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노트 5번: “손절”
코인 선물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손절이었다.
내 손으로 손실을 확정 지어야 한다는 게 싫었다.
싫어도 해야만 한다는 것도 싫었다.
손절을 익히기 전에는 무작정 기다렸다.
청산만 당하지 않는다면 버틸 수 있었다.
왜 스탑 로스를 정해두지 않았냐고?
아니다. 스탑 로스를 정해두고 계속 움직인 게 문제였다.
가격이 내 스탑로스를 치러 오면 나는 스탑로스를 움직였다.
이 변동은 일시적인 움직임에 불과하다며 스스로를 속이면서.
그러는 사이 더 이상 스탑로스가 의미 없어지는 구간에 들어서면
스탑로스를 설정해 두는 것도 무의미해진다.
그때부터는 기도밖에 없다.
12월 3일, 새벽에 계엄이 터졌던 날도 그랬다.
나는 이미 이더리움 롱 포지션에 물려서 차트를 보고 있었다.
혹시 모른다며 스탑로스를 계속해서 옮기다가
포지션을 홀딩한 시간이 이틀을 넘어갔고 불의의 사태를 맞이한 것이었다.
국내 거래소의 현물 매도세에 가격이 요동치면서
잠깐이지만 PNL에는 만 불이 넘는 손해가 찍혔다.
손절을 하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이미 거기까지 버틴 시점에서
결과가 어떻든 끝장을 봐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가격은 금세 회복되어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배운 게 없었는지 바로 다음 날, 또 나는 리플 롱 포지션에 물렸다.
이번에도 3일 동안 하염없이 기다렸다.
손실이 난 포지션을 홀딩하기 위해 온갖 명분을 갖다 붙였다.
현재 차트가 삼각수렴처럼 보이는데, 이 수렴의 끝이 상승이 아닐까.
거래량이 줄어들었으니 매도세가 줄어든 게 아닐까.
엉망진창인 분석을 근거로 삼아 3일 밤낮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간신히 손실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심지어 가격은 그 이후로 더 상승했다.
지금까지 물려있던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짧은 익절을 아쉬워했다.
새벽 3시 30분에 FOMC를 처음으로 직관했던 날도 떠오른다.
유엑스링크라는 코인에 숏 포지션을 들어갔다가 하루 종일 물려있었다.
유엑스링크의 가격은 잠깐이지만 1달러를 넘어섰고, 1.3달러 부근이 내 청산가였다.
나는 청산당하기 직전까지도 내 손으로 손절을 쳐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새벽 3시 30분에 FOMC 발표와 함께
평단 밑으로 빠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가까스로 익절을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유엑스 링크가
한참을 더 상승하는 것을 보고 아찔함을 느꼈다.
유엑스링크에 물렸다가 간신히 탈출한 날,
매매일지에는 쉽사리 포기하지 말자느니, 손절 라인을 정해두자느니
뭐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적어 두었던 게 기억난다.
손절을 배운 건 8만 불을 달성한 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였다.
더 큰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서 미리 잘라내자고 다짐했다.
소액 챌린지를 하면서 손절이 손에 붙었지만,
손절을 익히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손절만 연속으로 5번이 나가는 데 포지션을 계속 진입하거나,
손절이 2번 연속 나가면 무작정 반대 포지션을 잡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시드가 녹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시드가 적어졌으니 만회하려면 남은 방법이 없었다.
레버리지 배율을 높이거나
진입하는 시드의 비중을 높여서 만회하는 것뿐이었다.
손절을 해도 문제. 하지 않아도 문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나의 매매는 손절을 익히기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 손실을 확정 짓느냐의 차이만 있었지 결과는 똑같았다.
손절이 중요하다고 그렇게들 말하는데,
나의 경우는 왜 다른 게 없었을까?
한 가지 이유만 꼽을 순 없겠지만,
손실이 나는 걸 덮어놓고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계좌에 마이너스가 찍혔더라도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되었는지는 천차만별이다.
누군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포지션에 진입한 후 손해를 봤을 때,
다른 이는 계획에 따라 진입했고 손해를 결정지었을 것이다.
내 판단이 틀렸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후의 계획을 수정하고 반영할 수 있는가.
손절도 능동과 수동,
2가지 형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능동적인 손절은 계획을 수정할 수 있고, 다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단지 손실이 났기 때문에 포지션을 종료했다면, 수동적인 손절이다.
나는 항상 수동적으로 손절을 했다.
그래서 손실을 받아들이는 게 더 괴로웠고, 손절이 거듭될수록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손실에 대한 공포가 손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설령 손절을 익혔다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덮어놓고 손절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손절을 하기에 앞서서
손실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설정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했다.
트레이딩에서 손실을 완벽하게 떼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손실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면, 트레이딩을 할 수 없다
매매에 임할 때, 얼마나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돈을 어디까지 잃을 것인가를 설정하는 일이다.
