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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Mar 01. 2019

[뮤즈 모임] '물고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물고기

*사진출처:<unsplash.com>



[뮤즈:심규락 작가]  <순박한 물의 언어> 


 ‘엄마 사슴이 아기 사슴을 (낫다).’

 ‘슷!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달빛이 노래를 불러요. 왠만한 가수들보다 실력이 더 (낳아요).’

 ‘슷! 슥슥스스스스으으윽’

 ‘하연이가 많이 힘들어 해요. (왜숭모)는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주셨답 니다.’


 “하… 창규는 맞춤법이 갈수록 약해지는 것 같네……”


 해맑은 아이들 모두가 교실을 비운 오후, 의정 초등학교 4학년 6반 교실에서 선생님은 맞춤법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무릇 세상의 모든 언어들을 전부 흡수할 나이, 열한 살의 민들레들은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 학교종이 치자마자 또 하나의 언어처럼 홀씨가 되어 집으로, 공터로, 또는 학원으로 날아갔다.

선생님은 이 작디작은 꾸러기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기억해 내신다. 심지어 어제 해민이가 학교 앞 미미 문구점의 뽑기 기계에서 어떤 요괴워치 캐릭터를 뽑았는지, 오늘 아침에 민정이가 어디서 무민 그림이 있는 편지지를 샀는지 등등 모든 것을 기억해 내신다.


 “창규가 언어 능력이 또래 애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유난히 걱정된다. 선생님은 창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창규는 몹시 활발하다. 마치 입춘을 맞이한 개구리처럼 이리 폴짝 저리 폴짝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신기한 점은 두 팔과 두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이 아이는 말을 할 때도 개구리의 혀를 연상시키는 듯이, 단어들이 입에서 쭉쭉 뻗어 나온다는 것이다. 말하는 방식이 유독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어떠한 때는 잘도 조곤조곤 말하다, 또 어떨 때는 발음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큰 소리로 끊어하곤 했다. 이상하다. 맞춤법도, 말하는 것도…… 분명히 창규의 어머님은 국문학 교수님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내 친구, 요꾀 워찌!’

 ‘썬쌩님! 어제 할아뻐찌 집에 갔다 왔어요!’


 창규는 이런 식이었다. 지금도 이런 식이다. 한두 달간 이 아이를 지켜본 선생님은 내심 걱정을 하시다, 결국 창규의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조심스러운 끄덕임과 입술의 움직임이 있은 후, 그녀는 문득 교실 창문을 통해 산토끼를 만나러 가는 해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밝디 밝은 색의 열대어가 수면 밑으로 내려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불고기, 정말 맛있어요! 썬쌩님도 담에 같이 와서 먹어요!”

 “불고기는 불고기! 물꼬기는 물꼬기!”

 “물꼬기! 헤헤……”


 꿈속에서도 선생님은 창규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해맑게 물꼬기를 말하던 그 모습을 떠올렸다.


 해님이 산토끼를 만나고 난 뒤, 아니 열대어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날, 선생님과 창규의 어머님은 찻잔을 마주 하고 앉았다. 창규가 반 친구들과 사이좋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다, 창규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점을 칭찬해주고 싶다는 등의 얘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정도 흘러서 선생님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님…… 혹시 창규의 맞춤법 시험지를 가정에서 확인하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확인은 잘 안 하지만, 몇 번 본 적 있어요.”

 “제가 얼핏 듣기론 어머님께서 국문학 교수님이시라 들었는데, 가정 내에서 창규에게도 국어를 가르쳐 주시는 지요?”

 “그럼요, 동화를 매일 밤 같이 읽는 답니다. 창규는 동물 소리를 내는 걸 제일 좋아해요.”

 “저…… 이런 말씀드리기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창규가 다른 친구들보다 약간 언어 능력이…… 다른 게 아니라 맞춤법은 그렇다 쳐도, 말을 하는 게 또래 애들과는 크게 다른 것 같아서요…… 다른 의도는 전혀 없고, 저는 단지 창규가 걱정되어서 이렇게 말씀을 정말 어려운 고민 끝에 드립니다……”


 30분 정도가 더 지났을 까, 학교 운동장 끝에 걸려있는 그네 위 창규가 단번에 어머니에게로 달려간다.


 “엄마!”


 창규는 달려가 두 팔을 크게 벌려 어머니를 껴안았다.


 “썬쌩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 내가 민쪙이 좋아하는 것도 얘기했어?”

 “그건 창규랑 엄마만의 비밀이니까 당연히 말 안 했지. 호호.”


 하늘에 밀물이 일러 저 멀리 도망가는 해를 뒤로 하고, 창규는 엄마와 손을 잡고 집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창규는 오늘 저녁에 문어 모양을 한 소시지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쫑알쫑알 입을 움직였다. 어머니는 그런 창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고등어가 헤엄치는 하늘의 푸른 등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도미 무리들이 넘실넘실 유영을 하고 있다. 그런 구름바다를 마주하고 모자는 단란하게 걸었다.


 “선생님께서 창규가 한번 배운 건 절대 안 잊는다고 칭찬을 해주시네!”

 “와, 진짜?”

 “그럼!"

 “난 배운 건 안 까먹어! 어제 동화책 읽다가 들은 말들도 다 기억해! 헤헤.”

 “자, 그럼 기억을 잘하고 있나 한번 얘기를 해볼까? 불고기의 발음은 불고기로, 물고기의 발음은?”

 “물꼬기!”

