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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노트 일곱 번째, 뇌동매매

by 글로소득
오답 노트 7번: 뇌동매매

1. 나의 사례

25년 2월 경, ‘스팀달러’라는 코인이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일반적으로 상장폐지는 악재겠지만, 당시 스팀달러는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락이 나오더라도 잠시 뿐이고 오히려 상장 폐지 직전 가격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세력의 마지막 설거지라느니, 인생 역전의 찬스를 놓쳤다느니 별에 별 말들이 오고 갔다.

때마침 코인에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가 있던 채팅방에서도
스팀달러 매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했다.

나 역시 스팀달러의 경이로운 상승에 절로 관심이 갔다.
상승세 전부가 아니더라도, 약간이나마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 내지 말고 잠깐만 먹고 나오자는 이상한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가뜩이나 당시 나는 24년 12월 이후로 내리막길만 걷던 상황이어서 스팀달러의 유혹은 치명적이었다.

상장폐지를 앞둔 코인이라 위험천만하다는 걸 잘 알았지만,
8만 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익을 내야 한다는 마음에 몸이 앞서고 말았다.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껏 시드를 해외와 국내 거래소 양쪽으로 분리해 놓고
‘남들도 다 한다.’ 그리고 ‘잠깐만 먹고 나오자’는 논리로 위험을 자처한 셈이었다.

처음 두세 번 정도는 운이 따라줬다.
미친 듯이 상승할 때 들어가서 잠깐 먹고 나왔는데, 수익이 상당했다.

월급에 가까운 돈이 하루아침에 들어왔다.
그전까지 물타기만 하고 몇 날 며칠이 걸리던 현물에서, 불과 몇 분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이 기세로 현물에서도 벌고, 선물에서도 벌 수 있다면!
다시 8만 불을 회복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 근거 없는 기대감이 문제였다.
나는 아무 근거 없이 그저 상승률에만 기댄 채 진입의 근거를 삼았다.

다음번에 또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든 돈을 벌었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나는 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멈추지 못했고, 기어코 지옥불에 또다시 발을 들였다.

애초에 기준이 없었던 진입이었기에, 언제 어떻게 손해가 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나는 허무맹랑한 믿음으로 스팀달러를 매수했고, 손실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유가 없는 상승이었기에, 스팀달러는 언제 하락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가 매수한 후부터 스팀달러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예상과 다른 시나리오였고, 상장폐지만 아니었더라도 들고 있었봤겠지만
스팀달러는 상폐를 앞둔 코인이었다. 나는 손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스팀달러로 얻은 수익을 다 토해낸 것도 모자라
천만 원에 가까운 손해를 봤다. 허탈했고, 무서웠다.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현물 거래소의 시드를 모두 선물 거래소로 옮겼다.

멍청한 실수였다고,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이후로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두 달 후 나는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청산을 당했다.
이 모든 게 결국 ‘뇌동매매’라는 하나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2. 무엇이 틀렸을까?

[오답 ❌]: 뇌동매매


스팀달러의 사례는 척 봐도 잘못된 매매지만,

앞선 사례들, ‘고배율의 레버리지’나 ‘물타기’, ‘풀시드’ 같이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유가 너무 간단한데, 그 이유를 납득이 가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바로 ‘뇌동매매’라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


어쩌면 고배율의 레버리지, 물타기, 풀시드 진입조차 원인이 아닌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코인 선물 트레이딩에서 나타난 모든 문제가 ‘뇌동매매’가 원인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지만, 그 한 마디에 담긴 게 너무 많았다.

뇌동매매의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매매라는 것.


이번에 글을 쓰면서 뇌동매매의 뜻을 제대로 찾아보게 되었다.

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 사전에서 뇌동매매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투자자의 독자적이고 확실한 시세 예측에 의한 매매 거래가 아닌 남을 따라 하는 매매

즉, 투자자 자신이 확실한 예측을 갖지 못하고 시장 전체의 인기나 다른 투자자의 움직임에 편승하여

매매에 나서는 것으로, 노이즈 트레이더의 투자행태를 나타내는 용어.”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을 새삼스럽게 찾아보는 일은, 예상외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내가 돈을 잃었던 대부분의 순간들이 뇌동매매가 말하는 ‘뇌동’ 그 자체였다는 것.


나의 기준이 없는 매매는 뇌동매매와 다름없다. 아니, 그게 바로 뇌동매매다.

외부의 자극에 반사적으로 행동했고, 행동으로 이어지고 나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몇 가지 신호들에 투우사의 깃발에 반응하는 소처럼 반응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 상승률 등 단편적인 정보를 매매 신호로 착각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나.


매매에 임할 때는 지금 내가 외부 자극에 의해 결정을 내렸는지,

내 기준에 의거했는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그 기준을 구분하지 못했거나, 일부러 구분하지 않았다.

기준과 원칙을 세워두었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했다.




[오답이 발생하는 이유]: 체화되지 않은 기준과 원칙


나는 오답노트를 쓰기 전에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반복했기에 더 심각했다고 말할 수 있다.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기준과 원칙이 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 같은 초보 트레이더들은 설령 기준과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충분히 체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뇌동매매가 곧잘 발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준과 원칙을 수시로 의식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뇌동매매로 이어진다.


