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답노트 네 번째, 복수/복구매매

by 글로소득
오답 노트 4번: "복수매매와 복구매매"

1. 나의 사례

2025년 4월 9일, 마지막 남은 원금까지 모두 청산당한 날이다.
그날 오전, 내가 마지막으로 포지션을 진입했던 코인은 이더리움(ETH)이었다.

나는 어젯밤, 6천 달러의 손실을 보고 넋이 나가있었다.
계좌에 남아있는 돈은 1900달러가 전부였고
내 머릿속은 ‘복구해야 된다’는 한 마디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한 번에 6천 불을 되찾을 수 있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위험천만한 방법만 떠올랐다.

한 번의 포지션에 모든 시드를 집어넣고,
100배 정도의 초고배율의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것.

당시 시장은 하락세였고, 나는 이더리움이 한 차례 더 떨어질 거라고 판단했다.
나는 100배 레버리지로 이더리움 숏 포지션에 진입했다. 문자 그대로 마지막 승부수였다.

이 돈마저 잃으면 안 된다는 이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근차근 복구해 나가기에는 잃은 돈이 너무 커 보였다.

나의 진입가는 1,459 테더였다. 청산가는 불과 1,470테더.
이더리움의 가격이 1%만 상승해도 모든 돈이 사라진다.

수수료가 너무 비싸서 손절은 고려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저 가격이 내려가기만 기도하며 차트를 바라보았다.

이더리움은 음봉을 만들며 하락하는가 싶더니,
거짓말처럼 윗꼬리를 그리면서 상승을 시작했다.

어, 어.
당황스러웠다.

손절? 수수료가 너무 비싼데? 다시 하락하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손절? 수수료만 갈릴 것 같은데?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더리움의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더니 보란 듯이 나의 청산가를 지나가 버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떠있던 포지션의 정보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나는 마지막 남은 1900불, 한화로 300만 원마저 잃고 말았다.

허망했다. 한 달치 월급을 내 손으로 찢어발긴 셈이다.
하다못해 낭비를 했더라도 이렇게 허탈하진 않았을 텐데.

차라리 그 상승이 계속해서 이어졌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완전히 틀린 판단을 했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은 셈이니까.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더리움 가격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달아 빨간색 음봉이 생성되고 있었다.

이더리움 가격이 1380불이 되었을 때, 나는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진입했더라면, 6,000달러를 복구하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서 돈을 구해오고 싶었다.
이렇게 폭락이 나왔다면 시장은 분명히 반등할 게 분명했다.

여기서 100배 레버리지로 롱 포지션을 잡는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돈을 구해올 방법이 없었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이에도 차트는 움직였다.
올라가는 차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청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 무엇이 틀렸을까?

[오답 ❌]: 복수 매매 혹은 복수 매매


내가 청산되었던 마지막 매매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터져 나왔다.


고배율의 레버리지 사용. 풀 시드 진입.

시드에 여유가 있었다면 분명 물도 탔을 것이다.


이 모든 문제를 초래한 원흉은 따로 있었다.

바로 복구 매매 혹은 복수 매매다.


나는 24년 12월에 3일 동안 2만 불이라는 큰 손실을 보면서

이 두 가지 저주에 걸리게 되었고 아직도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처음으로 만 불 단위의 손실을 보게 되자,

나는 하루라도 빨리 8만 불을 되찾고 싶었다.


막상 달성했을 때는 별로 실감하지 못했지만

8만 불은 나에게 있어 단순히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 숫자였다.


1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성.

아파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과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갈망.


다시 한번 8만 불을 회복한다면 코인 선물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빠르게 도달하려고 할수록 ‘복구’와 ‘복수’의 늪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벌 때는 조금 벌고, 잃을 때 크게 잃으니까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언제 다시 그 돈을 벌지? 이렇게 벌어서 언제 1억을 만들지?


25년 1월, 남아있는 돈은 5만 불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3만 3천 불이 되었다.

25년 2월, 3만 3천 불로 다시 한번 4만 1천 불까지 갔지만 기어코 1만 6천 불까지 깎아먹고 말았다.


