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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Mar 13. 2019

[뮤즈 모임] '산수유'에 대한 생각과 다양한 글들

소재는 산수유

*사진출처:<unslpalsh.com>




[뮤즈:이노성 작가] 중양절과 소풍


9월 8일,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건조해진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면 옅은 흙냄새가 퍼지며 겨울 향기가 난다. 지난여름 시끄럽게 울어대던 풀벌레들도 겨울준비하느라 바쁜 것 같다.


마당을 이리저리 돌며 아무 생각이나 하다가 사랑방으로 갔다. 아궁이 옆에 있어 제일 먼저 온기가 올라오지만 매캐한 탄내가 살금살금 약 올리는 사랑방이다.


뜨뜻미지근한 방바닥에 등을 붙이자마자 ‘찌그덕’ 대문 경첩이 몸을 베베 꼰다. ‘누구지, 어둑한 시골길에 올 사람이 없는데.’


혹 들짐승이 아닐까, 귀 기울이다 천천히 문짝을 들어 당겼다. 웬 노승이 합장하며 숙인 것인지 허리가 굽은 것인지 헷갈린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 “거 뉘쇼.” 낯선 이의 경계보다는 어머니 등쌀에 나온 귀찮음이 가득했다.


노승이 무어라 말하는 듯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고, 웅얼웅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다음날, 괜스레 집안이 부산스럽다. 얼핏 나들이 가나 싶어 시키지 않아도 방 정리를 하고 어머니 손을 거들었다.


뒷산 나들이 가는 길, 청량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며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이했다. 항상 머물던 조그만 오두막에 자리를 잡고 어머니 야참을 기다렸다.


어머니가 아침에 주신 수유나무 열매가 코끝을 간질간질했다. 단내가 나는 듯, 안 나는 듯 가까이 다가오라 말하며 유혹한다.


더운 여름날 물놀이할 때만 잠들던 오두막에서 오랜만에 이불을 폈다. 여름날 못 느꼈던 보송하고 맨질한 통나무가 몸을 비비게 만든다.


이때부터 우리 가족은 여름과 가을이 되면 늘 뒷산에 놀러 갔다.


——————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A4%91%EC%96%91%EC%A0%88


설명


1년 중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에는 복이 들어온다고 하여 음력 1월 1일, 5월 단오(5일), 7월 칠석(7일) 등을 명절로 지내왔다. 중양절이 되면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시를 읊거나 산수를 즐기기도 하였다. 또한, 가정마다 화채를 만들어 먹고 국화전을 부쳐 먹기도 하였다. 이날 제비들은 따뜻한 강남을 향해 떠나고 뱀과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간다.


유래


옛날 중국의 어느 마을에 신통력을 지닌 장방이란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장방이 환경이란 사람을 찾아와 “9월 9일 이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니 식구들 모두 주머니에 수유 꽃을 넣었다가 팔에 걸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라”라고 하였다. 환경이 장방의 말대로 식구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놀다가 이튿날 집에 내려와 보니 집안의 모든 가축이 죽어 있었다. 그 후부터 중양절이 되면 산에 올라가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뮤즈:송진우 작가] 봄꽃 예찬


봄은 이름 모를 들판을 지나 창틀사이를 비집고 나의 손끝에 내려앉았다. 피곤함에 처진 어깨를 보듬어 어느새 돌아왔음을 따사롭게 알린다. 창원으로 떠나는 열차에서 봄을 만날 줄이야. 열차는 순식간에 창밖 들판을 등 뒤로 밀어 보내고 말았지만, 그 짧았던 순간은 나를 저 들판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버려진 나뭇가지로 땅을 쑤셔보기도 하고 주먹 돌 아래 낙엽을 들춰보기도 한다. 며칠만 있으면 매화 나뭇가지에 꽃봉오리가 20개쯤 나올 것 같다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매화나무 아래에서 반쯤 얼어붙은 꽃눈을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가지를 뚫고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산수유 바라본다. 산수유에서 풍기는 봄기운은 살랑이며 나의 피부를 간지럽고 모든 솜털을 곤두세우고 곧이어 나의 감정을 움켜쥐고 뒤흔들기 시작한다. 이내 감정은 복받쳐 오른다.




