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경쾌한 음악이 되어 울린다. 봉인이 풀리자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소떼들처럼 우두두 교문 밖으로 밀려 나가기 시작한다.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하굣길의 가벼움, 다시 보습학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 여러 표정이 섞인 얼굴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교문을 빠져나간다.
그때 한쪽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한 아이가 보였다. 피켓 문구에는 ‘규칙을 잘 지킵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피켓을 들고 있는 아이의 입꼬리는 꾹 다물어 있었고 가을빛이 비켜가는 아이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피켓을 든 아이의 어깨가 자꾸 내려가자 옆에서 지도하시는 선생님의 음성이 들렸다.
“똑바로 들어라”
즐겁고 경쾌해야 할 하굣길에 웬 캠페인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좋은 취지의 캠페인은 아침에 단체로 하는 것이 보통인데 방과 후에 아이 혼자 하는 걸로 보아 벌칙으로 주어지는 활동인 것 같았다. 1학년 학생이어서 1학년 담임교사를 담당하고 있는 J교사에게 물었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위해 상·벌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좋은 일을 하면 상점을 주고 학교의 교칙을 어기는 행위를 하면 벌점을 부여한다. 교사가 학생의 행동을 수정하거나 교정을 원하면 벌점을 사용한다. 상·벌점을 전자 시스템에 입력하면 부모, 담임교사, 학생에게 연동이 되어 고지가 된다.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지점이다. 부모님과 담임교사에게 알려지면 불리하기 때문이다. 상·벌점이 모아지면 단계별로 벌칙이 주어진다. 상벌점 제도의 최종 목표는 아이에 대한 체벌이 아니다. 교육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교사의 철학과 교육관애 따라 벌점을 남용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난다.
“정우는 무슨 이유로 벌점이 그렇게 많았나요?”
내가 물었다.
“지각을 한다고 담임교사가 벌점을 부여했어요.”
벌점이 누적되니 생활교육 담당 교사가 생활교육위원회를 열었고 위원회의 결과에 따라 정우가 하굣길에 20분씩 캠페인 벌칙을 받은 거예요.”
나는 의아했다. 단순 지각을 했다고 벌점을 부여한 것도, 토닥거리고 보듬어야 할 담임교사가 앞장서서 벌점을 부여한 것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에게 수치심을 줄 수도 있는 벌칙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를 묻고 싶었다. 물론 무단 지각을 하면 안 된다. 규칙을 지켜야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아이를 훌륭하게 성장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게으름은 지도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면 담임교사는 어떤 연유에서 지각을 자주 하는지 깊은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J교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정우는 부모가 이혼을 하고 재혼한 새엄마와 아빠, 그리고 새엄마가 낳은 3살짜리 남동생과 함께 산다. 아빠는 생계를 위해 지방에서 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온다. 정우 새엄마는 동생 양육에 집중하느라 정우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있다. 밥은 물론 세탁까지. 그러니 아침에 깨워서 등교시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할 일이다. 한창 클 나이에 허기진 아이는 혼나러 교무실에 와서도 늘 ‘배고파요.’를 아직 잠이 덜 깬 눈빛으로 투정을 부린다 한다. 새엄마가 아기 옷만 빨고 정우 옷은 빨아 주지 않아서 그런지 정우의 몸에서는 장마철도 아닌데 빨래 쉰내가 난다. 더구나 정우는 ADHD 처방약을 먹어야 하는데 아침밥을 굶으니 독성이 강한 약 먹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당연히 교실에서의 주의 산만함이 심하니 담임교사 입장에서는 버거운 아이인 것만은 틀림없다. 담임교사의 욕심에 내가 경영하는 학급의 꽃밭을 망치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면 불편한 아이였던 것이다. 지각은 핑계였고 정우의 수업 방해와 교사의 지시에 사사건건 토를 다는 이 반항아를 벌점을 핑계로 해결하려는 심산은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 본다.
며칠 전 정우를 늘 안타까워하며 알게 모르게 챙겨 주던 J교사와 담임교사와의 마찰이 있었다. 1학년을 대상으로 중요한 학교 의전행사가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단정하게 입어야 했다. 식이 시작되려고 할 때 정우는 열외가 되어 있었다. 본인이 행사에 참석하기를 희망하지 않아서 제외시켰는데 막상 친구들이 하는 걸 보더니 참석하고 싶다고 하였다.
“선생님, 저도 참석하고 싶어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정우가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말했다. 정우가 담임을 대하는 태도는 늘 날 선 목소리였고 행동은 삐딱했었다.
“안 돼, 너는 교복 재킷이 없잖아.”
단호한 목소리였다.
“저, 정말 잘할게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얌전히 있을 수 있어요”
이번에는 두 손바닥을 비비면서 얘기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J교사를 쳐다보며 마른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순간 J교사는 쩡우의 애절한 눈빛에서 ’ 도와주세요 ‘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잠깐 기다려 봐.”
졸업생들이 기부하였던 학생회실 창고에 있던 교복 재킷을 뒤져서 가까스로 교복 재킷 하나를 가져왔다. 정우에게 입혔다. 식장에서 정우는 정말 거짓말처럼 장엄한 의전행사를 치르었다.
그런데 담임교사가 월권이라며 J교사에게 따져 물었다.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학생을 타반 담인 교사가 간섭했다며 화를 냈다. 격앙되고 떨린 목소리였다.
J교사는 차분하게 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정우를 나쁘게만 보지 말고 이면에 감추어진 아이의 진심을 보셨으면 좋겠네요, 그 아이는 엄청 외로운 아이예요. 우리가 벌점을 주어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허기진 마음을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요?.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정우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면 이 아이가 비빌 언덕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학생 지도에서 상·벌점 제도 등 각종 규정과 제도는 교육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수단이나 방법에 너무 치중하면 본질을 망각하는 수가 있다. 학생을 체벌하고 질책하는 것은 교화가 아니다.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하나 따뜻한 햇볕은 아이를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그들의 눈눈이 에서 진정 어린 사랑을 전제로 한 지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 그것이 참다운 교육의 길임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