돈을 버는 게 부차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횟수가 거듭되면 결과적으로 돈이 벌리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결과에만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잃을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손절을 익혔다고 자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손절은 결코 ‘마지노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노선은 문자 그대로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게 되면 의미가 없다.
손절을 가능한 보수적으로 잡아야 하는 이유도
최후의 방어선까지 침범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지만 ‘마지노선에 대한 마지노선’이 필요하다.
즉, 한 번의 매매와 그날의 매매로 어디까지 잃을 것인지 먼저 전제해야 한다
나는 잃기만 한다면 그날의 매매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어떻게든 그날 하루에 모든 손실을 복구하고 싶었다.
손익비 계산과 리스크 관리가 없는 손절은 시드를 갈아먹는 습관에 불과하다.
나는 손익비 계산과 리스크 관리 없이 손절을 익혔고 모든 시드를 날려 먹었다.
적어도 내가 100불을 잃을 각오를 했다면, 최소한 110불은 얻어야 한다
1:1 비율의 거래를 누가 원한단 말인가? 잃으면 손해일뿐인데.
나는 약간의 이득을 보겠다고 손익비가 형편없는 매매를 하거나
혹은 리스크 관리가 부재한 상태로 매매에 임했기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
손절을 못할 때의 추가적인 문제도 살펴보자.
우리는 포지션에 묶여있는 금액과 시간만큼 기회비용을 상실하게 된다.
포지션에 찍혀있는 PNL이 전부가 아니다.
그 손실을 메꿀 수 있었던 다른 기회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손실이 더 커지게 된다면, 손실은 그 이상으로 불어난다.
눈에 보이는 숫자 이상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감정적인 고통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선물 거래의 특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물과 다르게 무작정 버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마다 계산되는 펀딩비가 있으며,
급작스런 가격 움직임이 나왔을 때 청산이 날 위험도 존재한다.
손절을 익혔다고 전부가 아니다.
손절도 반드시 잘 사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손절을 안전벨트에 비유하는데,
손절은 부가적인 기능이라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안전벨트를 잘 맸다고 해서 운전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큰 사고가 났을 때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뿐이다.
트레이딩 초보인 나는 손절을 익힌 것만으로
실력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생각 자체가 잘못이었다.
오히려 손절만 믿고 무작정 포지션에 진입하게 되면
잘못된 진입 횟수만큼 손실이 늘어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2가지로 나뉜다.
진입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혹은 손절 로스 자체가 너무 타이트했거나.
나는 2가지 문제를 모두 겪었는데,
진입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매매 횟수가 많아질수록
손실은 물론 수수료로 인해 시드가 녹게 된다.
손절 로스가 타이트해서 다시 진입을 했다면 이 때는 손익비가 문제가 된다.
만약 손익비가 이전의 로스만큼 좋지 않다면 결국 그 매매는 좋지 않은 매매가 된다.
좋지 않은 매매의 반복은 시드를 갈아먹는 결과로 이어진다.
잦은 손절은 오히려 시드를 갈아먹는 습관이 될 수 있다.
시드를 갉아먹을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여러 번의 좋은 매매를 통해 회복하기보다는,
단 한 번의 매매로 결과를 바꾸고 싶어진다.
그러면 복수와 복구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미 이전 챕터에서 복수와 복구의 문제는 살펴보았다.
손절은 PNL의 미실현 손실뿐만이 아니라 기회비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고 손절이 너무 잦아지면 시드를 갉아먹게 된다.
손절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리스크 관리와 손익비가 전제되지 않은 손절은 손해만 늘릴 뿐이다.
손절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다.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얼마만큼의 손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남들이 1%라고 하든 3%라고 하든 중요하지 않다.
전체 시드 대비 자신이 감당 가능한 손해를 결정해야 한다.
다만 1%나 3% 선을 제시하는 이유는
손실이 누적되더라도 일정 범위를 초과하지 않기에
다음번 매매를 통해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의 포지션에 들어가는 비중에 따라서
손절 범위를 정하고, 스탑로스(SL)를 반드시 설정해야 한다.
반쯤 익절을 하고 본절 로스로 옮겨두거나,
스탑 로스를 옮겨서 익절을 조정할 수는 있지만
설정해 둔 스탑로스를 조정해서 손실을 늘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관점이 벗어난 시점에서 손실이 더 발생하지 않게끔
애초에 스탑로스에 가기 전에 손절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스탑로스가 너무 타이트하다면 손실이 반복되기에 이 부분도 항상 고려하시면 좋겠다.
결국 매매는 올바른 원칙을 세워두고,
그 원칙을 얼마나 꾸준히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싸움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 싸움에서 매번 본능과 감정에 무너졌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원칙을 꼭 지키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