[뮤즈:심규락 작가] <이 또한 전해 지네> 


누가 그러더라, 매년 가을이 오면 전남 구례에서는 불바다가 피어난대

화투 장보다도 빨가디 빨간 산수유 열매들이 너엄실 너엄실 둥둥

세상을 떠난 과학자 보일 씨가 머물며, 리트머스 시험지를 쏙쏙 갖다 댄다 더라고

보라색 식물의 즙에 산을 넣으면 빨간색이 된다는 그의 법칙, 음 거기서 시작된 걸 거야


누가 그러더라고, 예전 전남 구례에서는 해마다 구전 동화가 피어났대

그 친절치 못한 떫고 신맛을 참아내고 부녀자들은 맨입으로 씨를 발랐다나 뭐라나

그래서 그녀들의 입술과 잇몸엔 항상 생계의 고단함과 세월의 운명론이 알알이 선홍선홍 맺혀 있다더라

그녀들의 입에서 우리들의 입으로, 음음 그 동화는 지금도 구전되고 있을 거야


누가 그러던데, 전남 구례의 사람들은 모두 7월에 태어났을 거래

잘 익은 산수유 열매는 마치 그 달의 탄생석, 루비를 꼬옥 빼닮았다면서 말이야

근데 그거 알아? 루비의 뜻이 영원 이래.

마치 그곳의 가을 전경과 그녀들의 이야기처럼 말이야, 음음음 맞을 거야 그렇고말고




[뮤즈:오도현 작가] 산수유를 추억하며


푸른 잎보다 먼저 피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급하게 노란빛을 머금고 만개한 너를 바라보며 그저 좋았다.


뒤늦게 자리한 잎은 앞서 지나간 꽃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네가 가진 아량을 느끼며 뜨거운 볕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푸르름이 만연한 곳에 서둘러 내려앉은 열매는 나빌레라.

희생을 행복이라 읽으며 너와 보냈던 시간을 떠올린다.




[뮤즈:김지아 작가]


아침 기슭 찬바람이 매섭다. 명환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엉망으로 넘긴 채로 군데군데 활기를 친 앙상한 가지들을 헤집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재빨리 옮긴다. 시간이 얼마 없다.


아들 태오가 이제 막 걸음마를 걷던 갓난쟁이일 적 우연한 교통사고로 부인을 여읜 명환은 아직 자리가 채 마르지 않은 선산 구석에 부인을 안치하며 그녀가 남기고 간 천사 같은 아들을 목숨을 바쳐 평생 지켜내겠노라 맹세했다.


“여보, 우리 태오 내가 꼭 살려낼 거야. 걱정 마요.”


목울대에서부터 쉰 잡음이 컬컬하게 같이 끓어오른다. 그날의 다짐을 속삭이니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다.


가슴에 든 멍울을 애써 씹어 삼키고, 입술을 오물거리며 제 어미 젖줄을 찾는 어린 아들을 어르고 달래 키워왔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거스름 하나 없던 얼굴에 하나 둘 깊은 주름이 생기고 손가락 알알이 배겨버린 익숙해진 굳은살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갖은 고생을 하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두호, 자신의 아버지였다. 자신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늙으신 할머님과 아버지 손을 타며 자란 명환은 어렸을 때는 알지 못했던 늘 어두웠던 아버지의 낯빛을, 이제야 그 선명했던 아픔을 헤아릴 수 있게 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자신을 훌륭히 키워낸 아버지를 생각하며 명환은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이런 애끓는 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 태오는 어렸을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게다가 툭하면 넘어지고 베이고 멍이 들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큰 병 없이 착하게 잘 커주던 아이가 명환은 너무 고마웠다.


아이가 조금 이상했던 것은 초등학교 입학 할 즈음, 조금 이른 봄부터였다. 활기차게 웃던 아이가 이상스레 몸을 축 늘어트리며 피로를 호소해왔고 통통히 올라왔던 볼 언저리에는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명환은 그저 새 학기,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생긴 사소한 변화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바쁜 일상을 꾸역꾸역 이어나갔다. 제대로 된 검진을 받게 한건 아이가 원인 모를 불명열로 인해 수업 중 쓰러졌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후였다.


태오는 만성 골수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흔히 골수 이식만을 해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급성 백혈병과는 달리 만성 골수 백혈병은 몇 년 전에 외국에서 신약 개발에 성공하여 꾸준히 복용하면 치료가 가능한 병이었다.


