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선으로 엇갈린 사랑의 소통, 헤어질 결심

by 윤리로 인생핥기

헤어질 결심(Decisiom To Love, 2022)(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외)


* 이 글에는 헤어질 결심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 글은 영화의 시간 순서대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헤어질 결심’은 고전 스릴러 형식을 통해 비윤리적이며 위태로운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어긋난 관계를 통해 사랑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겪는 사랑은 불륜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소통의 엇갈림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대각선처럼 엇갈린 그들의 사랑과 더불어 그들이 서로에게 던진 시그널의 송수신과 그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대각선으로 엇갈린 사랑


영화에는 유독 대각선의 이미지가 많이 나옵니다. 대각선 구도는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주기 때문에 불륜과 살인이라는 영화의 상황을 담아내기에 알맞은 구도처럼 보입니다. 저는 그러한 의미에 더해, 주인공인 서래(탕웨이 분)와 해준(박해일 분)의 상황을 대각선의 특성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1부: 해준에게 기운 사랑

1부에서의 용의자 서래는 그녀를 수사하는 형사 해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심리적 감옥에 해준을 가두고, 영화는 이를 여러 이미지를 통해 표현합니다. 해준은 잠복하여 서래를 지켜봅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일하고 있는 가정집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씬이 있습니다. 이 씬에서 서래가 새장 안에 있는 푸른 새에게 먹이를 주다가 이동하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해준이 마치 그 새장 안에 갇힌 듯한 인상을 줍니다. 뒤이어 어항 속 파란 물고기에게 먹이를 줄 때에도 서래가 지나가자 그 자리에 남은 해준은 어항 속 물고기처럼 갇혀 있습니다. 이후 서래는 옥상으로 용의자를 쫓아간 해준의 모습을 멀리 떨어진 도로의 철창 사이로 바라봅니다. 마치 간수가 죄수를 바라보는 듯 말이죠. 그러나 그렇게 그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서래는 점차 해준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새장과 어항의 이미지 안에 해준을 가두는 씬이 자주 등장한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반면, 해준은 서래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의 감정이 일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에 있어 그는 완벽주의자이지만, 자신의 삶은 완벽하지 않기에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런 그의 불면증을 해소해 주고 완벽한 삶으로 만들어 준 존재는 서래였습니다. 매력적인 서래의 모습에 해준의 눈은 멀게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등장하는 안개의 형상은 그의 시선을 가로막습니다. 처음 자신의 아내인 정안(이정현 분)에게 밥을 해줄 때에도 정안과 해준 사이는 찌개의 김이 가로막습니다. 구가 집으로 돌아가는 해안가 도로는 안개로 인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순간에 안약을 넣습니다. 명료하게 상황을 보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일 것입니다.

정안에게 밥을 차려줄 때 찌개의 김이 두 사람 사이에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그랬던 그가 서래로 안해 눈을 제대로 뜨기 시작합니다. 여러 증거들을 바라보며 서래가 본인의 남편 기도수(유승목 분)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그는 서래를 사랑했기에 그녀의 범죄 행위를 묵살합니다. 완벽주의자로서의 자신을 ‘붕괴’시켜가면서까지 말이죠.


심문 씬에서 서래와 해준의 엇갈린 모습이 시각적으로 표현됩니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은 의도적으로 해준과 서래가 각자 다른 곳을 보는 것처럼 비춥니다. 즉 해준이 서래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대로 보여주면서 서래가 해준을 바라보는 모습은 해준의 뒤편에 위치한 CCTV를 통해 보여주어 그들이 실제로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나 심리적으로는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심문의 과정에서 보통 형사는 자신을 감추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입장입니다만, 이 장면에서의 형사인 해준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반면, 서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데 성공합니다.


이는 심문 중간에 초밥을 먹는 장면에서도 드러나는데요. 해준은 동봉된 물고기 모양의 간장 병을 다 비워 속내를 보입니다. 반면 서래는 간장 병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물고기 병의 속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위와 같은 화면 구성을 통해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이러한 해준의 사랑은 홍산오(박정민 분)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홍산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결과조차 피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영화 속에서 나무는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데요. 홍산오가 형사인 수완(고경표 분)에게서 도망칠 때 나무에 부딪히는 표현을 통해 그 역시 사랑하는 사람임을 암시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형사로서의 완벽한 커리어에 스스로 흠집을 내면서 붕괴해 간 해준의 사랑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2부: 서래에게 기운 사랑

