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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로 인생핥기 Apr 01. 2023

의무와 욕구 사이의 칸트식 내적갈등

야채는 먹기 싫지만 야채는 먹어야 한다

최근 들어 아이가 조금씩 아팠습니다.


심각한 건 아니고 기관지염 감기 결막염 중이염 등등이 왔다리 갔다리하면서 아이가 자잘하게 아팠고


그럴 때마다 우리 아이는 예민하게 짜증을 냅니다.


알러지성 피부염 때문에 며칠 동안 고기는 못 먹고 야채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밥을 먹던 아이는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고기는 먹으면 안 되고 야채만 먹어야 돼요ㅠ”

“아픈 거 나을 때까지는 그렇게 먹어야지. “

“그렇지만 고기는 먹고 싶고 야채는 먹기 싫단 말이에요!”

“그럼 고기 조금만 먹어볼까?”

“안 돼요! 그럼 빨리 안 나아요ㅠ 야채 먹고 고기는 먹지 말아야 돼요ㅠ“

“그럼 어서 밥 먹자.”

“그렇지만 고기 먹고 싶단 말이에요.“


이런 식의 무한반복이 계속되는 동안 아이의 울음보가 터집니다. 보기 안쓰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슬슬 어쩌라는 건지 짜증에 올라옵니다.


아이와 부모의 양가감정(兩價感情)이 시작됩니다.


아이가 혼자 의무(해야 하는 것: 야채를 먹어야 한다)와 욕구(하고 싶은 것: 고기를 먹고 싶다)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걸 보면서 저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윤리이론이 생각났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는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의 방향은 자연적 경향성, 즉 동물 종으로 태어났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욕구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그 욕구가 향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쾌락, 장기적으로는 행복입니다. 이는 동물들도 공유하고 있는 방향입니다.


반면 인간의 의지는 동물과는 달리 도덕법칙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도덕적 상황에서 적절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실천이성이 우리 자신에게 명령하는 방향이 도덕법칙이며, 이는 인간 만이 따를 수 있고 인간만이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칸트는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동물적 욕구(자연적 경향성)를 뛰어넘어 도덕적 의무(도덕법칙)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은 도덕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의지, 즉 선의지라고까지 역설합니다.


아이의 갈등도 바로 이 욕구와 의무 사이의 갈등입니다. (물론 이때 아이의 의무는 자율적 도덕판단에 따라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무라기보다는 외적으로 주어진 의무이기에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그런데 보통 이런 갈등은 마음속으로만 하지 않나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릴까 말까 하는 사소한 갈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쓰레기를 길에 버리고 싶다는 욕구와, 쓰레기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 사이의 갈등이라면 보통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잖아요,


이런 내적 갈등을 짜증과 함께 발산하는 우리 아이…ㅎㅎ


이러한 내적 갈등 혹은 양가감정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는 법을 배우리라 믿으며 짜증을 있는 대로 받다가 그만 나도 짜증을 내버립니다…ㅎㅎ 아빠로 사는 건 언제나 쉽지 않네요^^;;



아이의 짜증에 같이 부정적 감정이입을 하지 말고, 짜증의 이유를 파악하고 보듬어주자. 갈등을 통해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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