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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노트 여섯 번째, 매매 횟수

by 글로소득
오답 노트 6번: “매매 횟수”

1. 나의 사례

내가 청산을 당하기 전 약 10일간의 일이다.

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연습이란 명목 아래에
500회가 넘게 코인 선물 트레이딩을 했다.

3월 29일부터 4월 9일, 11일 간 일평균 40회
깨어있는 시간 내내 수시로 포지션을 열고 닫았다.

근거가 있는 자리만 들어간다고 했을 때
결코 나올 수 없고 나와서도 안 되는 매매 횟수다.

포지션을 유지하는 시간도 길어봐야 몇 분 남짓.
어쩔 때는 몇 초를 넘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손절한 후 같은 자리에서 다시 진입하거나,
차트를 잠깐 살펴보다가 종목을 바꿔서 다시 진입했다.

소액 챌린지를 하고 있었고, 연습을 해야 하니까.
손절에 익숙해지고 차트를 눈에 익힌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

잃었으면 복구를 해야 하니까 매매를 계속했고
벌었으면 더 벌고 싶으니까 쉬지 않았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는데,
나는 폭우 한복판에 뛰어들어 내달리는 꼴이었다.

이쯤 되면 의식적인 사고는 멈춘 지 오래다.
홀리기라도 한 듯 손가락이 먼저 나가고 있었다.

매매 횟수가 쌓일수록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날에는 그래도 20회 정도였는데 60회를 넘어선 날도 있었다.

어쩌다 손절이 반복돼서 손실이 커지기라도 하면
레버리지를 올리고 진입 물량이 늘어났다.

목표였던 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청산을 맞이하게 되었다.

매매 횟수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을 수 있다.

'문제'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나를 피폐하게 만든 건 수도 없이 쌓였던 매매 횟수였다.

2. 무엇이 틀렸을까?

[오답 ❌]: 한도를 초과한 매매 횟수


과유불급은 매매에도 적용된다.

매매 횟수는 많을 수 없고, 많아서도 안 된다.


매매를 많이 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

많이 매매해서 돈 벌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하실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진입을 할 만큼 근거가 충분하고

좋은 자리가 그렇게 많이 나올 수 있을까?


트레이딩은 내 예상이 맞을 확률이 높은 자리에서

리스크를 감수했을 때보다 큰 수익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렇듯 여러 조건이 겹치는 자리에서만 매매를 하려고 하면

매매 횟수는 자연스럽게 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초보자가 마주하게 되는 역설이 있다.

연습을 해야 그런 자리를 구분할 수 있지 않냐.


나도 그랬다. 그래서 무작정 매매를 했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어쩌다 적중을 해도 시원찮은 느낌을 받았다.

틀리면 틀린 대로 기분이 나빴다. 돈을 잃었으니까.


아무리 매매를 해도 깨달음이 오는 순간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연습이었을까?


[오답인 이유]: 목적을 상실한 연습


매매 횟수가 정도를 초과한 시점에서

연습은 본래 목적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매매라는 행위 자체에 빠져 있었다.


내 판단이 틀리고 맞았다. 돈을 벌고 잃는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바로 도출되고, 감정적 반응이 이어진다.


나는 이 과정에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이클이 반복될수록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은 사라졌다.


트레이딩이 단순한 홀짝 놀음과 차별점이 있다면

나의 판단에 근거를 더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거를 찾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매매 실력이라는 게 서서히 생겨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소액으로 매매를 하는 이유도 이 '실력'이 늘어나길 바라서다.


그럼 실질적으로 매매가 더 나아졌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번에 버는 금액이 커진다거나, 돈을 버는 횟수가 많아진다?


그 반대급부로 한 번에 잃는 돈이 적어지거나,

돈을 잃는 횟수가 적어지는 것도 분명 '실력'이 쌓이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근거와 기준에 부합하는 매매를 할 수 있고

그런 매매를 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도 '매매 실력이 좋아졌다'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매매 실력이 나아진다’는 건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러니 마음이 더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어야 증명할 수 있으니까.


역설적이게도 돈을 벌려고 할수록 더 돈을 잃는 게 트레이딩인 것 같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었지, 어떻게 벌어야 할지는 고민하지 못했다.


트레이딩을 잘하는 사람들일수록 트레이딩 이면의 진리,

'돈을 어떻게 잃을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트레이딩에 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의 연습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매매를 했든 간에 그저 부질없는 반복에 불과했던 것이다.


매매를 많이 한다고 곧장 실력이 느는 게 아니었다.

그건 단순히 노력하지 않는 것과도 다른 종류의 게으름이었다.


오히려 잘못된 매매가 반복될수록 다른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


3. 예상되는 추가 문제

[잘못된 학습]


나는 선물을 시작했던 초반에도 매매 횟수가 많았다.