2부의 시점에서 서래는 해준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입니다. 서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원전 ‘붕괴’와 관련된 드라마를 봅니다. 서래는 아마도 1부 마지막 그들이 헤어질 당시, 해준으로부터 ‘자신이 붕괴되었다’는 표현을 듣고, 해준이 자기 자신마저 버릴 만큼 서래 본인을 사랑했다고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심문 때 해준이 그녀에게 대접한 초밥을 먹으며 간장통을 다 비웁니다. 이를 통해 그녀의 마음가짐이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투자 사기 가해자인 임호신(박용우 분)이란 남자와 결혼한 상태입니다. 그런 그녀가 부산에서 이포로 이사 간 해준을 따라가기 위해 남편에게 이포로 이사를 가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후 그녀의 남편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해준은 서래를 찾아가 의심하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혐의가 사라진 후 그들은 산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완결’ 짓기 위해 역설적으로 스스로 ‘미결’ 사건으로 남는 것을 선택합니다. 해준의 마음이 사랑으로 인해 붕괴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스스로를 붕괴시킴으로써 해준의 마음에 영원히 남고자 한 것이죠. 그리고 그런 그녀의 붕괴는 자살을 위해 쌓아 놓은 모래 언덕이 파도에 붕괴되는 씬을 통해 은유됩니다.


반면 해준의 마음은 1부 마지막에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서래로 인해 한번 붕괴된 그는 2부에서 유독 눈에 안약을 많이 넣습니다. 일적으로 완벽주의자였던 그가 붕괴된 것은 그가 운동화 대신 구두를, 스마트 워치 대신 일반 시계를 찬 부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안개에 싸인 동네 이포에서 생활하며 점점 시들어갑니다.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며 말이죠. 그렇지만 임호신 사망 사건을 조사하며 서래와 함께 택시로 이동하던 그는 깊은 잠에 빠집니다. 서래와 함께하여 그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 것처럼 말이죠. 그렇지만 그는 계속 서래를 의심합니다. 서래와 함께 산에 오른 후 그는 뒤늦게 서래를 찾아 헤매게 되지만, 서래는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한 이후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해안가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울부짖는 그의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처럼, 해준과 서래가 지닌 서로에 대한 마음은 대각선과 같은 모양새를 보입니다. 극 중 서래의 대사처럼, 해준의 사랑이 끝날 때 서래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죠. 대각선을 이루는 두 직선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단 한 지점에서 교차합니다. 해준과 서래의 관점에서, 1부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바로 서로를 향한 마음의 두 대각선이 교차하는 지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유독 대각선의 이미지가 자주 나온다. 마치 서래와 해준의 관계처럼.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시그널의 송신과 수신, 엇갈림


송신

이 영화는 시그널과 관련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보통 언어라는 시그널로 소통합니다. 영화 내에서는 그 외에도 위치추적 장치나 데이터, 혹은 휴대전화 등으로 소통합니다. 이때의 시그널, 특히 언어라는 시그널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극 중 서래와 해준이 쓰는 언어가 각각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데요. 그들은 소통할 때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서래의 경우 모국어가 아니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는 해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극 중에서 해준은 서래의 혼잣말을 녹음하고 이를 번역하는데요. 서래가 “해준의 심장을 갖고 싶다”라고 번역한 말은 실은 “해준의 마음을 갖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서래는 해준이 이야기 한 “나는 붕괴되었다”는 말을 듣고 해준의 사랑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해준은 자신이 언제 서래를 사랑한다고 말했냐고 되묻습니다. 이렇듯 언어로 인한 송신은 한계를 지닙니다. 언어의 구체적인 의미나 상황에 따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그 언어를 수신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언어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서래와 해준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언어가 지닌 태생적 한계를 넘어 서로의 마음 깊숙한 곳을 알아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죠.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역시 언어의 한계로, 혹은 불완전한 사랑으로 인해 끝까지 어긋나게 됩니다.


수신

우리는 시그널을 언어적인 것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수신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통해 상대방을 향한 시그널을 받아들입니다.


영화는 해준의 눈, 그리고 죽은 기도수와 임호신의 눈, 수산시장의 생선의 눈 등 다양한 눈을 보여줍니다. 특히 해준의 눈은 앞서 언급했듯 여러 안개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해준은 보는 것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서래와 관한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는데 실패합니다. 심지어 극 후반에는 정안의 외도 역시 보지 못하였고, 서래가 죽은 장소에서 서래를 보지 못합니다.

서래는 바닷속에 있음에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를 찾는 해준/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이때 본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내 시선이 그 사물을 향하고 있다, 즉 그 사물을 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해준이 처음 서래를 마주했을 때 영화는 서래의 모습이 아닌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의 눈을 비춥니다. 즉 해준이 서래를 욕구하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해준은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미결된 사건에 대해 집착하는데요. 미결 사건에 대한 그의 집착은 그의 자취방 벽에 박혀있는 미결 사건의 사진들을 계속 바라보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해준은 잠복근무를 하며 서래를 몰래 지켜봅니다.