잃은 돈은 잊자고 그렇게 다짐했지만, 다짐은 잠깐이었다.

며칠은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지만 잃은 돈이 자꾸만 떠올랐다.


25년 3월, 100불 챌린지를 하며 1만 6천 불을 1만 7천 불까지 만들었지만

또 반토막을 내면서 7천 불 밖에 남지 않았다.

25년 4월, 7천 불은 9천 불이 되었지만 그 끝은 청산이었다.


개인의 판단이 계좌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장에서

복수와 복구를 향한 열망만큼 위험한 게 또 있을까.


역설적으로 사람이 절박해질수록 잘못된 선택을 내리게 된다.

한 번의 매매로 모든 뒤집겠다는 발상도 여기서 비롯된다.


[오답인 이유: 집착과 그로 인한 악순환의 시작]

코인 선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2천 불, 그리고 연이어 6천 불을 잃고 나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더 이상 잃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손절 없이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실현 손실이 발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거기다 운까지 따라주었고, 그 덕분에 어찌어찌 8만 불을 넘어설 수 있었다.

운이 다하면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없었을까? 아니, 있었다.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깨닫지 못했다.

한번 한 번의 매매로 지난 손실을 해결하려는 그 마음이 문제였다.


잃은 돈을 ‘바로’ 되찾아야 한다. 혹은 ‘바로’ 되찾을 수 있다.

그 욕심, ‘복수’와 ‘복구’에 대한 집착.


마음 한편에 억울함도 있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결과는 형편없다.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왜 이렇게 쉬운지.


나는 몇 번 혹은 몇 십 번의 매매로 힘겹게 만들어낸 이익을

고작 한두 번의 매매로 모두 잃는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손실을 메꾸기 위해 발악할수록 트레이딩은 점점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손실이 쌓이니까 레버리지도 높아지고 시드의 비중도 커지게 되었다.

시드 분리는 의미가 없어지고, 물타기도 급해졌다.


한두 번 어떻게 살아 나와도 손해를 메꿀 정도는 아니다.

악순환의 굴레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 악순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다.


3. 예상되는 추가 문제

[도박사의 오류]


트레이딩은 확률 싸움이다.


손실을 볼 수도 있지만, 원칙이 틀리지 않았고 잘못된 매매를 하고 있지 않다면

대수의 법칙에 따라 시행 횟수가 많아질수록 자산은 우상향 하게 된다.

트레이딩이 도박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한 번의 매매로 모든 걸 결정되지 않는다.

충분한 시행 횟수를 통해 천천히 결과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에 가깝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불확실성 속에서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확률은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고, 어느 정도의 시행 횟수가 충분한지 누구도 모른다.


우리는 그 순간 ‘도박사의 오류’와 만나게 된다.

가격은 결코 우리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틀렸다고. 다음번에 맞을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한 번의 매매로 모든 걸 복구하려 하면, 그 판단이 틀렸을 때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느리고 힘들더라도 조금씩 쌓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인 이유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은 코인 선물에서도 유효하다.


한 번의 매매가 어떻게 되든 넘어가야 한다.

결과에 지나치게 매달릴수록 더 큰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큰 손실은 곧 재도전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회의 박탈]


조금이라도 시드가 남아 있다면, 어떻게든 확률을 높여나가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복수와 복구를 반복하다 보면 2가지 의미에서 회복불능 상태에 빠진다.


첫 번째는 심리적인 문제다.

손실 자체가 무서워져서 매매를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여전히 매매, 그리고 손실이 무섭다.

정작 매매를 할 때는 멀쩡해 보이지만, 궁지에 몰려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마이너스가 찍히게 되면 손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도 손절을 하게 되고

그렇게 손실이 쌓이면, 다시 복수와 복구로 매매가 이어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다.


두 번째는 물리적인 문제다.

설령 멘탈에 문제가 없어도, 시드가 없는 이상 다시 일어설 수가 없다.


돈이 없는데 무슨 수로 매매를 한단 말인가.

