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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Nov 13. 2019

[뮤즈 모임] 'ㄸㅗㅇ'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소재는 ㄸㅗㅇ

<출처: unsplash.com>




[뮤즈: 정진우 작가]


<그것> 

미지근한 콜라를 마신다
이빨이 서서히 삭아간다
탄산의 기포에 당이 올라간다
어디서인가 들려오는
막심 므라비차의 크로아티안랩소디
아 그것은 지금 바로 이것이다




[뮤즈: 조미리 작가]


그 당시 드는 생각은 ‘나라는 사람이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 싶었다.

멋모르고 입사를 했던 것 같다. 다른 학교 동년배 친구들이나 학교 선배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둘 걸 그랬다.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더러웠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아직도 똑같이 돌려주지 않은 게 서럽다.

날 데려갔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

-

사회 초년생의 첫 입사를 제대로 장식해줬다. 직원도 둘 밖에 되지 않는 회사에 갑자기 연봉협상을 위한 시험이라니? 또 멋모르고 그런가 보다 했다.

-

“그거, 유진 씨 자르려고 하는 거예요.”
“네?”

우동을 입에 욱여넣으며 김대리님이 말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람.

“아까 교수가 한 얘기요. 시험이니 뭐니 한 거. 유진 씨랑 나랑 페이가 똑같은데 일은 내가 더 많이 할 줄 아니까 개수작 부리는 거라니까.”
“···.”
“나중에 좋은 구경시켜줄 테니까 걱정 말아요. 얼른 먹어요. 늦으면 또 난리 나지.”
“네···.”

-

“구청에 도면 올리고 저한테 얘기해주세요. 어젯밤에 클라가 계속 전화해서 다시 올려야 될 것 같아요. 아직 뭐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집착하는 사람 또 오랜만에 보네. 스케치업 임시 파일은 메일에 놔뒀죠?”
“어제 또요? 그 사람 진짜 진상이다. 깐깐한 걸 넘어서 피곤하다 피곤해. 떼먹는 것도 아니고! 아 스케치업은 진짜 막 올린 거라 손을 좀 더···.”

“유진이 잠깐 나 좀 보자.”

아, 안 그래도 일이 익숙하지 않은데 또 뭘 주려고 저러는 걸까. 대표를 따라 들어가 가죽이 벗겨져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의자를 툭툭 털고 앉았다.

“대강 알고 있을 거야. 이제 그만 나와줘야겠다. 회사가 재정이 어려워서 미안하게 됐어.”
“···언제까지 출근하면 되나요?”
“그냥 오늘까지만. 지금 하고 있는 거만 클라우드에 올리고 퇴근해. 그동안 고생했다.”

진짜, 고오맙다 정말. 거지 같은 거 하루라도 빨리 그만 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정말. 더는 말하고 싶지도 않아서 알겠다 대답하고 마음에도 없는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괜히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오늘따라 더 짜증 났다.

“그만 나오래요. 어이가 없다 정말. 대리님 말이 맞네요 진짜. 하..”
“거봐. 5분만 더 있어봐요. 바닥을 보여줄게, 내가.”
“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김대리님이 일어나셔서 대표실로 들어갔다. 5분보다는 길었던 시간이 지났고, 그리던 도면에 저장 버튼을 누르자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동그라미 커서를 찌푸리며 바라보고 있자 대리님이 돌아오셨다.

“유진 씨 다시 대표실 가봐요. 이젠 그냥 더러울걸?”
“더럽다뇨?”
“들어가 봐요, 부르니까. 들어갔다 와보면 씻고 싶을걸?”

대표실로 들어가자마자 멋쩍은 표정으로 교수가 날 바라보며 얘기했다.

“야, 쟤 그만둔 덴다. 너 다시 나와도 될 것 같아.”
“···.”
“잘 됐지 않냐.”
“···.”
“월급 조금 더 올려줄게. 상황이 애매하지만, 김대리도 더 큰 데로 잘 가고 너도 잘 된 거지 뭐. 안 그러냐?”
“···교수님, 제가 아무리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거여도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알바생한테도 이렇게는 안 하시겠네요!”
“뭘 그렇게 흥분을 하고 그러냐. 어차피 갈 데 있는 거 아니잖아. 상황이 이랬던 거니까 그냥 좋게 풀자.”
“아뇨. 그냥 오늘까지 하겠습니다. 월급은 오늘까지 한 거로 입금해주시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개뿔. 문을 박차고 나와서 외투와 가방을 챙겨들고 출입증을 집어던지고 나왔다. 이어폰을 꼽고 찌푸린 마음으로 빠르게 걸었다.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이어폰에서 나오는 가사가 귓가에 맴돌며 내 첫 직장은 그렇게 끝났다.

‘퇴근하겠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이놈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버텨왔는데
퇴근하겠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나 이제 행복 찾아
멀리멀리 떠나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뮤즈: 송진우 작가]


부검소견서.

사망확인서.
 약물에 의한 산소부족, 호흡 기능 저하로 인한 사망. 12시간 전을 사망 시간으로 추정.

수사 소견서.
 본 사건은 50세 남성이 자택 내 변사한 사건이다. 변사자는 발견 당시 서재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였으며 두발과 의복을




[뮤즈: 이영훈 작가]


<그것>

‘그것’이라는 말에는 으레 ‘무엇’이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아, 그거’라고 하면 자연스레 ‘뭐?’라고 묻게 되고, ‘그것은 무엇이다’라는 형식의 문장도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다’ 혹은 ‘저것은 무엇이다’라는 문장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아, 이거’라고 하면 ‘뭐?’보다는 ‘아, 그래’라는 말이 더 먼저 나옵니다. ‘그것’과 ‘이것’, ‘저것’은 같은 대명사일지라도 다릅니다. ‘이것’과 ‘저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더라도 언제든지 ‘그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기만 하면 설령 실제로 있지 않더라도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남의 생각을 묻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머릿속을 묘사해 줄 때만 ‘그것’은 ‘그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고 실제로 있을지라도 그것은 항상 타인에게 더 가까이 있어서, 우리는 상대에게 ‘그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이것’보다는 ‘저것’에 더 가깝습니다. 어떤 언어에서는 ‘그것’과 ‘저것’을 나누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과 ‘저것’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 좀 줘 봐’와 ‘저것 좀 줘 봐’는 되어도, ‘이것 좀 줘 봐’라고 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어색합니다. ‘이것 좀 줘 봐’라고 할 때에는 나의 정보를 남에게 주면서 말할 때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것 좀 줘 봐’와 ‘그것 좀 줘 봐’는 다릅니다. ‘저것 좀 줘 봐’는 둘 다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 청자를 수고롭게 합니다. ‘그것 좀 줘 봐’는 청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주기를 요청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는 것은 타인을 궁금해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은 그 사람만이 아는 정보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의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은 나에게는 없고 남에게는 있는 것이고,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를 닫아두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열어두고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범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묻습니다. ‘무엇’을 묻는 행위는 우리를 열려 있게 합니다. ‘무엇’을 묻는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게 해 줍니다. ‘무엇’은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그것’이고, ‘그것’은 ‘무엇’을 있게 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이 사라질 때 ‘그것’은 비로소 지칭의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지칭의 기능을 할 때 사람들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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