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고 위대한 "사랑"에 대하여, 인터스텔라

현실과 이상, 이성과 사랑이란 키워드로 인터스텔라 겉핥기

by 윤리로 인생핥기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매튜 맥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매켄지 포이 외)

* 이 글에는 인터스텔라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 글은 영화의 시간 순서대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대중 매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는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가치는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쉽게 소비됩니다. 사랑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겪으며, 몇몇 사람들은 “사랑이란 진부한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퍽퍽한 현실에 사랑은 사치라는 말까지 돌고 있습니다. 참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중력을 통해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영화, 인터스텔라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현실과 이상, 이성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지니고 있는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영화는 머피(매켄지 포이, 제시카 차스테인 분)의 책장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합니다. 책장 한편에는 우주선 모형들이 놓여 있고, 그 위로 먼지가 조용히 쌓이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인간은 이 먼지로 인해 질식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먼지는 잔혹한 현실을 의미합니다. 또한, 현실이 아닌 이상을 추구할 때 마주할 수 있는 시련처럼 여겨집니다. 먼지에 파묻힌 우주선은 먼지라는 현실의 어려움을 뚫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 희망, 이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영화 초반의 우주 사업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사실상 쓸모없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묘사됩니다.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상은 뜬구름을 잡는 소리처럼 여겨지죠.


이와 같은 이상과 현실의 대비는 악몽에서 깬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쿠퍼는 과거 나사에서 우주 비행사 훈련을 받았습니다만, 알 수 없는 중력 이상 현상으로 인해 훈련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의 침대는 어두컴컴합니다.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는 어둠 속에서 홀로 잠에서 깹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침실에서 딸인 머피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어두운 침실을 뒤로하고 햇살이 비치는 창문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곳에는 먼지에 뒤덮인 옥수수밭이 늘어서 있죠.


저는 이때의 어둠을 이상으로, 빛바랜 해가 비치는 옥수수밭을 현실로 해석했습니다. 어둠은 불확실성을 나타냅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이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은 말 그대로 이상일뿐 현실에 어떻게 실현될지 알 수 없습니다. 불확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어둠 속에 머물러 있을 때 딸과 대화를 했다는 점에서 딸인 머피 역시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현실은 우리에게 뚜렷하게 드러나있습니다.


현실은 확실하지만 불완전하고, 이상은 불확실하지만 완전을 지향합니다. 쿠퍼의 등 뒤에는 어둠이, 즉 불확실한 이상이 있고, 그의 눈앞에는 햇살이 옥수수 밭, 즉 확실한 현실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아이와 장인어른을 모셔야 하므로 농사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의 고뇌가 창문 밖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러한 그의 성향은 그의 아들(티모시 샬라메, 케이시 에플렉 분)과 딸에게 양분되어 드러납니다. 그의 아들은 현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는 아버지의 현실적인 측면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반면에 딸은 이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이상적인 측면을 존중하고,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러한 측면은 초반, 드론을 따라가는 씬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세 식구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쿠퍼가 드론을 발견하자 쿠퍼는 차의 방향을 길이 아니라 옥수수 밭으로 바꿉니다. 이 옥수수 밭을 현실이라고 한다면, 옥수수 밭을 해치는 모습은 새로운 미래를 위해 현실을 개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카메라는 옥수수 밭을 해치는 쿠퍼와 아들을 한 앵글로 담습니다. 옥수수 밭에 집중하는 아들은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대편 앵글에서는 딸인 머피 혼자 창문 밖 하늘 위의 드론을 바라봅니다. 이상을 좇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운전대를 아들에게 맡긴 쿠퍼는 아들과 딸 사이에서 드론을 잡기 위해 노트북을 켭니다.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합니다.


쿠퍼 가족은 드론을 따라 옥수수 밭을 지나 넓은 하늘과 물이 있는 절벽에 이릅니다. 드론은 새로운 이상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이상에는 희망과 동시에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도 공존합니다. 아들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운전)를 담당했다면, 딸은 이상을 좇고, 이상을 실현하는 역할(드론 조종)을 맡았습니다. 이는 이상을 추구할 때 현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운영될 테니까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상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세상이 찾아올 것이니까요.

