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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Jul 03. 2019

[뮤즈 모임] '화투'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화투

*사진출처:<unsplash.com>





[뮤즈:심언석 작가]


<엄마와의 고스톱.>

벌써 5년쯤 되었을까... 퇴근 후 집에 와서 여느 때처럼 TV를 보며 시간을 때우던 나에게 웬일로 엄마가 먼저 다가오셨어요.
“우리 딸, 엄마랑 고스톱 한번 칠까?”

참으로 뜬금없는 멘트였죠. 명절 때도 잘 안치는 고스톱을, 그것도 단 둘이서 치자고 하시니 말입니다. 엉겁결에 자리에 앉은 저는 엄마와 함께 점 100원짜리 고스톱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핸드폰도 보고 TV도 보면서 설렁설렁 참여하던 저는, 여느 고스톱이 그렇듯이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엄마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스톱을 쳤었죠.

첫날, 최종 승자는 약 3,000원 정도를 딴 저의 승리였습니다. 저는 이걸로 내일 맛있는 커피나 한잔 사 먹어야겠다며 엄마를 놀렸어요. 물론 엄마는 그런 저를 보며 방긋 웃음을 지어 보이셨죠.
이후에도 뜬금없는 엄마의 고스톱 제의는 계속되었고, 저도 특별히 집에서 할 일이 있지 않는 이상 1시간가량 엄마와 함께 고스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식탁에서 전에는 못 보던 약통을 발견했습니다. 이게 무슨 약인지 물었더니, 엄마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몸이 찌뿌둥해서 먹는 거라며 황급히 약을 감추었어요. 요즘 세상에 클릭 한 번만 해보면 다 나오는 세상인데... 저는 아까 보았던 약 이름을 검색창에다 치고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아리셉트”
저는 제 눈을 의심했지만, 그 약의 효능에는 ‘치매 치료제’라는 글귀가 똑똑히 쓰여 있었습니다.

엄마는 평소에서 건망증 때문에 실수가 많았는데, 얼마 전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치매 초기라는 판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걱정할까 봐 저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그렇게 그 병과 싸우고 계셨던 거죠.
평소에 별다른 활동도 안 하는 단조로운 삶을 사는 엄마는 어떻게 해야 병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지 물었고, 의사가 집에서 고스톱이라도 좀 치면서 머리를 쓰면 좋다고 이야기해주었던 겁니다. 그렇게 저와 엄마의 점 100짜리 판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그렇게 저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습니다. 엄마가 왜 갑자기 나와 고스톱을 시작했는지 말이죠.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왜 멀쩡한 화투짝도 간혹 제대로 못 맞추는지, 간단한 점수 맞추는 것조차 왜 가끔 틀리는지 말이죠. 그날 밤, 저는 엄마를 붙들고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와의 고스톱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니, 더욱 열정적이 되었죠. 왜냐하면 이제는 제가 먼저 고스톱을 치자고 엄마를 졸라댔거든요. 갈수록 뒤처지는 엄마의 실력에 간혹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저는 엄마와 보내는 그 시간들이 이제는 제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알기에 저는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딴 돈으로 가끔 함께 치킨도 시켜먹고, 영화도 보고 그랬어요. 뭐 그 돈이 그 돈이지만...

몇 년이 흘렀어요. 저는 기적을 바랬지만, 불행히도 저에게 드라마 같은 기적은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이제는 저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고스톱 놀이도 중단되었죠.
그렇게 슬픈 날이 계속되던 비 오는 어느 가을밤, 병실 잠자리에 누워계시던 엄마가 조용히 저를 불렀습니다. “우리 딸, 엄마랑 고스톱 한번 칠까?” 얼마 만에 듣는 그 소리였는지... 저는 너무나 기뻐서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혹시 몰라 병실 사물함에 넣어둔 화투를 꺼냈습니다. 한 게임, 두 게임... 그렇게 오랜만에 엄마와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자리에 누웠습니다.
“엄마는 이제 스톱하련다. 고마워 우리 딸!”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에게 대답했어요. “네, 엄마. 내일 또 쳐요 우리. 내일은 내가 돈 다 딸 거야!” 엄마는 나의 그 말에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었습니다.

엄마는 그날 그렇게 저와의 마지막 한 판을 끝으로 이 세상에 스톱을 외쳤어요. 엄마를 보내는 날, 저는 엄마 곁에 우리가 함께 했던 그 화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몰래 속삭였어요. “우리 엄마, 딸이랑 이다음에 고스톱 한번 쳐요! 딱 기다리고 있어!”




[뮤즈:김다빈 작가]


<부자간의 화투>

“쓸! 피 한 장 내놓고, 고 했다.”
“젠장!”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 나는 이게 확실히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금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계실 할아버지와 마주 보고 앉아 화투를 치고 계신다니?
5년 만에 보는 아버지를 보고 반가움에 인사했지만, 이쪽이 보이지 않는지 전혀 반응이 없었다.
반대로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는 화투의 패를 유심히 둘러보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화투를 치셨던가?”
예전부터 홀로 술을 드시는 것 빼고는 취미 생활이 하나도 없어 무뚝뚝하고 엄하면서 재미없으신 할아버지였는데.
거기에 지병이 있으셔서 집안이 조금만 시끄러워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윽박을 지르시는... 그야말로 집안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할아버지였다.

