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어버이날이라며 식사를 예약했다. 평소 육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을 감안해서인지 오마카세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괜히 돈 돈 쓸 것 없다며 극구 부인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식한테 대접받고 인정받는 그 느낌이 살짝 좋아서 못 이기는 척하고 내버려 두었다.
오마카세는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형성된 기본적인 가격 자체가 고가이기 때문에 평소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석촌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식당에 앉으니 그 또한 비에 젖은 호수의 풍경이 운치 있어 보였다.
식당 안쪽으로 예약 손님들이 차례로 불리어지고 착석하자 손님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셰프들이 각자의 손님을 맞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우리의 셰프는 키가 크고 마른 편이었으며 기다란 손가락으로 손님에게 서빙할 생선을 이미 손질해 놓고 마르지 않게 물수건으로 덮어 두고 있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례차례 음식이 서빙되었다. 오마카세란 일본어로 ‘맡긴다, 선택권을 넘긴다’라는 뜻이다. 셰프에게 전적으로 요리를 맡기는 식사 방식이다. 셰프가 그날의 신선한 재료와 계절을 고려하여 메뉴를 구성하고 손님의 취향과 식사 속도에 맞춰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원래는 일본 초밥에 적용되었으나 지금은 다른 음식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쯔유로 간을 하고 대파 튀김으로 장식한 부드러운 달걀찜을 시작으로 전복 내장 소스를 얹은 전복 구이. 간 마늘을 입은 잿방어, 참치 뱃살, 생새우 살, 유자청을 입은 아귀 간으로 멋을 낸 군함말이, 농어구이, 방어회, 전갱이, 비늘까지 튀겨 겉바속촉 식감을 있는 대로 살린 돔 튀김 구이, 입에서 살 녹도록 만든 관자 구이, 마를 갈아 넣은 푸딩 맛의 계란구이, 디저트로 망고 셔벗까지 1시간 30분이 넘는 식사를 대접받았다.
셰프는 중간중간에 요리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었다. 나는 그에 대한 답례로 ‘맛있어요. 부드러워요, 감칠맛 나요’라는 리액션을 해 주었다.
평소에 바쁜 탓인지 밥을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 어떤 좋은 음식도 입에서 잘게 부수어서 위 속으로 내려 보내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50번은 씹어서 삼켜야 한다고 하는데 성미가 급하다 보니 몇 번 씹지 않고 넘기곤 한다.
그런데 이 오마카세 식문화는 셰프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어느새 천천히 먹고 있었다.
요리를 먹을 때 식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미각으로 느끼며 시각으로는 색깔과 모양을 감상하고 후각으로 향을 맡으면서 천천히 음식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맛인지 모른 채 허기만을 채우기 위해서 먹었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었다.
현대인은 ‘먹어서 죽는다’고 한다. 거칠고 도정되지 않은 음식만을 먹던 인류가 점점 정제된 음식을 섭취하면서, 게다가 필요 이상의 영양을 섭취하면서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수명은 연장되었으되 건강한 수명은 오히려 단축되고 있는 것이다.
맛집 탐방의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룬다. 비례하여 그로 인한 질병에 대한 대처 정보가 쏟아지는 요즘 먹는 일에 있어 개인이 소신을 가지고 처신해야 함은 건강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임에 틀림없다.
적당히 먹고 천천히 먹고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삶, 한 상의 오마카세 식문화체험을 하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