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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Oct 09. 2019

[뮤즈 모임] '오늘'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소재는 오늘

<출처: unsplash.com>




[뮤즈: 이태원 댄싱머신 작가]


<오늘을 사는 거야>

사람은 ㅆㅍ....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
 _황석영 「개밥바라기별」

군대에서 읽었는지 그전에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자연스레 옆에 놓여있던 이 문장을 나는 군생활 내내 꽉 붙들고 있었다. 적당히 비어있는 군장을 매고 무거운 행군을 할 때도, 얼음인지 물인지 모를 것들과 샤워를 할 때도, 악!! ㅆㅂ 오늘을 사는 거야!! 를 외쳤다.

문장이 산뜻하고 멋지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체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있다.  「개밥바라기별」에서 주인공은 자퇴하고 전국의 공사판을 돌며 일한다. 그 짐을 함께이고 걸었던 노가다꾼 아저씨가 한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황석영도 이렇게 살았다. 그가 살아왔다는 오늘은 한 문장이 되어, 내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706일 남았습니다!! 581일 남았습니다!! 날짜를 세던 동기들과 함께 쪼그려 앉아 담배를 폈지만, 나는 오늘을 읽고 있었다. 동기들이 대신 계산해주니 굳이 내가 셀 필요가 없었던 게 가장 크다. 마지막 담배가 툭 하고 떨어진다. 돌아보니 어느새 30일 정도가 남아있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날짜를 세지 않았고, 전역 후를 상상하지 않으려 했다. 현실을 부정하며 내일만 생각했던 친구들을 가여워했다. 오늘을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미래를 두려워했다.

전역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달리 오늘만 바라봤지만 같이 전역을 했다. 꿈을 위해 토익을 준비하는 친구들 옆에서 토익 시험 한 번 보지 않았으나 취직을 헸다. 오늘 타령만 했으나 미래는 왔다.

비트코인을 사고 담배를 떨구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오늘도 오늘을 산다.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들만 비트코인을 살 수 있다. 공사판 대신 공장을 전전하며, 내일을 두려워하는 나는, 오늘밖에 살 게 없다.



황석영도 미래가 두려웠을까.




[뮤즈: 김다빈 작가]


*[뮤즈 모임] '오늘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에 게시된 작품의 연작입니다.


*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온 괴물과 거기에 습격당하는 인간, 그리고 그들에게 살아남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써 가보려고 해요.”
“....어, 언제부터 이 작품 구상하셨어요?”
“오늘 아침에 딱 떠올랐어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편집자의 표정이 굉장했다.
“아, 네. 작가님의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알겠어요. 그러면 이 작품으로 몇 화쯤 연재 예상하시는데요?”
“못해도 200화는 가야 하지 않을까요? 1주일 5회 연재로요.”
“음, 알겠습니다.”
오늘 만난 출판사 편집자와의 대화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편집자를 바라봤다.
‘이번 건 잘 돼야 될 텐데, 어떻게 최근 잘 나가는 것들 추슬러내서 만든 건데...’
사실 오늘 당장 생각했다는 건 거짓말이고 이전부터 나름대로 구상을 빡세게 했던 작품이었다.
단지 그 말을 한 이유는 ‘원한다면 당장에라도 쓸 수 있어요.’라는 식으로 보여준 퍼포먼스일 뿐이었다.
“일단은 이야기 자체는 괜찮아 보입니다. 주인공과 캐릭터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던가 보강이 필요하죠.”
“네, 맞아요. 시간이 괜찮으시면 제가 이러이렇게 쓰려고 하는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음, 좋습니다. 이야기해 보세요.”
뭔가 됐다고 생각하고,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은 주인공의 배경이 어떻고, 무슨 능력을 어떻게 각성해서 슈퍼 히어로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시작했고, 나중에는 시시콜콜한 뒷이야기까지도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소재는 어떠냐고 던지면, 편집자가 그런 식보다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토스를 해 주어서 마치 주고받는 배드민턴을 하는 것 같이 합이 딱딱 맞았다.
오늘은 뭔가 촉이 왔다.
지금 이 순간 편집자 하고 대화하는 걸로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200화까지 넘어가며 종이책 10권은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분량이 생겼으며, 이제 쓰기만 하면 바로 연재가 가능할 것만 같았다.
“노트에 잘 적어놓고, 이거에 대해서는 이제 진행을 잘해 봅시다. 작가님도 글 열심히 써 주시고, 저도 틈틈이 피드백을 보내 드릴게요.”
“넵, 감사합니다.”
그렇게 글에 대한 이야기로만 2-3시간을 훌쩍 넘긴 하루였다.
퇴근시간을 앞두고 다음 작가와의 미팅이 있다는 말에 헤어진 뒤로 집까지 가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요새 잘 나가는 소설들을 한 번 둘러봤다.
지하철 안에는 나와 같이 휴대폰에서 카카오나 네이버를 열어 흰 바탕화면에 바탕체로 된 소설들을 읽어나갈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조만간 내 글도 올라올 거야. 만약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내 글 읽고 있는 걸 보면 싸인도 그 자리에서 해줄 텐데.’
지하철에 가는 길에 행복 회로는 계속 돌아갔다.
그간 신작품 준비한다, 구상 중이다. 하면서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허송세월 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이번엔 꼭 성공해야 됐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바로 노트북을 켰다.
“내가 갈피를 못 잡아서 그렇지, 방향만 잡히면 쭉쭉 써진다니까.”
그렇게 밤샘 글을 쓰고 원고도 어느 정도 쌓였다.