손절은 긴데, 익절이 짧았기 때문이다.


언제 PNL이 마이너스가 될지 모르니

조금만 이익이 생기면 허둥지둥 포지션을 닫았다.


한번 잡은 포지션을 길게 끌고 가지 못하니까

같은 자리에서 여러 번 들어가는 일도 허다했다.


가령 익절을 하고 나서도 가격이 예상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아쉬움에 또다시 진입하고 또 얼마 가지 못해 종료했다.


이렇듯 일관된 규칙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매매를 반복하는 건 잘못된 학습을 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나는 '짧은 익절'과 '긴 손절'을 학습해 버렸고,

이 문제는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어쩌다 수익이 났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매매 횟수로 인해 충분하게 복기해 볼 시간이 부족해진다.


무작정 매매를 한다고 실력이 느는 게 아니다.



단순한 반복동작도 움직이는 과정을 의식하고 10번 움직이는 것과

아무렇게나 100번이고 1000번을 흔드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난다.


감각이 좋은 사람이라면 무작정 해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많은 경우 잘못된 학습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 멋대로 세워둔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정신력의 고갈]


정신력도 한정적인 자원이다.

매매가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력이 떨어진다.


최고의 컨디션에서 매매를 하는 게

최상의 결과를 만드는 데에도 유리할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돈이 걸려있는데,

신중해도 모자랄 마당에 잦은 매매로 정신력을 갉아먹는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더욱이 나는 큰 손실을 보고도 매매를 쉬지 않았다.

차트를 보고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는다고 믿었다.


어쩌다 쉬는 건 아주 제한적인 경우였다.

거액의 손실을 보고 난 다음 며칠 정도였다.


오히려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복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꽤 많은 돈을 잃었고, 급했다.

그래서 자리가 아니더라도 일단 포지션을 진입하고 봤다.


이미 정신적으로 몰려있는 상태에서

매매가 거듭될수록 온전한 판단을 할 정신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과도한 매매는 우리에게 잘못된 교훈만 남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정신력까지 앗아감으로써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수수료]


잦은 매매의 문제는 PNL에 찍힌 손실 외에도

수수료까지 더해져 손실이 더 크게 쌓인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거래소는 수수료 장사를 하는 곳이다.

매매 횟수가 많아지면 거래소만 이득을 보게 된다.


이들이 레버리지를 제공하는 이유도

수수료가 커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매매 횟수가 잦아지면 이득을 보는 건 거래소 말고는 없다.

혹은 레퍼럴로 등록한 누군가이거나.


특히 거래소는 단순히 호스트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로서 직접 시장 움직임을 조성할 때도 있다.


매매 횟수가 많아진다는 건 예상외의 상황,

이 경우 거래소의 비정상적인 실수에 놓일 확률도 커진다는 이야기다.


수수료뿐만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나쁜 싸움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매매 횟수가 잦아진다는 건 구태여 불리한 전장에 직접 발을 들이미는 꼴이 된다.


[정리]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높은 확률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트레이딩을 하고 있다.


지나친 매매 횟수는 좋지 않은 습관이나 잘못된 근거를 학습하게 만들거나,

우리의 정신력을 고갈시켜 더 좋지 않은 결과로 이끈다.


매매가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수수료 때문에 손실이 더 커지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매매를 할 때도, 어째서 우리가 매매를 했는지 항상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었는가.

적어도 이 피 같은 돈을 아무렇게나 써버려서는 안 된다.


무작정 매매를 많이 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4.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 기다리기]


결국 기다림이 전부다.

시장에서는 기다리는 사람이 이긴다는 게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포모(FOMO)가 온다고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면 존버하거나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연습은 꼭 실전 매매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

차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해보기만 해도 충분히 좋은 연습이 아닌가?


실제로 해야 한다면 소액으로, 정말 확실한 자리에서만 해봐야 한다.

모든 자리에 들어갔다가는 내 시드만 갈려나갈 뿐이다.


즉 근거가 높은 자리를 알아차리는 눈도 중요하지만

자리가 오기까지 기다릴 줄 아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차트를 열심히 보라는 말도, 무턱대고 차트를 보고 있으란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봐둔 가격까지 차트가 움직일지, 왔다면 어떻게 캔들이 만들어지는지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너무 뻔하고 고리타분한 말들이지만, 그 안에 진리가 있었다.

매매 횟수를 제한할 것. 근거가 있는 자리에서만 들어갈 것.


이 모든 말들이 '기다림'으로 요약된다.

그렇다.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서 봐둔 자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봐둔 자리가 와서도 예상한 반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포지션에 진입했다면 예상한 가격까지 움직이는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나는 늘 급했다.

그리고 시장은 마음이 급한 사람들의 돈을 가져간다.


나는 내 원금까지 시장에게 빼앗겼고,

부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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