


심문을 멈추고 며칠 묵을 곳을 마련해 주어라.

한 잔의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해준다고 했던가.

하멜은 드디어 편히 사지와 생각의 갈래를 뻗는다.

홍해처럼 나뉘어 있던 믿음과 인종도 잔 앞에선 동등해지는 걸까. 술이 뭐길래.

와인의 향 때문인지, 고된 하루 때문인지, 하멜은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낀다.

dusty. 흙의 향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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