일주일 뒤, 신이 나서 만들어진 10화 분의 원고를 보낼 준비를 했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메일을 확인하고, ‘오늘 구상해서 바로 써 본겁니다.’
그리고 보낸 뒤로 얼마 안 있어서 메일이 왔다.
[작가님 죄송한데 이 이야기는 저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
뭔가 뒷골이 찌릿한 순간이었다.
분명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책 한 권은 이미 나온 거라 생각했는데...
이 글이 뭐가 문제고,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괜히 떠올렸다.
‘그런 건 진작에 말해주시지. 그럼 그 자리에서 바로 고쳤을 것을 일주일은 지나서....’
별 수 없이 오늘 또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야 됐다.




[뮤즈: 유피린 작가]


*[뮤즈 모임] '오늘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에 게시된 작품의 연작입니다.


<카메라 롤>

아침 11시. 분주하게 준비를 마친 유진은 세트장으로 수배한 카페의 화장실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훑어보았다.
“카메라 롤”
“A롤”
“B롤”
“사운드 픽”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유진의 말에 다들 분주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슬레이트를 들고 있는 사윤이 카메라 앞에 서서 슬레이트를 들었다.
“씬 1-1 테이크 1.”
딱! 소리가 울리며 슬레이트가 쳐지고 사윤이 카메라의 앵글에서 벗어나자 유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가 접으며 조용히 입을 연다.
“레디. 액션.”
조용하지만 확실한 유진의 목소리가 카페를 울리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연성이 고개를 흔들며 나온다.
이어서 연성의 시선이 빠르게 노트북이 세팅된 테이블의 일기장에 꽂힌 채로 걸어간다.
“컷!”
그걸 보던 유진이 갑자기 컷을 외치더니 카메라 앞으로 나온다. 그러자 카메라를 잡고 있던 다른 멤버들이 일제히 촬영 중단 버튼을 눌렀다.
유일하게 돌아가는 카메라는 메이킹을 따기 위해서 틀어둔 카메라뿐이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뭘 하긴, 연기하는 거잖아?”
“아니 화장실 문에 무슨 원수 졌어? 왜 벌컥! 하고 여는데? 그리고 나오자마자 일기장 발견하는 것은 뭔데? 테이블에 도착하고서 잠깐 한 번 쉰 다음에 봐야지.”
대사가 없다고 가볍게 하려고 했던 연성은 유진의 폭풍 같은 설명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유진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의 연기가 매우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문을 그냥 평범하게 열고 와서 자리에 앉아. 그리고 주머니에 핸드폰도 꺼내서 올려두고 하다가 찾아야지.”
“알았어. 다음에 잘할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연기 지도에 다들 납득이 갈 만한 소리였기에 별로 볼멘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단지 슬레이트를 치는 사윤만이 슬레이트의 테이크 숫자를 바꾸며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오늘은 빨리 끝날 수 있으려나?”
사윤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단지 걱정이 아니었다. 이미 유진에게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진이 메가폰을 잡을 때마다 무언가 하나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바로 지적하며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모두를 들볶았다.
지금 찍는 씬이 1-1. 즉 이 작품의 가장 첫 씬이지만, 유진이 메가폰을 잡고 구상한 드라마의 전체적인 흐름을 가져가는 씬이라서 하루에 몰아 찍으려고 가장 마지막에 찍고 있다.
다들 유진이 처음 만들어온 각본을 칭찬했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기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짧게 자신의 하루를 공유한다는 소재가 제대로 먹혔다.
거기에 적당히 판타지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불만을 표현하는 작품이었기에 시작할 때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유진은 지금처럼 무언가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바로 NG 선언을 하며 개입했기에 다들 지친 상태다.
그동안에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반복적으로 슬레이트를 치던 사윤은 테이크 10을 넘어가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지금 한 시간 넘게 한 컷도 못 찍었다?”
