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한 턱 내기

by 몽글몽글

우리 어머니는 1936년생이다. 올해로 89세이다.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되신 지 6년째다. 아버지와 사이가 버거우셨던지 어머니는 늘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원 없이 자유롭게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딸네 집에 왔다가도 아버지 밥 차려 드려야 한다며 종종걸음을 하셨던 걸 생각하면 아버지와의 삶은 꽤 의리로 버틴 삶이었나 보다.

그러나 막상 혼자되시고 나서는 코로나가 찾아와서 외출을 자유롭게 못하셨다.


어머니는 잘 웃고 밖에 나들이하는 걸 즐기시는 편이었다. 원색깔의 옷을 좋아하시고 블링블링, 샤방샤방한 무늬나 스팽글이 달린 옷을 좋아하셨다. 귀에, 목에, 손가락에 액세서리 주렁주렁 치장하는 것 또한 좋아하셨다. 노인이 귀금속 많이 끼면 범죄의 표적이 된다고 액세서리는 포인트를 주는 것으로만 해야 한다고 딸들이 조언했지만 어머니는 못 들은 체했다. 친구분들 만나서 놀고 쇼핑하는 것도 좋아하셨다. 엄마의 교통카드의 내역서는 매일 출근하는 자식들의 그것보다 더 바쁘고 분주했다.


엄마는 꽃을 좋아하신다. 고향집 옥상 위에 각종 꽃을 키우셨다. 양화, 작약, 모란 주로 색깔이 화려한 꽃을 키우셨다. 정원은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향기를 내뿜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와서는 처음에 무척 낯설어했다. 자식들이 다 서울에 있으니 자식들 곁으로 주거지를 옮기셨는데 낯선 환경에 꽤 적적해하셨다. 그러더니 바로 화분에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의 화분도 늘어가고 꽃향기는 다시 짙어 갔다.


언젠가는 친구분이 주셨다고 잉꼬새 한 쌍을 가지고 오셔서 애지중지 키우셨다. 지금은 물고기를 기르신다. 세 뼘 정도의 어항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벅찬 크기다. 어항 속을 매일 들여다보며 열대어랑 제법 대화를 하신다. 문제는 수조 청소다. 물이 조금만 탁해져도 어머니는 참지 못하고 그 무거운 어항을 옮겨가며 청소를 하신다.


먼저 어항 주변에 담요를 깔아 어항을 옮길 준비를 하신다. 다음에 의자를 딛고 올라가서 수조 안의 물을 밖으로 푸고 수초와 돌들을 꺼내어 따로 씻어 두고, 빈 어항을 낑낑거리며 바닥으로 내려 담요 위에 놓고 그 담요를 끌어 욕실까지 가지고 가서 청소를 한다. 노인에게는 위험한 일이라며 자식들이 깜짝 놀라면서 만류를 해도 어느새 청소를 해 버린다. 그 때문에 언니와 엄마는 언쟁이 잦다. 낙상 위험이 있으므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자식과 괜찮다는 어머니의 갈등은 끝이 없다.


그런 어머니가 난청이 시작되면서 행동이 느려졌다. 자식들이 모여서 담소하는 걸 보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어머니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자식들이 이야기하며 깔깔거려도 전혀 끼어들지 못하시고 어리둥절해하셨다. 보청기가 있지만 웅웅거린다며 극구 사양했다.


귀가 잘 안 들리니 대화가 어렵다. 그러니 자연히 활동량이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다리에 함도 빠져서 걷는 것조차 불편해하신다.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워 자식들이 돌아가며 주말마다 어머니랑 식사를 하며 용돈도 드린다.


며칠 천에 우리 부부 차례가 되어 어머니랑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밥은 내가 사마. 나 돈이 많다.”

하신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타서 생활하신다. 넉넉할 리가 없다. 가방에서 5만 원짜리 하나 1,000원 자리 지폐 9장을 건네서 기어코 내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 갑자기 심장이 서늘해졌다.


어머니는 현금을 상당히 좋아하셨다. ‘자식들이 뭐라도 해 드릴까요?’ 물어보면 언제나 현금을 원하셨다. 아마도 나들이 가면 이것 저것 사는 재미를 위함이었을 것 같았다. 그런 어머니가 외출이 줄어들면서 돈 쓸 일이 줄었나?

“나 돈 많다니까. 내가 한 턱 낼게.”

그 말씀이 왜 내게는 서늘함으로 다가왔을까? 이제는 힘이 없어 외출하기도 쉽지 않아 돈 쓸 일도 없다는, 그래서 없는 돈인데 많이 있다고 느껴지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돌아오는 내내 가슴 한쪽이 시리다.


아직까지 어머니는 불편한 몸이지만 집된장을 담으신다. 잘 숙성된 노란 된장을 자식들 집집마다 배분하신다. 나는 그 된장을 풀 때마다 언제까지 이 호사스러운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지 불안하다.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나는 이 엄마표 된장이 아까워서 먹지 못할 것만 같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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