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과 학생 인권 사이 어디쯤

by 몽글몽글

별은 내가 수업에 들어가면 교탁 앞에 서 있었다. 전자칠판과 노트북을 연결하는 케이블을 미리 손에 쥐고. 내가 수업을 위해 교탁 위에 노트북을 내려놓으면 곧장 케이블을 연결했다. 선생님의 수업을 도와주는 봉사였다.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다.


별은 밝고 유쾌하고 건강함과 웃음이 넘치는 아이였다. 주짓수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마동석처럼 팔뚝 근육을 키우고 싶다고 덤벨을 가져와서 쉬는 시간에 연습하는 아이였다. 주위에 아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도록 하는 아이였다.


케이블을 연결하여 수업 준비를 끝내고 자기 자리로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정작 본인은 수업에 열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거나 주위의 친구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로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는 아이였다. 전형적인 수업 방해자였다.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그 덕분에 아이를 야단치지는 않았다, 수업을 심각하게 방해할 정도의 소란스러움이 아니었으므로. 중2 남학생들의 수업 현장은 적당한 소음과 웅성거림으로 어수선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어쩌면 스스로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그런데 2학기에 들어와서 케이블을 연결해 주던 서비스가 사라졌다. 그리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정도와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는 행동이 심해졌다. 그날은 별의 산만함이 아주 심해졌다. 옆자리의 아이와 사적인 대화는 물론 과장된 움직임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소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별 경고입니다.”


학교는 학생 생활 규정으로 상벌점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수업 중 교사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하면 벌점을 부여하였다. 학년이 어릴수록 벌점의 효과는 있었다, 벌점을 학교 알리미 시스템으로 입력하면 부모님, 학생, 담임 선생님께 즉각 알림이 되기 때문에 나름대로 효과는 있었다. 평소에 나는 경고 2번 이상이면 벌점을 부여한다고 아이들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 별, 2번 경고입니다.”

나의 경고가 끝나자마자 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지하기 위해서 별을 응시했다. 나의 매서운 눈초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별이 노래를 더욱 크게 불렀다. 완곡을 했다.


여기서 교사가 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리면 다음 수업에 지장이 있다. 더구나 별 정도는 학급의 수업 분위기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개별 상담과 지도를 통해 아이의 행동을 수정해야만 했다.

“오늘 일과 끝나면 교무실로 오세요”

별이 일과를 마치고 내려왔다.

“너, 참 멋진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실망이 커”

나는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주위에 선생님들의 시선이 쏠렸다. 순간 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기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애원한 듯한 표정을 하며

“샘, 작게 이야기해 주면 안 돼요?”

순간적으로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나는 급하게 복화술을 사용하여 최대한 주위에 들리지 않게 말을 했다.

“오늘 왜 샘이 보자고 했을까?”

“네 ”

“오늘 샘 수업에 끼친 너의 행동을 한 번 생각해 봐. 어땠을 것 같아?”

“....... 샘, 죄송해요 안 그럴게요. ”

“그래, 한 번 믿어 보자. ”

상담은 끝났다.


이후 별의 행동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수업 시간에 본인의 수업 태도는 물론 주위를 부산하게, 소란스럽게 만들지 않았다. 수업은 안정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인격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훼손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본능적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함부로 자존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행동을 수정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아이의 마음을 믿어 주고 있다는 신뢰를 쌓아야 비로소 교사의 지도가 스밀 수 있다.


어른들도 그렇다. 생각해 준다고 함부로 충고하면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말 듣는 이에게는 상처만 되고 충고자에게 반감만 가지게 된다. 그러면 인간관계는 소통이 될 수 없다. 안전한 대화란 말하는 데 비난하지 않고 듣는 데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내가 너를 믿어 주고 신뢰한다는 믿음, 인정을 받고 있다는 충만함. 교권과 학생들의 인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그 완충지대에 대한 해답이다.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위클에 그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