그런 그의 시각적 시그널을 방해하는 존재는 서래입니다. 해준의 자취방에 함께 누운 해준과 서래. 해준이 침대에 누워도 잠에 들지 못하자 그녀는 그를 재워줍니다. 그러면서 방의 불을 서서히 끕니다. 전구를 해준의 눈이라고 한다면, 서래는 해준의 시야를 어둡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래 역시 해준과 마찬가지로 보는 것을 더욱 좋아합니다. 기도수의 죽음에 대해 설명을 들을 것인지 사진을 볼 것인지 묻는 해준의 질문에 서래는 보는 것을 택합니다. 그러면서 해준은 서래가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며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둘은 마침내 절에서 마주 봅니다. 심문 때 엇갈린 그들의 시선과는 대조적으로 말이죠.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마치 건널 수 없는 간극처럼 커다란 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래와 해준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그들에게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막고 있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또한 청각 정보 역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해준과 서래는 극 중 음성 메모를 통해 서로의 속마음을 공유합니다. 음성 메모는 자신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혼자만의 생각을 메모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음성 메모를 통해 녹음된 목소리는 상대방에 대해 자신이 진실로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나타냅니다. 1부에서는 해준이, 2부에서는 서래가 자신의 속마음을 음성 메모의 형태로 공유합니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 순간, 1부의 끝자락에 해준이 서래에게 했던 마지막 말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결국 그들의 사랑을 끝내 미결로 남겨놓게 됩니다.


이해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동일한 시그널을 받는다 해도 각자의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시그널에 대한 해석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치 2부에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던 서래의 청록색의 드레스처럼 말이죠. 그리고 해준의 음성 메모에서 해준은 의도하지 않았던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읽은 서래처럼 말이죠.


특히 극 중 서래는 영화 내에서 가장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그런 서래의 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1부에서 해준은 서래가 지닌 인간다운 면모에 집중합니다. 해준은 잠복근무를 통해 그녀가 매일 다른 할머니들을 자신의 어머니처럼 보살피고, 길 잃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등 그녀가 지닌 따뜻한 모습만을 관찰합니다. 반면, 동료 형사인 수완은 처음부터 그녀가 남편 기도수를 살인했다고 의심합니다.서래를 심문하는 장면에서 수완이 들어오자마자 서래는 안감이 붉은 천으로 덧대어진 푸른 상의를 벗습니다. 수완이 겉과 속이 다른 서래의 모습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리창 건너의 서래의 얼굴과 유리창에 비친 수완의 얼굴이 미묘하게 겹친 구도를 통해 보여줍니다. 즉 두 형사가 한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완은 해준이 보지 못하는 서래의 모습을 본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이러한 구도는 2부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번에는 해준과 동료 형사가 반대의 관점을 지닙니다. 이미 서래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해준은 이번 남편 살인에 서래가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반면, 후배 형사 연수(김신영 분)는 살인범인 철성이 이미 범행을 자백했으므로, 피해자의 가족이자 남편을 잃은 가여운 그녀를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연수는 해준이 보려 하지 않는 서래의 부분을 본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이처럼 서래라는 동일한 인물에 대한 형사들의 관점이 다른 것처럼,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서로가 주고받는 시그널에 대한 이해, 즉 해석의 차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마치 이포 바닷가에서 커다란 섬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서래와 해준처럼 말이죠.

서래와 해준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들의 마음 사이에는 '섬'과 같은 거대한 장애물이 존재한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랑과 헤어질 결심