명환은 총각시절부터 10여 년 동안 쏟아붓던 적금을 해지했다. 주간으로 다니던 공장일은 야간으로 바꾸고 낮에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과 집을 오가며 정성으로 돌보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 아들과 둘이 뜨끈히 몸을 뉘일 수 있는 쪽방 사글세와 병원비, 어마어마한 신약 값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명환은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 갔다. 1년 반 개월쯤 지나자 저축한 돈은 애저녁에 바닥났고 급하게 당겨 쓴 사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살을 찌웠다. 아직 아들의 병마를 물리치기에 시간은 너무나도 많이 남았다.


병원비 채납에 대한 안내사항을 떠드는 간호사 앞에서 명환은 마른 몸을 사정없이 달달 떨었다. 간호사는 살살 눈치를 살피며 아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명환을 태오의 주치의 앞에 앉혔다.


“구태오 어린이 보호자 맞으시죠?”


주치의는 명환의 앞에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선생님, 조금만 말미를 주시면 마련해 오겠습니다. 내일모레 검진 때만,”


“사정이 많이 힘드신 거 알고 있습니다.”


의사가 내민 종이는 동의서였다. 한자와 의료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동의서는 찬찬히 읽어봐도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의 번뜩이는 눈빛이 뱀의 비늘 마냥 서늘했다. 그러다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의사는 따뜻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병원에서 스위스 노바티스 본사에서 비싸게 수입해오던 글리벡 약 복제에 성공하여 동의서에 서명만 하면 기존 약값의 10분지 1만 내어도 같은 약을 복용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을 이었다. 명환의 흐릿한 눈에 초점이 돌기 시작했다. 마치 믿지도 않던 신이 강림하여 베푼 기적을 눈앞에서 경험한 기분이었다. 그 기적이 왜 자신에게 벌어졌는지 의심하기에 명환은 너무나 지쳐있었다.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부푼 마음에 서명을 감행한 명환의 펜촉이 날을 세워 제 아들을 앗아갈 살해도구가 될 줄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태오는 겨울을 나기 전에 세상을 떴다. 호전을 보이던 병마는 거짓말처럼 복제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보름이 흐르고부터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적응할 단계라 그렇다는 의사의 달램을 고대로 믿으며 가슴을 졸여오던 명환은 아이가 원인모를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지고 나서야 폭발하고 말았다. 태연하게 몇 가지 검사만 반복하는 의사의 옷깃을 부여잡으며 어찌 된 일인지 소리쳐 봐도 의사는 대꾸조차 하기 귀찮다는 듯이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아이는 제 엄마 바로 옆자리에 뉘었다. 명환은 닷새간은 미친 사람처럼 빈소에 혼자 무릎을 꿇고 아들에게, 아내에게, 아버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이 가엾은 주인공의 죄를 꼽자 하면, 무지함이 전부였다.


조문 없는 장례를 치르고 명환은 병원 앞에서 밤낮없이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주치의가 탄 승용차가 보이면 눈알에 불꽃을 번쩍 튀기며 쫓아가기 일쑤였다. 극한의 분노에 손찌검이라도 해보고자 팔을 휘둘러도 마른 장작 같던 명환의 몸은 지푸라기 마냥 허공만 휘적거릴 뿐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했다.


