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집] 1회 거리에서, 클래식

독립출판물 읽는 남자, 뮤즈tv

by 뮤즈

길을 걷는다. 음악을 듣는다. 가사 없는 연주 음악 같은 것들이다. 하나의 리추얼처럼, 출퇴근길이면 라디오를 틀고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정말 신기한 일은 지금부터다. 길을 걷다가 음악을 듣다가 문득 알아챈다. ‘아, 내가 길을 걸으며 음악을 듣고 있구나’ 하고.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냥 걸었던 매일의 순간이, 바로 그때 그 거리, 그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포착의 시간. 일순간, 거리의 풍경은 슬로우 모션이 된다. 사람들은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내게는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는 듯, 과장을 보태자면 아주 짧은 무한의 시간인 듯 느껴진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반전 영화의 엔딩처럼, 나는 더 눈을 치켜뜨고 거리의 움직임을 쫓는다. 대부분 굳은, 잠이 덜 깬, 또는 잠이 막 깬 이의 신경질 어린 표정으로 걷고 있다. 그들이 걸어가는 사이 버려진 쓰레기들, 토사물을 쪼아 먹는 비둘기, 팽그르르 돌아가는 자동차 바퀴를 본다. 내 눈이 따라 돌기 시작한다. 핑그르르. 한참 동안 연이은 바퀴들을 따라 빙글빙글 돌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면 멈춰 있는 거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개 씨는 끊임없이 지나가고 장소는 멈춰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목격하는 건 보이는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발걸음, 그 표정 너머의 삶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을, 그보다 살아있는 것들이든 죽어있는 것들이든, 움직이는 것들이든 멈춰 있는 것들이든 그게 무엇이든 세상의 면면을 고스란히 엿본다. 묘한 일이다. 우아한 클래식 음악과 후미진 거리의 풍경이 이토록 닮아 있다니. 낯모르는 이들은 이 거리에 인생의 무게를 흩뿌린 채 사라지고, 클래식 속에 스민 100년, 200년 전의 삶의 애환은 음악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오늘도 기계처럼 움직이던 내 몸뚱이에서 나도 ‘생각’이란 걸 하는 구나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회사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집 현관 문 앞에 서 있다. ‘아까 거리에서 본 그 굳은 표정은 타인의 얼굴이었을까, 오늘의 내 얼굴이었을까.’


https://youtu.be/L9bVSEdHp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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