.... 자, 다시 부자간의 화투 대결로 넘어가자.
“국진을 쌍피로!”
아버지가 ‘국진’이라는 패를 피 쪽에 놓으시자 1점이 추가됐다며 의기양양했지만,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시며 패를 던졌다.
“미련한 녀석. 그래 봐야 1점이야, 피박은 면했구나.”
“크으으으....”
꿈이라서 그런 걸까? 달라도 너무 달랐다.
먼저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3년 동안 할아버지와 대화 한마디를 안 하셨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는 두 분은 작게는 성격 문제, 크게는 돈 문제로 인해 거의 의절까지 가셨고, 그 사이에서 두 분을 중재하느라 바빴던 건 내 쪽이었다.
한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것도 거부하시던 두 분이 생전 하는 것도 못 본 화투를 친다? 이게 가장 이질적인 꿈속의 광경이었다.
두 번째로 더 신기한 모습은...
“청단! 3점 추가하고, 투 고다! 이 놈 이거 완전히 맹물이잖아?”
“으으윽...”
평소 같으면 윽박만 지르시던 과묵한 할아버지가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놀리고 있었다.
“네 놈은 예전부터 그랬어. 어릴 때는 아무 소리 못하고 눈치만 보다, 내가 손주 좀 안았다고, 집안에 큰 소리 내려다 또 찍 소리 못하고...”
“그만...그만하쇼...”
예전에 아버지였다면, 저 상황에서도 정중함을 잃지 않으셨던 분이었는데...
“이 놈아, 그만두긴 뭘 그만둬? 쓰리 고다! 저승 노잣돈은 충분 하디?”
“하지 말라고!”
단단히 열이 받아 판을 뒤엎으려 하는 아버지였지만 끝끝내 할아버지 앞에서 화투판을 엎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게임은 끝이 났다. 다섯 판을 해서 다섯 판 내리 이긴 할아버지는 여유롭게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그 꿈을 꾼 지 5년이 지나서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향년 81세, 말도 많고 탈도 많으셨지만 손주들의 결혼식까지 보신 뒤로 돌아가셨을 때, 다들 고생했다는 말만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술을 먹으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억했을 때 친척들이 했던 말이 떠 올랐다.
‘예전에 큰아버지가 정말 잡기는 잘하셨지. 포커다 체스다 장기다 전부 다 하셨잖아?’
‘아이구 야, 우리 아버지는 내기로 누구에게 져 본 적이 없으셔. 미군들이랑 밤새도록 포커 치시고 한 달치 생활비 벌어오셨대잖아?’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그런 도박을 좋아하셨어요?”

그 뒤로도 난 장례식을 마치고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우연한 계기로 무속인에게 점을 보던 일이 생기게 되었다.
주역과 사주에 통달했다는 그 무속인을 향해 나는 무심코 한 마디를 흘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 아주 이상한 꿈을 하나 꾼 게 있는데...”
“무슨 말인지? 한 번 얘기해 보세요.”
나는 몇 년이 지난 그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할아버지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화투 이야기를 했을 때 점점 굳어지는 무당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하게 되니 후련해진 심정 속에서 무당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실례가 되지 않아요?”
“괜찮아요. 뭐든 이야기해 보슈.”
“내가 알기로... 아무리 망자라도 부자간에 산 사람과 내기를 하지는 않아요. 그게 정말 돌아가신 아버지가 맞았어요?”
“.... 네. 분명 그런데 왜?”
“이것 참... 뭐라 말해야 하나?”
무당이 뜸을 들이며 한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혹시 그런 말 들어봤어요? 사람이 죽기 전엔 가장 가까웠던 죽은 사람이 와서 같이 저승으로 가자고 부른 다는 것을...”
“뭐, 대충 TV 같은 데서 본 것 같긴 한데...”
“바로 그런 거요. 그게 아마 저승으로 가자고 손짓한 순간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아버지의 모습을 한 자는 진짜 아버님이 아니라 저승사자였겠죠.”
나는 이게 무슨 오컬트 적인 말이냐며, 무당을 바라봤지만 무당은 한치의 거짓은 없다는 듯 진중하게 말했다.
“거기에서 할아버님께서는 제안을 하셨을 겁니다. 당신이 저승에 가기 전 내기나 한 판 하자고... 그리고 저승사자와 목숨을 건 화투 내기를 한 것일 거예요.”





[뮤즈:허상범 작가]


<화투>

패를 나누자.
계절을 열두 달로 나누자.
서로가 간직하고 싶은 계절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손에 꼭 쥐어보자.
서로가 뱉어내는 추억을 조각을
다닥다닥 맞추어 보자.
비 내리는 우울한 여름엔
비광 속 우산을.
모든 것이 스러져가는
적막한 가을엔 화사한 홍단을.
그렇게 패를 맞추자.
그렇게 각자의 추억으로
아름다운 계절을 되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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