자신을 취재하고 싶다던 기자와 연락해 사실을 폭로해 봐도 역시 소용이 없었다. 인터뷰 내용을 신문사에서 뽑아내기가 무섭게 병원 대표 원장이 선수를 쳐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뻔뻔한 주둥이로 복제약 개발에 앞서 임상실험 과정이 필요했고, 필요조건에 따라 상세한 상담을 거쳐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순차적으로 진행된 정당한 실험이었고 보호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억측이라고 씨불였다. 원장은 그 잘난 동의서를 카메라에 들이댔고, 언론은 모두 명환에게서 돌아서게 되었다. 명환은 하루아침에 약값이 아까워 아들을 팔아먹은 비정한 아비가 되었다. 아무리 항의를 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그렇게 죽은 자 못지않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엔 업무방해로 철창신세를 지다가 실성한 것처럼 먹고 마시지도 않고 헛소리만 해대는 통에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는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밤낮 바뀌는 것도 모른 채로 숨만 쉬었다. 삶의 모든 의욕을 잃은 그는 만 갈래로 찢어져 발겨진 가슴만 움켜잡은 채로 눈물만 흘려댔다. 처음 찾아온 것은 초기에 발병한 병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다음은 무능하고 무지한 자신의 대한 원망, 뒤이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미안함. 고열에 시달리던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눈을 헤치고 따 오신 붉은 산수유 열매를 제게 먹여 살려내셨던 굳건한 아버지의 서늘했던 옷자락.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명환은 눈물을 거뒀다. 희뿌연 그의 눈에 자그마한 빛 조각이 어른거린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숨을 턱 뱉어내니 머리가 핑글 거리며 제 기능을 상실했다. 온 하루 산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결과물 비슷한 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설상가상 눈까지 내리기 시작해 사지가 추위로 얼어붙어 속도도 내지 못했다.


그가 흰 눈 속에서 알알이 붉은 생명력을 뽐내는 그 작은 열매들을 발견한 것은 눈밭에 10여분 정도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 잠시 목을 축이고자 내려간 개울 근처에서였다. 명환은 환호할 새도 없이 그나마 몸에 걸치고 있던 거적으로 열매들을 보물 감추듯 감쌌다. 아들에게 가야 한다.


그는 꼬박 이튿날을 새었다. 식사를 중단한 것은 벌써 엿새도 넘었다. 간간히 목을 축이는 물만으로는 도저히 그 기력을 낼 수 없을 터인데 그는 한 시도 몸을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는 아들을 묻어둔 무덤에 내리꽂는 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 눈이 내리고 녹아 밤새 꽝꽝 언 땅이 그에게 포기하란 듯이 쉬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온몸을 짓뭉개며 절규했다. 뼈가 녹을 정도의 피로감이 온몸을 감쌌지만 아직은 쓰러져서는 안 됐다. 파던 땅에 딱딱한 이물감이 쇠 삽을 통해 명환의 손까지 전해졌다. 태오다. 그의 마지막 희망이다! 흥분에 젖어 휘둘러댄 삽은 아들의 관에 튕겨 중간 나무 부분이 반으로 꺾여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명환은 손톱이 빠지고 굳은살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꽝꽝 언 차가운 흙 속에서 그의 아들을 구해냈다.


아들의 창백한 뺨을 연신 쓰다듬던 그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속으로 울었다. 가져온 그 불그스름한 원초들을 아들의 굳게 다문 입에 터트려 넣었다. 뜨겁고 신선한 피를 쏟아내는 심장처럼 붉은 그 열매가 하얗게 새어버린 아들의 아픈 피들을 몰아내고 사나운 병마들과 싸워줄 것이다.


일어나렴, 태오야. 일어나야지. 그는 맑게 겐 창문을 열며 아들을 깨우던 그때처럼 아들을 얼렀다. 그는 빳빳한 아들의 언 몸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한 마리 늘그막 한 짐승처럼 흐느꼈다. 내가 잘못했다. 아빠가 잘못했어. 모든 죄를 지고 내가 갈 터이니 제발, 제발.


이따금 뒤통수를 눈이 치고 있었다. 희미하게 저 멀리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오늘은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베리아 벌판에서부터 불어온 갖은 사람들의 원통함을 지닌 시린 바람에 담긴 뜻을 당신네들은 알까. 당신네들은 마주한 적 있는가.




[뮤즈:유슬기 작가]


이른 봄

아직은 차가운 바람

어디에 숨어있다 나왔는지

노란 속살을 삐죽 내미는 너


창을 열면 온통 너일 것 같아서

주위를 돌면 너의 향기로 가득 찰 것 같아서

얼른 거리로 나서본다.


세상이 온통 노란빛이다.




[뮤즈:허상범 작가] 산수유, 봄을 피웠구나.


바야흐로 꽃을 피웠구나.

개나리를 닮은 진한 봄빛으로

온 세상을 훤히 비추면

봄을 사모하여 시름시름 앓던

지난가을의 새콤했던 홍조 빛 얼굴

무안해지는구나.

너는 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구나.

가히 네 꽃말을 닮은 사랑이다.

바야흐로 봄을 피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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