산과 바다

영화에서 산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해준과 서래는 구소산을 매개로 처음 만납니다. 구소산은 해준과 서래의 연을 이어준 공간입니다. 호미산은 서래와 해준이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는 공간입니다. 둘이 호미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나눌 때 잠시나마 그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는데요. 카메라가 해준 쪽을 비추자 그의 뒤에 나뭇잎이 없는 황량한 나무가 화면에 걸립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이동하여 서래 쪽을 비추자, 그녀의 뒤에는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 숲이 나타납니다. 이는 서래에 대한 해준의 사랑은 황량해졌음을, 해준에 대한 서래의 사랑은 풍성해졌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2부 시점의 해준의 사랑은 붕괴되어 있다. 서래는 자신과 해준의 사랑(나무)와 바위 틈을 지나쳐 바다를 향한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또한, 산은 솔직함의 공간입니다. 서래는 자신의 남편 기도수에게 학대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기도수에게 서래 자신이 지닌 분노를 적나라하게 표출한 공간, 그리고 그런 서래의 면모를 해준이 알게 된 공간은 구소산이었습니다. 극 후반, 서로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한 장소는 호미산입니다. 서래는 극 중에서 산을 무서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녀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랬던 서래는 해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는 안개 없어요.” 안개는 그동안 해준의 시야를 가린 상징입니다. 그런 안개가 없다는 것은, 서래가 해준에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겠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반면 바다는 사랑이 완결되는 혹은 미결되는 공간입니다. 서래는 바다를 통해 한국으로 왔고, 바다 배경의 벽지를 등지고 있으며, 바다에서 자신의 사랑을 완결 짓습니다. 해준 역시 서래와 마찬가지로 산 보다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래는 해준에게 지속적으로 바다의 형상으로 다가옵니다. 함께 누운 침대에서 해준이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숨소리와 해준의 숨소리를 맞추며 전등불을 끕니다. 그때 해준의 침실은 마치 바닷속인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리고 해준은 그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 즉 불면증이 해소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때 숨소리를 맞춘다는 설정은 둘이 하나가 되어 함께 숨을 쉰다, 즉 둘의 사랑이 실현되었다는 걸 나타냅니다. 그리고 서래는 극의 마지막에 스스로를 바닷속에 가둠으로써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었고, 그렇게 그녀의 사랑은 완결되었습니다.

바다와 같은 서래의 사랑은 벽지를 통해 드러난다. / 출처: 헤어질 결심 스틸컷

서래와 해준의 사랑은 바다와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묘사되는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모든 과오를 덮어줍니다. 1부의 마지막에서 해준이 서래의 사건을 덮으면서,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휴대전화를 바다에 버리라고 한 것 역시 그녀를 위해 모든 사건을 덮으려 한 해준의 사랑을 보여준 단면입니다. 이 대목에서 서래는 해준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게 되죠. 또한 바다는 파도가 계속 몰아치기 때문에 그 경계 또한 모호합니다. 마치 서래의 마음처럼 말이죠. 그녀가 복합적인 모습을 지녔다는 것은 그녀가 모호한 사람이라는 반증입니다. 뚜렷한 경계가 없는 바다처럼 말이죠.


헤어질 결심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상대방과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해준의 부인인 정안은 둘 사이의 중학생 딸 때문에 억지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완전히 통제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해준에 대한 그녀의 통제는 해준이 서래를 만나기 전까지는 잘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해준이 서래를 만나면서 그녀는 이제 해준이 자신의 통제하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상황을 눈치챈 그녀는 주저 없이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실행에 옮깁니다.


해준은 서래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가 느끼는 공허한 빈자리를 서래가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그녀의 배신은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1부의 마지막에 그녀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물론 그는 실질적으로 그녀와 헤어졌습니다만, 그런 그의 결심은 완결되지 못합니다. 이후 다시 만난 서래의 ‘헤어질 결심’으로 인해 그의 결심을 끝을 맺지 못하게 되죠.


서래는 해준을 이용할 목적으로 해준에게 접근합니다. 그렇지만 해준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점차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해준과의 사랑이 삶에서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해준의 붕괴로 영원해진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해준이 그녀 자신과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직감했던 겁니다. 그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집착하는 미결 사건이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따라서 그녀의 ‘헤어질 결심’은 해준과 현생에서 헤어질 결심임과 동시에 미결 사건으로 남아 영원히 해준과 함께할 수 있는 결심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 위대한 소통의 힘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미약하게나마 가능케 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극 중 서래와 해준은 상대방에 대한 다른 시그널을 보내고, 방향도 어그러졌으며, 그에 대한 해석도 잘못되었지만, 그들이 함께 느낀 그 순간의 행복은 진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사이의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사랑은 사랑하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를 보았을 때, 고립된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아득한 마음의 심연을 넘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마저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이 옳다고 여겼던 가치관이 붕괴되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랑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통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서로의 삶에 스며들며 서로의 다름에서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만약 서래와 해준이 서로에 대해 진솔하고 상대를 위하는 사랑을 했다면 그들의 소통은 어긋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서래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입니다. 동시에 역설적인 사랑이죠. 그녀는 해준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립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완결시키기 위해 해준에게 미결로 남는 것을 선택합니다. 해준의 붕괴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중요한 가치관을 포기한 사건이므로, 서래가 그것을 사랑으로 느낀 것은 이해됩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녀가 해준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녀는 해준의 행복을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해준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과연 이것을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너무 흔한 단어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을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상대를 통제하려는 정안의 사랑, 상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기도수의 사랑, 혹은 상대에게 영원히 남아 있기 위해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서래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모든 이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진정한 사랑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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