쿠퍼의 아들과 딸은 각각 현실과 이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출처: 인터스텔라 스틸컷


이런 현실과 이상에 대한 쿠퍼의 속마음은 장인(존 리스고 분)과의 대화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장인과의 첫 번째 대화에서 밝은 낮, 먼지 쌓인 창을 뒤로한 채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답답한 현실에 분개하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음에 체념합니다. 두 번째 대화에서 그는 어두운 밤, 먼지가 닦인 창틀을 뒤로 이상을 상징하는 새로운 어둠(우주)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장인에게 묻습니다. 영화 후반, 무사히 쿠퍼 스테이션에 도착한 후, 자신의 집을 복원해 놓은 곳 창가에서 어둠과 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깥을 바라보며 타스와 대화를 할 때, 그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다며 브랜드 박사를 향해 나아갈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상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기회를 얻게 됩니다.


현실주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의 벽은 이상보다 높고, 현실에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이죠. 그렇지만 그러한 현실 역시 과거에는 이상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이상을 꿈꾼 사람들의 움직임과 연대가 있었기에 그 이상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현실을 무시할 순 없지만, 현실에만 안주한다면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상을 노래해야만 이상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성과 사랑 사이에서


이 영화는 이성과 사랑이라는 두 가치를 대비하여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인공인 쿠퍼는 이성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통합과 분석


영화에서는 사랑을 중력에 비유합니다. 영화의 중요한 소재인 중력은,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지닌 동시에 쿠퍼와 머피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 중력 이상 현상으로 인해 트랙터들이 쿠퍼의 집 앞으로 모입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사랑은 만물을 모이게 한다는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 490? ~ BC 430?)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중력과 같이, 사랑은 서로를 끌어당기고 통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중력이에요”라는 브랜드 박사(앤 해서웨이 분)의 대사는 사랑과 중력의 관련성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쿠퍼와 머피를 만나게 합니다. 마치 중력처럼 말이죠.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 중력은 마치 사랑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출처: 인터스텔라 스틸컷


문제는 중력이에요.


서구 사회에서 이성, 특히 도구적 이성은 대상을 분석하고, 장단점을 따지며 이른바 “합리적인 선택”, 즉 적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얻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영화에서는 이성을 도구적 이성으로 한정 지어 묘사합니다. 극 중 쿠퍼는 집으로 돌아갈 연료 문제를 계산하며, 만 박사(맷 데이먼 분)와 에드먼즈의 두 행성 중 어느 한 곳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브랜드 박사는 사랑의 위대한 힘을 언급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인 에드먼즈의 행성으로 가자고 그 둘을 설득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쿠퍼는 만 박사의 데이터가 확실하기 때문에 만 박사의 행성으로 향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쿠퍼의 앵글과 브랜드의 앵글을 대비하듯 잡습니다. 마치 쿠퍼가 도구적 이성을, 브랜드가 사랑을 대표하는 것처럼 말이죠.


소통과 계산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쿠퍼가 우주로 떠나기 전, 쿠퍼는 머피와 대화하며 시계를 꺼내 듭니다. 그리고 그는 그 시계를 통해 세상을 구할 방법을 머피에게 안내합니다. 머피에 대한 쿠퍼의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상대방과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눈빛이나 작은 행동만으로 그 사람의 기분과 현재 상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리적 선택에는 소통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합리적인 계산만이 의사 결정에 반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이 인간의 이기심과 만나게 되면, 비도덕적 행동마저 합리화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만 박사의 데이터는 거짓이었습니다. 만 박사는 자신에게 다가올 구조대의 비행선을 탈취하여 살아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로밀리(데이빗 기아시 분)의 생명을 빼앗고, 인듀어런스 호를 탈취하고자 합니다. 그는 인듀어런스호와 도킹하지 말라는 쿠퍼의 소통을 일방적으로 끊습니다. 그는 소통이나 연대가 아닌 자신의 판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자기 합리화하면서 말이죠.


신뢰와 비판


사랑은 상대를 신뢰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여나 상대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믿어줄 것입니다. 브랜드 박사의 대사는 사랑과 신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죠.”


브랜드 박사의 아버지(마이클 케인 분), 로밀리, 만 박사 모두 중력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블랙홀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플랜 A, 즉 현생 인류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중력 방정식을 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풀기 위한 열쇠는 우주상 가장 어두운 공간, 그리고 인류가 가보지 못한 불확실성의 공간, 바로 블랙홀에 있습니다. 쿠퍼는 사랑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누구도 가보지 못한 블랙홀 안으로 자신을 던집니다. 이미 한번 이성적 판단으로 실패를 경험한 쿠퍼의 입장에서, 어쩌면 사랑을 믿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확실한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믿고 불확실성에 온전히 뛰어드는 것, 그것이 사랑의 위대한 점이지 않을까요.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죠.


