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는 이유

by 몽글몽글


잠실대교 남단 다리 밑 수중보에서 서쪽으로 잠실 선착장까지 노을 맛집들이 있다. 시각, 지점,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저물어가는 노을의 황홀경을 맛볼 수가 있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노을 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사진작가들이 한 시간 전부터 대기를 하면서 일대가 복작거린다.


한낮에 그토록 뜨겁던 태양이 서쪽 하늘을 향해서 저물기 시작한다. 사면이 불그스름하다. 흰 구름과 함께 뒤섞인 태양빛은 우리가 아는 태양의 색깔은 아니다. 강렬함이 쏙 빠졌다. 불그스름한 주홍빛을 띄면서 흰색 구름과 섞여 몽롱하고 오묘한 빛을 뿜어 낸다. 커다란 불덩이가 남산 꼭대기에 걸려 있다. 산은 심호흡을 하고 불덩이를 빨아올린다.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남산 타워와 산등성이의 윤곽이 짙어지기 시작한다. 이미 진홍빛은 주홍빛으로 옅어지고 금빛이 되면 저녁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어느새 태양의 잔치는 끝난다.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노을이 노년의 인생을 참 많이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은 찬란했던 낮의 그 뜨거움을 식히고 밤을 위해 자리로 돌아간다. 한낮의 태양은 그 뜨거움과 강렬함으로 감히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맹렬하지만 밤을 준비하는 이 시각이 되면 부드럽고 그윽한 빛이 되어 주위를 편안하게 한다. 비로소 사람들의 접근을 허락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치열하게 살면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 어느새 황혼기를 맞으면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올라갈 때 못 보던 꽃을 마침내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늘 청춘일 것 같던 나도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관계 속에서 할머니 또는 어르신이라는 낯선 이름들로 불리어지고 있는 시작점에 있다. 퇴직하신 선배에게 어떻게 지내시는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늘 똑같은데 주변 사람들이 나를 늙었다고 얘기해. 그러면 아, 내가 노인이구나!라고 돌아보긴 해”


나는 1963년생 이른바 1차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3년생)이다. 결핍과 가난을 딛고 성공한 세대이다.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 등 격랑의 현대사를 지나왔다. 대학 진학을 통한 사회적, 수직적 이동을 경험한 첫 세대이다. 2차 베이비 부머(1964~1973년생) 세대와 합하면 우리나라 인구 32,3%를 차지한다. 인구 규모가 무척 크다. 당연히 경제, 사회, 고용 등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가 노인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익어가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한낮의 태양은 너무 강렬하고 뜨거워서 맨눈으로 볼 수 없다. 노을은 강렬하지 않고 퍼지며 스며드는 빛이다. 맨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노을을 보고 있으면 안온하고 평화로워 마음속에서 몽글몽글한 따뜻함이 솟는 것 같다. 노을이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모으고 그걸 바라보면서 추억과 여운에 빠져들게 한다면 이제 나도 그런 노을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과 내 주변만을 챙기는데 조급했던 나를 이제는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포용하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공자는 60이 되면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귀가 순하다’는 말은 어떤 말이든 거슬림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젊은 시절에는 자기 고집과 판단으로 살았지만 이순이 되면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말도 쉽게 받아들여야 한다. AI 시대에는 편향적 사고가 더욱 난무한 것 같다. 알고리즘이 그렇게 이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하는, 그래서 사고의 경직성에 갇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상황이 심해지면 사회적 큰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흑백이 아니라 이쪽도 저쪽도 포용하는 사고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어른으로 살 것이다. 어른이란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기본적 가치를 저버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사람이다. 단순히 나이만 든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와 성찰이 쌓여 관용과 이해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얼마 전 글쓰기 지도를 받기 위해 교수님을 소개받게 되었다. 교수님은 우리나라 평론계의 거목이시다. 그런데 연세가 88세이다. 나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나의 어머니가 90세인데 어머니는 거동도 불편하고 보청기를 착용하고서도 주위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나보니 의외로 교수님은 건장하셨다. 염려가 기우인가 싶었다. 글을 메일로 보냈더니 교수님은 메일을 받자마자 첨삭된 원고를 보내신다고 문자를 전송하셨다. 부지런하시다. 뵈었을 때 아직도 여러 출판사에서 의뢰받은 원고를 밤샘 작업하신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원고를 프린트로 인쇄하신 후 행간에 조목조목 빨간 펜으로 피드백을 달아 놓으셨다. 문맥은 물론이며 문장부호, 맞춤법까지 꼼꼼하게 첨삭해 주셨다. 그리고 조언을 적어 보내셨다. ‘글을 쓸 때 뜸 들임은 성숙의 기본이고 발전의 지름길’이라고.......


나는 거의 날것의 초안을 감히 보내 드린 것을 후회했고 죄송스러웠다. 원고 교정과 원고 택배 발송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교수님이 내게 보내신 친절과 배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가의 모습이 바로 이런 거구나’

기본에 충실하고 후배나 지인에게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기부하며 길을 인도해 주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오늘의 시대를 뒷받침해 주는 참 어른이 아닐까?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바꿔 훈계보다는 조언을, 강요보다는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어른이다.


요즘 ‘액티브 시니어’라 하여 여행, 문화, 건강 관련 소비를 주도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너도 나도 앞다투어 젊은 노인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활력이 넘친다는 것은 아직도 열정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적인 젊음도 중요하지만 정작 내적인 품위를 지키는 시니어층이 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젊게 살되 품위를 지키며 열정적으로 살되 공동체의 품격을 지킬 줄 아는 시니어가 될 때 노인 혐오라는 단어는 먼 나라의 얘기이다.


자신의 빛을 그윽하게 비추어 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 위해서 노을이 지듯 다음 세대에게 이 자리의 풍요를 넘겨주는 길잡이로서의 노인 되기를 주저하지 말자, 그것이 노을이 지는 이유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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