고수들은 이미 수 백 수천 번의 매매 끝에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고,

의식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적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 고수들의 겉모습만 보고 무작정 매매에 나섰다가는 좋지 않은 결과를 만나게 된다.

매매 연습을 하라는 의미도 그 수준에 이르기까지 손실은 최소화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설령 기준과 원칙을 훌륭하게 세워두었다 한들,

반복된 연습 없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거나 무의식 중에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아직 기준과 원칙을 체화하지 못한 이들은

뇌동매매로 인한 추가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외부신호가 적절한 신호가 아닌 노이즈가 된다는 것.

그리고 노이즈로 인해 원칙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3. 예상되는 추가 문제


[외부 신호에 의한 노이즈]


포지션 진입 기준을 외부에서 찾는 게 잘못은 아니다.

다만 외부의 정보나 소식만 가지고 포지션을 진입하는 건 피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제 정세가 혼란스러울 때, 거시 경제에 관심 가지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불확실한 트레이딩 세계에서 확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의 소식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활용해야 한다.

내가 세워둔 근거가 확실할 때 뉴스는 자신 있게 포지션에 진입할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SNS나 커뮤니티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환희에 차있으면 팔고, 공포에 사라는 말은 아무 때나 적용되지 않는다.


나의 근거가 분명해야, 외부의 근거들도 설득력을 얻는다.

내 근거 없이 외부의 근거만 가지고 매매에 임하면 손실을 볼 공산이 더 크다.


또한 무분별한 신호 사이에서 나 스스로 혼란을 느낀다면

차라리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훨씬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가령 거래소 앱에서 지원하는 급등 신호나, 상승률은

나의 경우 유효한 신호가 아닌 노이즈로 작용할 때가 더 많았다.


들어가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FOMO를 유발한다거나,

무작정 따라 들어가고 손절해서 손해를 보는 식이었다.




[원칙의 붕괴]


나는 코인 선물로 손실을 볼 때마다 수시로 원칙을 세웠다

고배율의 레버리지 금지, 풀시드 진입 금지, 물타기 금지.


오답노트에서도 다루었듯이, 아주 합리적이고 또 그럴싸한 규칙들이었다.

이 원칙을 세울 때만 해도 과거에서 무언가 배운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뿌듯한 건 잠시고,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뇌동매매는 언제나 원칙의 예외를 비집고 들어왔다.


방금 크게 잃었으니까, 손해를 복구해야 하니까.

반드시 지키자고 다짐했음에도 나는 번번이 실패했다.


손실까지 생기고 원칙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만 찾아들었다.

그러면 또다시 원칙 따윈 무시해 버리고 매매를 이어가게 된다.


이 자기 파괴의 악순환이 원칙의 붕괴 정도로 끝나면 좋겠지만

시드의 직접적인 감소나 청산으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트레이딩이란 확률 싸움의 세계에서

원칙이 무너지게 되면 어떤 기준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매매가 한 두 번 잘 된다고 할지라도,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리]


우리가 인간인 이상 뇌동매매는 언제든 저지를 수 있다.

내부의 기준을 아무리 잘 세워두더라도 다른 이들의 말에 넘어갈 때도 있으니까.


외부 신호를 매매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의 주파수에 맞춰 해석하고 다른 근거와 함께 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외부 신호가 유일한 근거가 되는 순간 ‘노이즈’로 전락하고,

뇌동매매로 이어지는 트리거가 될 뿐이다.


원칙대로 진입하지 말아야 할 순간에도

외부 신호로 인해 잘못된 매매가 이어지면 원칙에도 금이 가게 된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확률의 세계에서

나의 기준이란 유일한 신뢰마저 무너지면 우리는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잘못된 매매의 결과 중 하나였던 뇌동매매가, 모든 잘못된 매매의 원인이 되었을 때

그 결말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청산이라는 최악의 수순으로 이어지게 된다.


4.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 자신만의 기준과 철저한 복기, 시스템 만들기]


결국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가능하다면 명확한 수치와 함께 할수록 기준은 힘이 세진다.


수익률이 몇 프로를 넘었다면 그날 매매는 멈춘다.

손절이 몇 회 이상 연속으로 나가면 그만둔다.


기준의 예시를 말하자면 끝도 없다.

그렇게 세워둔 기준을 반드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느 순간에 잘못들이 반복되는지, 복기해야만 한다.

매매를 돌이켜보면서 언제 어떻게 이 실수를 했는지 기록하고 되새기는 것.


요점은 명확한 나만의 기준을 세운 후,

체화될 때까지 의식적으로 반복하자는 것이다.


나도 기준을 세우는 것까지만 성공했다.

정작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복기도 했다. 하지만 복기하는 시늉에 그친 것은 아니었나 스스로 되물어본다.

복기를 했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인간이니까 뇌동매매를 할 수 있다. 아니, 하게 되어 있다.

감정을 배제할 수 없다면 반복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인간은 실수할 수 있다. 그러니 시스템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실천하는 과정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여전히 우려는 있다.

이런다고 매매를 잘하게 될까? 성과로 이어질까?


내가 뚜렷한 결과를 내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드릴 말씀은 없다.

이 지난한 여정을 권유해도 되는 것일까 염려스럽다.


다만 이렇게 하면 나처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말만은 자신 있게 드릴 수 있다.

나는 부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이 잃지 않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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