만 박사와 쿠퍼를 통해 이성과 사랑의 대비되는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 출처: 인터스텔라 스틸컷


반면 이성은 비판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특히 현대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들은 모두 오류 가능성을 전제하고 끊임없는 비판을 시도합니다. 물론 그와 같은 비판을 통해 인류는 엄청난 학문적 성취를 얻을 수 있었고, 미신이나 잘못된 신념을 고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성의 비판 기능은 기존 이론에 대한 불신을 전제합니다. 물론 이것 역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플랜 A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플랜 B, 즉 기존 인류의 전멸을 전제로 새로운 식민지에서 인구 폭발을 일으키는 방법을 고안합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브랜드 박사는 플랜 A를 불신했습니다. 그것은 만 박사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리고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플랜 A가 가능할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탐사대원들에게 심어놓습니다. 끔찍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서 말이죠. 이는 그들의 이성적 판단이 일정 부분에서는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탐사대원들에 대한 불신, 혹은 플랜 A에 대한 불신 말입니다. 인간의 지적 성장을 위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비판되는 대상을 수용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이 바탕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신뢰와 비판은 상호보완적이며 함께 할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합리적 사랑


영화에서는 이성과 사랑을 대비합니다. 그러나 이성과 사랑, 이 두 대비되는 개념은 서로의 결핍을 보완하며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이성은 사랑의 맹목성을 교정하고, 사랑은 이성의 차가움을 따뜻하게 덮어줍니다. 이성 없는 사랑은 파괴적이고, 사랑 없는 이성은 비인간적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성과 사랑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는 저의 윤리관을 '합리적 사랑'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사랑이란 가치에 방점을 두되, 실천적 지혜를 활용하여 상황과 맥락에 가장 타당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박사의 대사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이론에만 집착해 왔죠.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발명한 게 아니지만 관찰이 가능하고 강력하죠. 뭔가 의미가 있을 거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리 공부를 하다 보면, 동서양을 초월하여 등장하는 개념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이성과 사랑입니다. 앞서 언급한 엠페도클레스처럼, 사랑은 사람을 모으고 연대시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도구가 아닌 그저 그 사람 그 자체로 대우하게 합니다. 개인 간의 사랑은 결국 사회적 연대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없는 맹목적인 사랑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등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상황들이 그러합니다. 따라서 사랑은 실천적 지혜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물질적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높은 자살률이 반증하듯, 삶을 살기는 더욱 팍팍해졌습니다. 이기심에 기초한 경제 시스템은 개인의 이익을 합리화된 이성으로 포장하며 빈부격차를 확대합니다. 내가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른바 영혼까지 끌어서 대출을 받아 평생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합니다. 그마저도 가능하다면 다행입니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단칸방에 살면서, 일을 얻는 것조차 여의치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었고, 아주 좁은 기회를 잡기 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회를 좁은 문으로 만든 세상을 탓할 여력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을 보며 우리는 분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미디어나 SNS는 일부 사람들의 화려한 삶의 모습만을 조명합니다. 그것과 비교해 보면 나 자신은 너무나도 초라해지죠. 그렇기 때문에 그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로 향합니다. 이른바 “~충”이라는 이름을 붙여가면서 말입니다.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을 벌기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가자들처럼, 오늘도 우리는 잠재적인 경쟁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모습은 영화 속 만 박사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고 동료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이기심을 "합리적 선택"이라 변명합니다. 이는 오늘날 합리화된 경쟁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랑이 갖는 강력한 힘을 믿고 있습니다. 부정의한 사회는 우리를 이기적으로 살라고 종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아주 작게나마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은 명확합니다. 상대방을 밟지 않으면 우리는 경쟁에서 살아갈 수 없죠. 이상은 불확실합니다. 내가 현재 주위의 사람을 믿고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믿음으로써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독재 국가였습니다. 그렇지만 공동선을 향한 국민들의 믿음과 연대가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손으로 성숙한 민주국가를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지금은 서로를 불신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성숙해 가면서,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소통하면서 언젠가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란, 어쩌면 정말 흔하고 진부한 단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족을 통해, 학생들을 통해, 동료 선생님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아침에 정성스레 싼 도시락을 건네며 오늘도 힘내라는 아내의 한마디에서, 자기 전에 사랑한다며 볼에 뽀뽀하는 아들의 얼굴에서, 위로의 한마디로 밝아지는 학생의 얼굴에서 매일 같이 이 사랑을 경험합니다. 서로를 믿어 주고 이해하며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생각하는 형태로 말이죠. 진부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대한 사랑이, 요즘 같이 어려운 이 시대에 재평가되길 바라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사랑을 통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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