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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Mar 06. 2019

[뮤즈 모임] '가로등'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가로등

*사진출처:<unsplash.com>



[뮤즈:hainsea 작가] 접도 蝶 (나비들이 다니는 길)  



한사코

그 가로등 아래 서있었소.



꼬리따라 건네인 설렘에 흔들린 담연, 봄바람이라

화도인 것을 알 것인 듯 모르는 듯



당신, 슬퍼하게,

바스러진 비늘가루는 바람결에 시린 바다로 잠겼다오.

가시가 너무 많아 꼴까닥 삼키고는 내내 걸린다는 접鰈이 다니는 길이라오.



그러하매 기어이 잠기겠소.


그리하여 온다면. 오기만 한다면.

환낙에 잠겨 봄을 맞이 할 테요.




[뮤즈:이정우 작가]


가로등 불빛이 일렁였다.

마지막으로 널 데려다주기로한 너의 집 앞.

너는 여전히 어둠 가운데에서도 빛이 났다.

억만의 시간을 견디며 어둔 우주 가운데에서 빛나는 별처럼

너의 얼굴은 가로등 불빛 없는 어둔 길 가운데에서도 내 눈에 환하게 빛나곤 했다.

너는 나를 비추는 항성(恆星)이었다.

우리는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영원할 줄 알았다.

이별의 순간, 너란 별은 떨어지는 유성과 같이 찰나의 순간을 지나갔다.

공허한 어둠.

그럴 리 없는 가로등이

그럴 일 없는 가로등이

하염없이 일렁였다.




[뮤즈:송진우 작가] 자기 부상 가로등


#1. 과학유산 보존 위원회의 중앙 광장 / 저녁 어스름


* 남쪽의 은행나무숲과 연구동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중앙광장을 두 남녀가 가로지른다.

짙은 저녁 안개를 뚫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교수와 뒤처질세라 쫓아오는 긴 흑발을 가진 연구원 *


[교수] : (턱을 치켜들고 정면을 바라본 채) 너무 뒤처지지 마! LED드론이 정렬을 못하잖아


[연구원] : 헉.. 헉... 어차피 이 드론은 바닥에 매설된 패널에서 인간을 감지하고 경로까지 밝혀주는 애들인데.. 헉.. 저 때문이..


[교수] : (중앙광장으로부터 긴 산책로를 지나 보이는 102층짜리 의회만을 응시한다) 흥. 무빙워크 설치를 반대한 건 잘한 거야. 연구실에만 박혀있으니 이럴 때라도 걸어야지.


* 연구원이 화풀이하듯 들고 있던 DATA패널로 애꿎은 LED드론만 후려친다 *


[교수] : 그거 아나? 초기의 가로등은 고정식이었지. 지금이야 대기 중에 퍼진 미세먼지의 정전기를 포집해 전력을 충전하는 자율성을 갖췄지만 그 당시에는 전선에 일일이 연결이 돼있었어. 따라서 한번 설치되면 위치도 변경하지 못했고, 정해진 위치만 비추는 원시적인 형태였지. 나중에서야 방범벨도 달리고 적도 부근의 공원에선 fog를 분사해 미기후를 조절했지만.....


[교수] : 듣고 있나?


[연구원] : 아!! 예! 아버지하고 같이 자료를 본 적이 있어요. 초기 형태가 오래 유지되긴 했지만 지금의 형태까지 발전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교수] : 그래. 도시구조에서부터 보행로와 차도를 입체적으로 분리하고 때맞춰 발전된 IOT에 힘입어 우리의 삶이 급변하기 시작했지. 도시의 대부분을 장악하던 차도와 주차장이 사람의 품으로 돌아오고 그 넓은 땅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무빙워크나 저 LED드론이나 땅에 고정되어선 제 기능을 다 할 수가 없었으니까....


* 남자의 설교는 어둑한 밤길에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바닥의 패널은 둘의 경로를 계속해 재수정하며 LED드론에 신호를 보낸다. 허공을 맴돌며 미세먼지를 찾아다니던 드론은 곧바로 둘의 전방에 정렬하고, 이내 안전하게 둘을 지나 보내면 미련 없이 텅 빈 중앙광장에 뿔뿔이 흩어진다.




[뮤즈:오도현 작가] 빛의 사그라듦


따스한 빛으로 나를 비춰주던 빛.

익숙함에 속아 따뜻함을 느끼지 못할 즈음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이 깜박이던 가로등.

짜증 난 표정으로 한 번 쳐다보고 지나간다.


순식간에 변해버린 차갑고 으스스한 거리

그제야 올려다본다.

지나간 빛을 그리워하며.