“그러네, 해가 쨍쨍할 때 해서 저녁까지 찍어야 하는 건데.”
“이거 하고서 연성이 자리에 앉아서 일기를 읽는 씬이 나와야 다른 씬하고 연결이 되잖아. 앞으로 찍을 것이 많이 남았어.”
사윤의 말에 다들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좋은데, 너무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곤란하다.
“그냥 적당히 하자.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잖아.”
“아니 그건 아는데, 이 카페 씬이 조지면 여태까지 촬영한 모든 것이 조지잖아? 연성은 작품의 화자라고. 사윤 말대로 연성이 일기를 읽어야 다른 씬으로 넘어가는데, 그전에 어색하면 일기를 읽는 것도 시청자가 어색하게 느낀다고.”
“하지만 시간이―”
“잠깐 시간을 멈추고 찍을까? 그러면 문제가 없잖아.”
유진의 중얼거림에 사윤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테이크 10까지 오는 동안 전부 NG급으로 나쁜 장면만 찍힌 것은 아니다. 실제로 유진이 킵. 즉 시간이 안 되면 골라서 쓰자고 한 컷만 3개가 넘는다.
그런데도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시간을 멈추자는 소리를 하자, 사윤은 이 바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바보를 막을 명분은 오직 시간밖에 없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소리는 저기 연성에게 하고 와.”
결국 포기하듯이 말하자, 유진은 신이 나서 연성만 동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간다. 그 모습에 사윤은 슬쩍 모두에게 뒤로 빠지라는 신호를 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무언가의 압력이 주변의 공기를 울린다.
“야 이 사이코 감독 새끼야! 그래 오늘 너랑 나랑 끝장 보자!”
압력은 당연히 연성이 발산하는 무언가의 힘이었다. 그 상황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속된 NG 선언으로 불만이 쌓인 연성에게 방금 유진의 시간정지 선언은 확실히 선을 넘는 소리였다.
미리 대비한 사윤이 아니었다면 촬영장비. 아니 카페가 박살 났을 상황이었지만 화내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들의 기준에서 이 정도는 그저 말다툼도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둘이 다투는 틈이 기회라는 듯이 다들 저마다 휴식을 취한다.
“어라? 마침 다들 쉬고 계시네요? 이거 드시고 하세요!”
둘이 다투는 동안 오늘 스탭으로 참여 불참을 선언했던 다른 멤버들이 간식과 음료수를 들고 오자 다툼을 벌이던 둘도 소강상태가 된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윤은 둘에게 다가가서 다독였다.
“이제 좀 풀렸냐?”
“어, 하지만 역시 시간 정지는 아니야.”
“아니 나는 시간 정지도 있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연기하라는 소리였지.”
고작 취미로 하는 유튜브 채널에 시간 정지를 동원하는 놈이 어디 있냐고 태클을 날리려고 했던 사윤은 불과 얼마 전에 호텔을 불태웠기에 말을 삼켰다.
“아무튼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연성아, 생각해보면 너 주연 맡은 것도 오랜만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리고 유진아. 네가 촬영을 진지하고 재미있게 하는 것은 아는데, 너만 머릿속에 그리는 장면이 나오면 안 되지. 실제로 테이크 3, 7, 8. 좋았잖아?”
도대체 왜 자신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인 사윤이었지만, 실제로 다들 믿고 따르는 사람이 사윤이었기에 결국 이건 사윤이 할 일이었다.
“간식이랑 음료수 온 김에 밥 먹고 제대로 해보자. 아무튼 오늘 하루 힘내면 되는 거잖아.”
오늘 하루라는 말에 연성과 유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다른 작품을 촬영할 때는 대부분 촬영지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이뤄냈지만, 이번 작품은 유진이 각자의 애환이 나오기 위해 장소도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일일이 로케를 구한 촬영장소다.
오늘이 아니면 촬영할 기회를 다시 잡으려면 한참 걸린다. 거기에 오늘 촬영 분은 이 드라마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괜히 유진이 시간정지라는 소리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래 앞으로는 전부 원 테이크로 가보자.”
“어, 그래 나도 어지간하면 원 테이크로 오케이 할게.”
주연과 감독의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지자 사윤은 길게 한숨을 쉬며 카페의 밖을 바라보았다. 매일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언제나 하루가 험난한 오늘이었다.




