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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단상

오징어게임2로 보는 자유 민주주의

by 윤리로 인생핥기

이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오징어게임의 시즌2가 나왔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작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작품인지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미완의 결말까지 감상했습니다.


전작과는 달리 이번 작에서 새롭게 도입된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이 게임을 계속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나타내는 표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표식은 곧 그 사람의 가치관뿐 아니라 이 작은 사회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진행할지 투표를 진행하기 전 게임의 진행자는 이 게임이 참가자들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AA1tQ7T6.jpg 게임의 진행자들이 보여주는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투표' / 출처: 넷플릭스

다른 참가자가 죽어야만 자신이 이익을 얻는 이 게임은 마치 자본주의 체제 위에 굳게 세워진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씁쓸한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의 이기심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의 공익이란 사적 이익의 단순 총합이라는 관점을 보입니다. 또한 로크로부터 시작된 현대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은 자연권을 지닌다고 보며, 이러한 자연권의 핵심을 사유재산권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자연권은 천부인권으로서 보호되어야 하며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라고 천명합니다.


두 사상은 개인의 이익(사유재산권의 보호)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상이므로 이론적 유사성을 지닙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한 국가라면 자유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로크적 자유주의가 갖는 한계점을 정확하게 간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현재 구성된 국가는 잘못된 사회계약에 근거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잘못된 사회계약은 자연상태에서 사유재산권의 개념이 형성된 이후, 강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약자들을 속여 맺어진 일종의 불법 계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약자들은 마치 자신이 사유재산을 갖게 된다면 자신도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며 이 계약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국가가 모든 이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가진 자는 가진 것을 바탕으로 더욱 잘 살게 되며, 갖지 못한 자는 가난을 대물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현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도 이와 같은 한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자유 민주주의가 이기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치란,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삼은 정치는 필연적으로 당파를 형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들의 이익은 모두 다르고 이해관계는 하나의 결론을 합의 하에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임 참가자들의 '자유'


오징어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그 게임에 참가한 것처럼 게임의 진행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 궁지에 몰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참가자들은 게임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그들은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강제로 내몰린 것입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것 역시 개인이 ‘선택’ 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 역시 ‘우연’적인 요소가 ‘필연’적으로 개입합니다. 게임 참가자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몰린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들이 만약 부자인 부모를 만났다면, 그들은 궁지에 몰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치 철학자 존 롤스는 이를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물론 개인의 욕심을 채우고자 무리하게 대출을 끌어다 쓴 사람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분명 선택에 의해 그와 같은 상황에 몰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들이 채무를 건강하게 갚아 나갈 수 있는 기회, 혹은 안전장치는 이 사회에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임 참가자들의 '민주주의'


또 이 작품에서는 ‘자유’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파해칩니다. 본 작에서는 게임이 끝날 때마다 게임을 끝낼 것인지 계속 투표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투표를 한 후 가슴에 어떤 표를 던졌는지 표식을 부착하게 합니다. 저는 이것이 현대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했습니다.

108806_139782_4138.jpg 참가자들의 가슴에는 자신의 투표 결과(혹은 정치적 가치관)를 드러내는 표식이 부착된다. / 출처: 넷플릭스

대의 민주주의는 주권을 지닌 시민들이 정치를 대신해줄 대표자를 선출하여, 선출된 대표자가 정치를 수행하는 민주주의를 일컫는 말입니다. 게임 내에서는 대표자를 선출하진 않지만 공동체 전체의 문제에 대해 투표를 하게 되고, 그 투표 결과가 그 사람의 ‘편’을 드러내 주는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편’에 의해 참가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이 발생합니다.


사실 공동체의 문제는 O나 X처럼 단순하게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참가자들 중 어떤 사람은 협박에 의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투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투표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개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게임의 시스템은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로 인해 무리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서로 관심도 없었을 참가자들이 단지 선택의 결과에 따라 서로를 적대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게임의 주최 측은 그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이용하고 방관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공멸하기 전에 그들의 싸움에 개입합니다. 이때의 개입은 게임의 진행이라는 주최 측의 이익에 의해 이뤄질 뿐입니다. 즉 참가자들 사이의 반목은 결국 참가자들의 전적인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들을 이용한 시스템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현실의 정치 상황과도 이어집니다. 보수 혹은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지만, 단지 정치색에 따라 분류되고 혹은 ‘절대악’과 같이 묘사되기까지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정치란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이지만, 실제 정치는 단지 어떤 진영이 권력을 잡고 유지할 수 있는 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사익만을 위한 정치의 대안


이에 대한 대안 중 하나인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의 이론을 소개할까 합니다. 하버마스는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의 독단을 배제하고, 이른바 의사소통 합리성을 지닌 시민들이 공론장에 함께 모여 만장일치의 해결방안을 도출하고 이에 따라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00511588601_20140818.jpg 하버마스는 공동의 문제에 대해 합리적 시민들의 의사소통, 협력, 연대를 중시했다. / 출처: 구글


즉 정치적 문제 해결에 있어 개인의 사적 이익에 기반한 자유 민주주의적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의 선을 합의할 수 있는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연대에 기초한 합리적 결정(만장일치의 동의에 기반한)이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을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합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이성을 도구적 합리성이라 지칭하며, 이 능력은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본 작에서는 위와 같은 게임의 불합리성을 인식하고, 제3의 결정을 내린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의 고군분투를 보여줍니다. 성기훈은 단순히 O나 X가 아닌, 게임 전체의 전복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입장에서는 그의 그러한 행위 역시 독단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의 결정은 공동체 구성원의 만장일치 합의에 따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도 혼란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혼란한 과정에서 단순히 자신이 지지하는 어떤 정치적 성향만을 믿고 비판 없이 지지하기보다는, 혹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참여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은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고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며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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