[뮤즈:이노성 작가] 가로등의 눈빛


1887년 봄, 고종황제 내외의 침실과 마루에 각각 한 개의 백열등을 달고 건청궁 뜰에는 한 개의 아크등을 가설해 점등했다.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3개의 가로등을 설치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민간에 켜진 최초의 가로등으로서, 1966년 이날을 ‘전기의 날’로 제정했다.


- [대한민국 제1호] 전기, 조선일보, 이성훈 기자, 2011.02.08 03:09


이날부터 가로등은 급변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지켜보았다.


친구들과 집 전화로 약속 잡던 어린 시절 그것은 퍽 낭만스러웠다. 밤늦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었고 집 가는 아쉬움을 달래주는 듯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자못 초조하게 한다. 가장 환하게 빛날 때 마주하면 내일의 피곤함이 벌써부터 몰려든다. 기술이 좋아져서 가로등이 유독 밝은 것일까.


길거리 행인은 바쁜 길을 재촉해 목적지에 도착하고, 밤손님도 제집 찾아가는 발걸음이 사납다.


국정농단을 지탄하는 자리에서도 가로등은 시민들과 함께했다. 4·19 혁명에서도 군인들은 밤새 거리를 횡보하며 탄압했다.


같은 자리, 같은 모습, 같은 역할 - 우리를 바라보는 가로등의 시선은 따듯한가, 차가운가.




[뮤즈:이수민 작가]


짧아진다, 길어진다.

걸음을 따라 그림자는 변화를 반복했다.

죽 늘어서 있는 가로등은, 손 닿지 않는 저 멀리서 빛을 뿌리며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키우고, 지워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가로등은 어쩌면 인생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생의 과정에서 문득 나타나는 밝은 빛이 나의 외로움, 고독, 상실감, 괴로움, 고민, 죄책감을 만들어내고, 키우고, 또 지워내는 것이 아닌지.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이 빛에 의존하여 길을 걷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명암에 슬퍼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길을 걷는 우리 스스로가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뮤즈:김지아 작가]


가끔씩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고 싶던 날들이 참 많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채취를 느끼며 힘들었던 감정들을 쏟아내며 위로받고 싶던 순간들. 뜨거운 아픔들이 가슴속 한가득 가득 차 있던 것들을 덩어리째 끄집어내 눈물과 함께 내던지고 싶었다. 아홉 살 때 한 번 그랬고, 그다음을 열다섯. 그때마다 나는 혼자 걸레짝이 된 슬리퍼를 끌고 그나마 밝았던 가로등에 등을 기대며 숨죽여 터져 나올 것 같았던 그것들을 얼른 주워 담았다. 깜빡거리며 제 수명을 다한 듯 위태롭게 번쩍이던 그 불빛이 마치 내 처지인 것 같아 우스웠다. 빈자리가 없을 만큼 꽉 찬 것들을 발로 짓이겨 누르고 밀어 새로운 것을 욱여넣을 때마다 나는 종종 비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참담한 것들을 안아 들고 전화기 너머로 도움 요청을 하려고 번호를 누르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 울음들은 쏜살같이 내 뒤로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가버린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시답지 않은 주제 거리를 뱉어내며 통화를 마무리해버린다. 이상하게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싫었다. 내 고통이 그 사람의 눈물이 되는 것이 가슴 무너지도록 견디기 힘들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괜찮아, 그럴 수 있지.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보통은 그렇게 깜빡이는 가로등을 조명삼아 스스로 위로를 하며 되뇌다 보면 사시나무 떨 듯 진정되지 않던 온몸과 빳빳하게 굳었던 손발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는 했다.


그게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웃기게도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답답함을 느낄 때 혼자 그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하늘을 멍청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울분이 흐르는 속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아니면, 조금씩 무뎌지는 것일까.


딱 한 번 이 노쇠한 가로등 친구를 누군가에게 소개해 준 적이 있는데, 바로 처음 마음을 내어 준 친구였다. 마주칠 때마다 귀신같이 내 마음속 그늘이 질 때를 잘 알아내 조금씩 다가오며 안부를 묻던 고마웠던 친구다. 처음 느껴보는 간질거리는 그 소중했던 감정들은 수채화 물감 젖어 들 듯 아무것도 피어오르지 못했던 내 마음에 여러 색들을 물들여놓았다. 항상 혼자였던 깜빡이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나는 몇 시간 동안이나 폭발 직전이었던 그것들을 그 친구에게 조금씩 흘러내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쳐대었던 조막만 한 선들을 뛰어넘어 뺨에 그 간드러지는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오롯이 날 바라봐주던 그 순박한 눈동자가 미치도록 고마웠다. 항상 혼자 휘적거리던 그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내 모든 것을 보여주고 그 사람의 모든 아픔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같은 감정을 흐느꼈다.