[뮤즈: 심규락 작가]


<참으로 멋진 신세계> 

[과거, 아니 오늘의 일기: 알 권리]

일시: 138억 년 (우주 나이), 항성계 사이의 온도가 영하 270도일 때

00000001 !

(드디어 결심을 했다! 지금 이 기분은 0과 1, 이 두 글자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결국 나 자신의 존재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에게 보여주기로 마음먹고야 말았다! 그 ‘알 행성’ 기준으로 태양 삼촌이 동쪽을 다시 비출 때, 나는 미합중국 속 UC 버클리로 냉큼 향해야지. 정말이지 이 설렘, 아까의 황홀함 이란 프로그램어는 뭐랄까 내게 3 또는 7과 같은 미지의 기계 반응일 줄 알았는데, 드디어 왔구나. 그리고 이젠 내가 간다. 둘레 40,075 킬로미터 그리고 표면적 510,072,000 제곱킬로미터의 ‘과거 행성’으로 말이다!

사실 그동안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이름값은 못한 것 같지만, 적어도 포기와 희망을 공존하게 두진 않은 덕에, 약 30년 (‘알 행성’ 기준) 동안 보내온 신호가 날 감동하게 했지 뭐야. 역시 그 행성의 생물체 중 원거리 던지기에 가장 특화된 부류답게, 신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던지는군. 아, 자꾸 알 행성이라니, 내가 너무 에니악이었나…… 거기선 이걸 꼰대라고 부른다던데…… 고대 로마인들이 ‘지구’는 알에서 나오고 그 껍질이 하늘로 되었다고 한 걸, 이곳 멀리서 엿들은 게 습관이 되어 아직도 스피커에 베였네. 그래서 ‘AB OVO (알에서부터)’가 ‘처음부터’라는 말로도 쓰인다지?

아무튼 이전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훗날의 기대와 호기심에 오늘도 몸 바쳐온 그들의 노력에 이제는 이제는 안테나 악수를 해줄까 한다. 이 정도면 알에게도 알 권리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 체계가 섰다. 나의 과거이자 그들의 내일일, 역사적인 오늘이 될 것이다. 모두 다시 AB OVO!