문자 그대로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한 번의 매매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청산을 맞이하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이를 두고 '퇴학을 당했다'라고 하는데,

시장에서 퇴출이 의미하는 바는 잃을 돈을 찾을 기회가 앞으로 영영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더 위험한 길로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극단적 레버리지: 대출과 빚투]

나는 어째서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가면서까지 투자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잃어보고 나서야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사람이 미치게 된다.

심지어 내가 어느 정도 차트를 볼 수 있다면 그 답답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누구라도 붙잡고 돈을 빌려달라든가,

대출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찾아온다.


나 역시 청산을 당한 그 순간,

지금 당장 해외 거래소 계좌로 테더를 보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없어서 절망스러웠다.


그 당시 내 모습이 카지노에서 모든 돈을 잃고

판돈을 끌어오려는 도박중독자의 모습처럼 보여서 겁이 났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인지,

책임감의 무게가 무거웠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냥 ‘대출’이라는 걸 지금까지 받아본 적도 없었고

그 절차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대출은 나에게 몹시 낯선 일이었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르게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겁이 많았기에 대출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복수와 복구에 잡아먹히면 누구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정리]


‘복수’와 ‘복구’는 기술적 분석이나 방식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음가짐의 문제에 가깝다.


인간인 이상 당연히 손실은 아프고 괴롭고 힘들다.

그러나 트레이딩에서 손실은 필연적 결과고

이 결과를 부정하려고 들면 시장은 더 큰 손실로 우리를 괴롭힌다.


시장과 싸우지 말라는 격언을 떠올려본다.

주어진 결과를 두고 투정을 부리지 말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손실이 났던 순간마다 아이가 떼를 쓰듯이 매매를 했다.

내가 잃은 돈을 돌려 달라고. 당장 내놓으라고.


그럴수록 시장은 더 엄혹한 결과를 돌려주었다.

가끔은 떼쓰기가 먹힐 때도 있었지만, 그 끝은 청산이었다.


한 번 한 번의 매매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

손실을 겪었을 때 영혼을 상실한 것 같은 고통을 느끼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 순간부터

다시 도전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거나, 혹은 더 위험한 선택으로 자신을 내몰게 된다.


4.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 손실을 받아들이기]


정답은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온라인 게임을 좋아해서 꽤 오랜 시간 열심히 했는데,

게임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빨라서였다.


내가 잘했다면 승리하고 못했다면 패배한다.

이겼다면 기분 좋고, 지더라도 또 다음 판을 이길 동력이 된다.


한 번은 16연패를 하고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때의 ‘패배’는 더 이상 동력이 되어주지 않았다.


다음에 게임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잠시라도 게임을 끄는 수밖에 없었다.


트레이딩은 그런 게임보다도 더 ‘확실하게 결과’를 보여준다.


내 판단이 옳았다면 돈을 벌고, 틀렸다면 잃는다.

심지어 판단이 옳았어도 잃는 경우가 발생한다.


손실이야말로 트레이딩에서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레이딩의 세계에서 영원히 이길 수만은 없다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트레이딩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한 번 졌을 때, 지금까지 모든 승리가 무의미해질 수 있기에

무엇보다도 ‘잘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손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감정적으로 트레이딩을 할수록

잘 지는 것과는 영원히 멀어진다. 그리고 잘 지지 못하면 영원히 지게 된다.


따라서 손실을 받아들이되,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다.

큰 손실을 봤다면, 혹은 큰 손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정해둔 만큼의 손실을 봤다면

그날의 매매를 꼭 멈추시기를 바란다.


감정적으로 스스로를 추스르지 않고 매매를 이어나가다 보면

결국엔 더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날 하루 운 좋게 복구에 성공했더라도

다른 날 손실을 보았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은 ‘언젠가 큰코다치리라’는 식으로 악담을 퍼부으려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매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이다.


인간의 정신은 우리의 예상보다 나약하고,

거듭된 패배가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조차도 여전히 복수와 복구에 대한 것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같은 딜레마에 빠지지 않으시길 바란다.

keyword
이전 10화오답노트 세 번째, 물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