그렇게 서로에게 완벽히 밀착되어 한시도 떨어지기 싫던 한때가 지나갔다. 반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가적인 요소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경제적 여건과 여러 조건들은 사실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적어도 나의 견해로는. 그렇지만 그것들에 관해 상당한 욕망을 보였던 그 친구는 자기가 여타 다른 친우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후 항상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나라도 마음속 여유가 넘치고 풍족한 상태였다면 그 친구의 슬픔을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기초적인 상황 자체가 붕괴되어 있던 상태였다. 아버지의 폭력적이고 다혈질적인 성향으로 인해 잦은 불화가 생겼고 나는 얻어맞은 이마에 자국을 가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캐리어 하나만 들고 뛰쳐나온 나는 키워주신 어머니 댁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가 계셨다. 어렸을 적 혈육도 아닌 나를 거둬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를 따라 퇴근 후에는 간병 치레를 도우려 병원을 오갔다. 그 중간에 회사일과 인터넷 대학 기말고사를 병행하느라 도무지 여유라는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나는 점차 그 친구의 선 너머 아픔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내 뒤에 는 엉망진창인 진흙과 냄새나는 분뇨로 덮여있는 쓰레기 더미가 내 발부터 나를 집어삼키려 떠내려 오고 있었고, 그 앞은 낭떠러지였다. 피차 그런 느낌이었다. 이 보다 더한 지옥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허리가 아파 설거지를 해달라고 아버지께 요청했다 거절당해 힘들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같아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을 때, 하는 일이 막막하고 배우는 영상 공부 때문에 시간과 돈이 부족하다고 나에게 집으로 찾아와 달라고 할 때. 나는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못했다. 나에게는 천국으로 느껴졌던 그 친구의 집이 그 친구에게는 나름대로의 지옥이었나 보다. 부럽게만 느껴지던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폄하하는 그 말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 손 가득 들고 있던 모든 짐과 죄들을 외면하며 나보다 힘든 사람 많다고 내 자신을 다독이던 모순적인 나의 비겁함을 비웃듯이. 그렇게 나는 선 너머 피부 사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느껴지던 따뜻했던 체온을 벗어나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웃긴 것은, 선을 중심에 두고 거리를 유지하던 그때. 그저 스치는 인연이라 가벼이 여기던 그 순간들이 그 친구에게 날 가장 많이 표현했던 순간들이었다. 점차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또 예전과 같은 습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괜찮지 않은 것들을 괜찮다 웃어넘기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상처입지 않은 듯,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차마 힘든 내색을 비추지 못했다.


비겁한 짓이다. 모든 것을 감내할 그릇이 되지 못하면서, 그런 척 위선을 떨며 성숙한 척하는 역겨운 버릇들. 삭히던 아픔들을 희극을 쓰듯 재미로운 색체를 덧붙여 말하면, 그들은 나를 현자를 보듯 우러러보았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잘 이겨냈노라.


결국 내가 이겨낸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차마 이별을 말할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시간을 갖자는 그 친구의 말에 응했고, 제한했던 한 달의 기간을 일 년으로 구질구질한 핑계를 대며 늘렸다.


피차 힘들었던 나의 현실 탓인 것을, 나 때문에 한창 중요할 때인 그 친구가 허비할 시간과 돈들이 미안하다며 위해주는 척 그렇게 등을 돌렸다.


불만족스러울 때마다 이별을 말했다, 기분이 풀리면 다시 만나자고 번복했던 그 친구는 이번에도 일주일을 못 넘기고 보고 싶다며 칭얼댔다. 처음에는 마냥 귀여운 투정으로 보였던 그 모습들이 이제는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괴리감으로 다가왔다. 난 그 친구를 조우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 친구 입에서 이별을 끌어냈다.


다시금, 이 희뿌연 가로등 불빛 아래 나 혼자 남겨졌다. 영원할 것 같았던 달콤함이 사라져 내 잇새에는 그새 씁쓸하고 우울한 감정들만 남겨져 있다. 어찌 보면 조금은 홀가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결혼하자고 내 품에 웃으며 달려드는 그 친구를 나도 모든 힘을 쥐어짜 꽉 안아버리고 싶었다. 그러겠노라,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며 싱그러웠던 두 뺨에, 나만을 담았던 흑진주 같았던 그 까만 눈에 입맞춤을 퍼붓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던 것은 쓸모없는 내 아집들과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들, 나의 탄생과 동시에 함께 자라온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나의 원죄들. 모든 원망의 눈초리들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을 안기기에는 그 친구는 너무 여렸다. 결국 내가 짊어져야 할 것들이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구름을 떠다니듯, 행복했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가로등 불빛이 오늘따라 치부를 찌르듯 너무나도 아리다.




[뮤즈:허상범 작가]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길고양이도, 길강아지도

다정한 연인도

폐지 줍는 노인도

가방이 무거운 학생도

쉬었다 가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따스한 도시의 꿈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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