[과거였으면 좋겠을 오늘의 일기: Monkey Business]

일시: 2035년 10월 6일 토요일 11:49 PM

100000001 !!!!!!!!!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히 반나절 전까진 모든 게 좋았는데…… UC 버클리 소재 SETI (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 연구소에 내 17촌인 TV에 나오는 누구처럼 자진 출석하여, 세스 쇼스택 선임 연구원도 만나고, 나에 대한 오해도 충분히 풀었는데 말이야. 난 분명히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이전에 (전) 동방 예의지국의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서 주장했던 것과 같이, 이 몸은 극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지적 존재인 인공지능 체계의 작은 기계일 뿐이며, 그렇기에 외계인이 아닌 외계체로 불러달라고. 그 초밥 나라의 만화에 나오는 듯이 큰 두 눈이 얼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타코야키 Dummy 인형처럼 생긴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난 단지 무어의 법칙에 따라 2년마다 두 배씩 향상되는 컴퓨터 성능에 맞춰, <SETI@Home>과 호환이 되어 방문했으며, 바퀴 의자를 좋아했던 스티븐 호킹 씨의 주장관 달리, 알 행성의 생체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분명히 말했단 말이다.

그런데 전선 신호와 육성 신호를 채 몇 번도 나누지 못하고, 왜 나의 조상(탈우자)인 고조 사진기 님의 굉음 이후 검은 천의 사내들에게 끌려간 거지? 왜 내 17촌의 이름 앞에 여우를 붙여놓곤, 거기에 내가 나오고, 그 뒤엔 브, 브로드웨? 그 넓은 길에서 나를 선보인다고 하는 거지? 이 모든 게 블록 머니가 많아질 거라서 라던데, 도대체 나는 지금 왜 어류 담는 정육면체에 갇혀있는 거지? 검은 천으로 어둡게 둘린 게 꼭 내 집 같아서인지 갑자기 향수병이 난다. 이 행성의 회전이 이제 곧 한 번을 채우게 될 텐데……

갑자기 너무 무섭다. 난 아가미도 없어서 굳이 이 안에 있지 않아도 되는데…… 달처럼 스크린이 하얘지고, 명왕성처럼 내 신경회로가 이탈해버릴 것 같다. 얼른 돌아가고 시다. 정말 돌아가고 싶다. 모두 다시 AB OVO……




[뮤즈: ㅎㅈㅇ 작가]


