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위에서 장시간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사용자분을 위해 30분 이상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마사지 기구를 사용하실 때에는 엉덩이로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고장의 원인이 됩니다.'
'기구를 맡아 놓고 장시간 자리를 떠나지 말아 주세요.'
'공공장소입니다. 큰 소리로 지인 분들과 이야기는 삼가 주세요.'
내가 다니는 아파트 커뮤니티 내 피트니스 센터에 붙어 있는 주의문이다. 센터를 이용하는 회원이 많은 데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특정한 시간과 요일에 집중되다 보니 크고 작은 민원들이 생겨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붙여 놓은 일종의 부탁글인 것이다. 그런데 글은 글뿐이다. 대부분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기구를 사용해야 하는데 장시간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거나, 기구에 앉아서 지인 분들과 수다에 빠져 있을 땐 딜레마에 빠진다. '비켜달라고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주의문을 가리키며 상기시켜야 하나?
'정중하게 부탁을 할까?'
'그러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거절당해서 분쟁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한 동네 주민이다 보니 건너 건너 아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까칠하다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다며 절대로 나서지 말라고 남편이 말리는 것도 있어서 되도록 이해하고 참고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샤워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은 일정이 있어서 일요일이었지만 오픈에 맞춰서 입장을 한지라 한산했다. 샤워실도 마찬가지였다, 샤워실에 나를 포함하여 3명이었다. 평소에 내가 사용을 즐겨하던 부스에 가려고 했으나 이미 사용 중이라 다른 쪽을 택하였다.
근데 그곳에서 샤워하는 분이 물을 계속 틀어 놓고 그 옆 부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쏴아 쏴아 공중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폭포수 쏟아지듯 하였다. 시간이 흘렀다. 물은 계속 쏟아졌다. 이를 닦으면서도 물을 계속 틀어 놓았다.
그 쏟아지는 물이 너무 아까워 뭐라도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저 깨끗한 물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저렇게 낭비하다니......, 비누칠을 하거나 양치를 할 때는 물을 잠그고 해도 충분할 텐데.......'
용기를 내어 한 마디 하고 싶었다. 그런데 또 갈등이다. 그러다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나보다 훨씬 어르신 같은데...... 못 본체 해야 하나?' 소심한 새가슴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물은 계속 쏟아지고.
'그래도 얘기하는 것이 낫겠지? 물을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지. 물이 넘쳐 난다 해도 그건 아니지.'
용기를 내어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쏟아지던 물이 멈췄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물을 사용 중이던 그 어르신에게 다른 한 분이 다가가서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러더니 쏟아지던 물이 뚝 끊겼다.
샤워실에서 나와서 나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 주신 그분에게 물 계속 틀어 놓고 샤워하시던 그분에게 뭐라고 했는지 물었다.
'샤워기를 잠그고 해 주십사 부탁드렸어요.'
무미건조한 대답이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였다. 어쩌면 정중한 부탁은 강력한 요구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살다 보면 사소한 일이지만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얌체 같은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청소년들의 비행을 봐도 못 본 체한다거나, 관광지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그냥 두고 간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누가 오는데도 문 닫힘 버튼을 눌러 버린 장면들이 있다. 또, 불법 주정차하여 주변 사람의 통행을 막는다든가, 공공 와이파이 콘센트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거나, 개오줌을 그대로 놔두고 가버린다거나, 공원 내 열매를 '채취하지 마시오'라는 주의문 잎에서 버젓이 채취하는 등 여러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괜히 분쟁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봐도 못 본 척 외면할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가 되는 일의 한 부분은 적극적인 시민 참여 의식도 중요하다. 부당한 상황을 보면 말하거나 제보를 하여 다중의 이익을 위한 개선을 이끌어 낸다면 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운전을 하다 보면 매연을 엄청 뿜어내는 자동차가 있다. 그 뒤를 따라가다 보면 숨이 막혀서 정말 힘들 때가 있다. 당장 제보를 하여 경각심을 갖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뿐 참고 넘기고 만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와 편의를 위해 모두가 불의를 묵인한다면 그 또한 용기 없는 자의 비겁함이다.
이해와 배려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부조리 앞에서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작은 용기를 발휘한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