 “같은 고기인데 왜 부르는 건 다르다고 했지?”

 “나나 알아, 그거 그거… 불고기는 불로 구운 고기음식이라 한꺼번에 부르고…… 음… 물꼬기는 물에 사는 고기니까 고기가 중요해! 그래서 고기를 세게 말해야 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름들도 세게 말하는 것처럼! 헤헤.”

 “역시 우리 창규, 선생님께 칭찬받을 만하네! 호호.”

 “그럼 칭찬받았으니까 오늘 문어 소세지 볼 수 있는 거야?”

 “그러엄! 오늘은 특별히 문어 소세지가 웃는 눈을 하고 있을 걸? 호호.”



[뮤즈:hainsea 작가] 물고기


새가 당신을 말했다면 당신이 떠올려질 때 새는 수면 위를 떠오르는 물고기가 될 겁니다.

이내 가라앉아 버리겠지만 천 번이나 불린 나비를 부른 진원은 누굽니까.

그 속내가 다 보이는 얕은 피막을 건넌 파도는 물고기를 좀 더 수면에 머물도록 할 겁니다.


영원히 수면 위에 떠오르고 말 겁니다.



그래서 이 시를 썼습니다.

읽을 번마다


물고기는 새가 되어 구름까지 날아갔습니다.



[뮤즈:송진우 작가]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제비나 코뿔소 같은 많은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어제 제비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데 삼백 원을 걸 수 있다. 코뿔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다. 코뿔소는 혹 봤을 수도 있겠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따뜻하게 달구어진 케이지 안에서 말이다. 잠자리와 코뿔소 말고도 모습을 감춘 동물들은 많고, 또한 각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오늘 나는 겨울철에만 회귀하고 지금은 모습을 감춘 붕어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들은 아직 정확한 서식처가 알려져 있지 않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우리는 양식으로 키워져 있거나 혹은 단기간에 탄생•성숙기를 지나 분양받아 볼 수 있다. 따뜻한 케이지에서만 가능하지만 말이다. 붕어빵들은 상온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반을 갈라봐도 체온을 조절하는 생체기관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과연 물고기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유명한 건축가 루이 설리반이 천명한 바에 따르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한다. 나의 기억에 따르면 분명 붕어빵은 꼬리지느러미를 비롯해 헤엄을 치기 위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시력은 알 수 없지만 눈도 갖고 있고 섭식 기관 중 입과 유사한 부분도 존재한다. 이는 붕어빵이 분명 생존을 위한 기능이 필요했을 것이며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고 분류학적으로 어류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즉 물고기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디즈니와 픽사가 함께 촬영한 토이스토리를 참고하면 카우보이인지 인형인지 논란이 되는 우디가 우정도 쌓고 사랑도 하는 걸 보면 인형이 아닌 삶의 자주권을 갖고 있는 생물임을 알 수 있다. 더 깊이를 갖고 붕어빵에 초점을 맞춘 다큐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 대목도 붕어빵이 생명체라는 사실에 힘을 실어 준다.


하지만 나는 조사과정 중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내었다. 사실 붕어빵 논란과 가장 유사한 케이스인데 고래상어와 오리너구리 등이 그것이다. 고래상어는 상어목에 속한다. 이 명명법과 분류에 따르면 고래가 아니고 상어듯 붕어빵도 붕어가 아니라 빵일 것이다.

 오리너구리는 어떠할까? 오리너구리도 마찬가지로 오리가 아니다. 단지 오리와 유사한 부리를 갖고 있어서 오리너구리라 이름 붙여졌다. 우리의 논란을 단번에 풀어줄 사례이다. 이 사례로 보면 붕어빵은 붕어와 닮은 빵일 것이다. 즉 물고기가 아니다. 이 사례의 한계는 '붕어+빵'과 같은 경우는 적용이 되겠지만 황금+잉어+빵과 같은 경우는 다른 법칙이 적용될 위험이 있어 속단하기는 위험할 것이다.


과연 붕어빵이 사후 붕어 천국에 갈지 빵 천국에 갈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분류학적 호기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니 우리 각자 고민 주머니에 넣어 한 번씩 꺼내보기로 하고 글은 이만 마치기로 한다.



[뮤즈:오도현 작가] 최후의 경고 - 남의 불행으로 행복을 얻으려는 누군가에게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경고들에 무뎌지기 시작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져 있었던 것이다. 쉽게 얻은 것에는 입을 대지 말라던, 남의 것은 거들떠보지도 말라던 충고들은 시간이 흘러 잔소리가 되었고, 나는 결국 입을 대고야 말았다. 그 뒤로 기억나는 건 지느러미를 바쁘게 움직이며 거대한 통증이 느껴지는 입으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내 잘못을 고할 뿐이었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냄새가 나는 곳으로 옮겨진 나는 정신을 잃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누워있다. 죽은 산호처럼 하얗고 차가운, 그러나 이질적인 평평한 곳에.



[뮤즈:허상범 작가] 물고기는 눈물짓지 않는다.


슬픔에 잠긴 세상에서

눈물이 마를 날 없던 물고기는

뭍에서의 삶은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삶은 이어져

눈물도 이어졌고

밍밍했던 물은 바다가 되었다.

바다는 물고기의 눈물이다.

아직 뭍에서의 삶을 버리지 못한 것들이나

민물 속에 산다.

이미 눈물 속에 잠긴 물고기는

더 이상 눈물짓지 않아도 된다.

나는 우리의 삶을 물속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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