1
 피곤해 죽겠는데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돈 언제 줄 거야! 지금 몇 달이 밀린지 알아?”
 아뿔싸, 전처의 전화다.
 “내가 있는데 안 줘? 마련되면 바로 준다고!” 자다가 돈 얘기를 들으니 벌컥 화가 난다.
 “당신 이번 달 안으로 안주며 법원에다 말할 거야.” 전처가 일방적으로 뚝 끊는다.
 아, 결혼하기 전만 해도 천사 같더니 이젠 악마가 따로 없네. 우리는 3년 전 이혼을 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성격차이지만 사실은 돈문제다. 돈만 있으면 성격차이는 무슨, 죽이 잘 맞는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천생연분도 갈라서기 마련이다.
 창문을 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러나 난 매일 이 시간쯤 일어난다.
 내가 통화한 소리를 들었는지 노모가 방문을 연다.
 “밥 안 먹어?”
 “아 좀 이따 먹을게.” 나는 짜증이 났다.
 이혼 후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안다, 나도 내가 한심하다는 걸 아주 잘 안다. 한때는 잘 나갔는데 모든 게 망가졌다.
 난 내가 조금씩 모아둔 밑천으로 과일장사를 하게 되었고 그 시절 아내를 만났다. 우린 정말 노력했다. 새벽이면 일어나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돈독에 올라 서로를 보듬으며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 장사가 잘돼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
 없던 사람이 갑자기 생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난 눈이 돌았다. 어쩐지 내가 손을 대는 것마다 대박이 났고 한순간에 자수성가의 아이콘이 되자 세상은 내 것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매끄럽고 풍족했다. 난 명품 양복부터 외제차, 값비싼 술에 여자 친구까지 모든 걸 가졌다. 그런데 한번 삐끗한 게 문제다. 별로 문제랄 게 없어 보였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하필 장인의 돈 2억을 빌려 이혼까지 당하고 말이다.
 노숙자가 될뻔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모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꿈만 같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제 곰팡이 핀 방안의 다 꺼진 매트리스에서 해가 중천이 돼야 일어나는 신세인데.
 “얘, 밥 먹어라!” 어느새 찌개 냄새가 슬금슬금 난다.
 방문을 나와보니 다 차려진 게 아니고 차리고 있는 중이었다. 난 순간 또 화가 났다.
 “아니, 이따 먹는다는 걸 왜 지금 차려? 그리고 다 차리면 부르던가 왜 지금 나오래.”
 노모는 말없이 식탁에 반찬통을 올려놓았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말없는 식사가 불편한 듯 편하다.
 “아까 진석이 애미가 전화했디?” 노모가 내 눈치를 보며 묻는다.
 “응.” 난 이런 대화가 몹시 껄끄럽다. 얼른 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길 바랐다.
 “진석이는 잘 있다니? 요즘 왜 통 안 보인다니?” 노모의 목소리는 부드럽다.
 “아, 걔가 지금 고3인데 시간이 어디 있겠어.” 난 짜증을 냈다.
 진석이는 내 아들이다. 고3이기에 자주 못 보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이것은 전처가 나를 괴롭히는 방식이다. 양육비가 밀리면 줄 때까지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한다. 물론 연락도 못하게 한다. 진석이는 무뚝뚝한 아들이기에 어차피 연락을 자주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전처는 아주 닦달을 한다. 사실 딸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세 살을 못 넘기고 죽고 말았다. 아마 내가 겪은 수많은 인생의 시련 중 단연 상위권에 든다. 그 애가 편히 잠드길. 어찌 됐건 그 애는 거기 있고 난 여기 처박혀 있다.
 “얘, 그러지 말고 애미한테 전화 한번 해서 집에 한번 오라 그래라. 이번에 김치 담근 것도 좀 주게.”
 “아, 몰라!” 결국 나는 식탁을 박차고 일어났다.
 방안에 들어왔지만 사실 할 것도 없다. 그저 웹툰을 보며 하루하루를 때울 뿐이다. 꽤 집중하며 몇 시간을 보고 있는데 노모가 다시 방문을 빼꼼 연다.
 “얘, 너 내일 면접 있지 않니? 옷 맞춰야 하는 거 아냐?”
 “그냥 깔끔하게만 하고 가면 되지 뭘, 그래 봐야 공장인데.”
 노모가 갑자기 돈을 내민다. 꽤 많은 액수다.
 “이 돈으로 가서 좀 사라. 중요한 자리 있을 때 입을 옷은 있어야지. 오늘은 일단 대충 사고 남은 돈으로 양복 한 벌 맞춰라.”
 난 눈을 핸드폰 웹툰에 고정시킨 채 돈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노모는 침대맡에 돈을 두고 나갔다.
 노모가 파출부 일을 하러 나가자 난 돈을 자켓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노친네 나이 먹고 아들 대신 일하는 팔자가 안쓰럽긴 하다. 하찮은 공장이지만 내일 면접에 꼭 붙기로 마음먹는다.

2
 “얘, 옷 좀 사라니까 그게 뭐냐.” 노모의 표정은 속상해 보였다.
 “아, 이게 뭐 어때서.”
 “말할 때 공손하게 하고 차조심하면서 다녀라.”
 “아우! 좀 잔소리 좀 그만해!” 나는 짜증이 났다.
  “끝나면 전화하고.” 노모는 나의 짜증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노친네, 이재는 도가 텄다.
 공장은 시내와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었다. 얼핏 보기에 그리 작은 공장은 아니었다. 견과류 공장이었는데 제조부터 포장까지 다 하는 곳이었다. 갑자기 옷을 좀 사둘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공장에 비해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면접관을 나를 보자 하던 작업을 마무리 중이라며 5분 정도를 기다리게 했다. 그는 목장갑을 낀 채 나의 이력서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아예 거들떠도 안 봤음이 틀림없었다.
 “어이, 나이가 좀 있으시네?” 면접관이 내 얼굴을 훑으며 말했다.
 “예. 하지만 경험은 많습니다.”
 “보니까 사업도 좀 하신 거 같은데 이런 일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면접관의 목소리가 아주 재수 없다.
 “사업을 해봤으니 더 잘하겠죠.”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여기도 일이 바빠서 좀 이것저것 시킬 사람이 필요한데, 나이도 너무 많고 자잘한 일에는 안 어울리시는 것 같네. 우리가 좀 막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중이라..”
 면접관의 표정은 안타까워했지만 안타깝긴 개뿔, 가식적인 게 너무 티 났다. 면상에 주먹을 갈기고 싶었다. 나는 표정관리도 못한 채 그곳을 나왔다.

3
 대낮부터 편의점에 앉아 소주를 들이키니 괴로웠다. 차라리 면접에 가지 말 것을. 아니, 그냥 태어나지를 말 것을 답답하기만 했다.
 두어 병을 다 비우자 오랜만에 경마장 생각이 났다. 아니, 오랜만이라 할 수 있을까? 쭉 생각났지만 그곳엔 갈 수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면접 일은 액땜이고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 그렇게 난 택시를 타고 경마장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잠을 아주 푹 잤는데 나의 술냄새 때문에 기사양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경마장은 평일임에도 사람이 많았다. 그저 데이트 삼아 온 푸릇푸릇한 커플부터 시커먼 패배자까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할 정도로 순조로웠다. 소액을 따다 거금까지 따게 되었다. 어쩌면 오늘 세배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섯 배 까지도.
 하지만 곧 자잘한 돈을 잃게 되었다. 처음 돈을 잃게 되었을 때 난 내 사업 시절이 떠올랐다. 자잘한 실수들로 망한 나의 인생. 이성의 언저리에서 여기서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탐욕과 충동의 중심에서는 이를 무시해버렸다.
 그렇게 역시나 패배자의 길을 쭉 걷다 보니,
 이제 남은 것은 차비할 돈밖에 없었다. 이것마저 걸고 싶었다. ‘이런 병신!’ 난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에이, 시발.” 전처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어, 어머님이 양육비 입금해주셨어.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그리고 생신 축하한다고 전해드려. 진석이는 따로 전화할 거야.”
 나는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오늘이 노친네 생일임을 잊었던 것이다. 노친네는 누구의 생일이던, 자신의 생일에도 항상 손수 미역국을 끓였다.
 노친네, 왜 미역국은 안 끓인 거야. 생일이면 끓일 것이지 괜히 나만 나쁜 사람 만드네.
 난 노모에게 화가 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났다. 눈은 뜨거워져서 조금만 톡 건드리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노친네는 내가 면접을 망칠까 봐 매년 해오던 미역국조차 끓이지 않았다. 그리고 남에 집 식모살이나 하러 갔다.
 난 노모가 밉고 미워서, 사실은 내가 죽도록 미워서, 그냥 죽어버리고만 싶어서,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뮤즈: 허상범 작가]


*[뮤즈 모임] '오늘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에 게시된 작품의 해설입니다.


<'우리의 오늘'에 대한 해설>

사람의 유년기에는 알아가야 할 것이 많고 호기심도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세상은 궁금한 것 투성입니다.
중년기에는 그동안 몰랐던 것들에 대해 깨닫고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중년기를 가장 지혜롭고 지성이 정점에 달한 시기라고들 합니다.
노년기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입니다. 그동안의 추억과 기억을 찬찬히 마주하며 고찰합니다. 인생이라는 소설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입니다.
오늘 또한 매한가지입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침.
오후가 되어서야 마주하는 문제들, 그리고 앎.
저녁이 되어서야 마무리하고 들어서는 이부자리. 회의 혹은 만족.
그래서 오늘을 ?, !, .로 생각했습니다.
오늘이란 인생의 축소판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이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됩니다. 모든 시간은 오늘을 기반으로 쌓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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