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그 다리를 지나

by 몽글몽글

J가 졸업한 중학교를 찾아왔다. 친정 집에 인사온 딸처럼 00 대학교 수시 전형 수학교육과에 합격을 했다는 기쁜 소식을 갖고 왔다. 조기졸업이다. 아울러 대치동 학원가 00이라는 곳에서 수학 문제 출제하는 일을 계약했다고 했다. 수학 문제를 만들고 해결 과정을 찾아가는 인스타 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팔로우 수가 7,000명을 넘어가자 대치동 사설 학원에서 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안경 너머로 자신감과 기쁨이 봄날의 햇살처럼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이톤의 목소리로 빠르게 그렇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방점을 찍듯이 또렷하게 말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만난 J는 얼굴이 다른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하앴다.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아이의 눈은 어쩐지 겁에 질려 있었다. 깡마른 어깨가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3월부터 중학교 신입생들은 초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중학교 생활을 무척 힘들어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새 학년 새 학기에 대한 설렘과 기대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1주일이 지나면 서먹한 감정은 사라지고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아이들의 수다 소리와 분주함으로 교실 안은 시끌벅적했다. 그곳에서 J는 한쪽 구석에서 맥없이 앉아 있었다. 국영수 수업 시간은 물론 체육·미술· 음악 시간 등 신체 활동을 필요로 하는 시간에도 무기력하고 멍했다. 그러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발작을 일으키며 수업을 중단시키는 일이 있었다. 3월이 다 가기도 전에 J는 이미 전교에서 요주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하루는 내 수업 시간에 J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5분쯤 되어 다시 돌아왔다. 수업 도중 이탈한 학생에 대한 지도가 불가피했다. 중학생 정도면 수업 중에 예의와 규칙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J야, 나갈 때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가야 하지 않겠어?”

J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고 있었던 터라 아이의 심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내 딴에는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물 마시고 왔는데요. 왜요?”

턱을 치켜들며 따지듯이 물었다. 순간 아이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쏠렸다.

‘여기에서 밀리면 안 돼.’

교사가 밀렸다는 소문이 퍼지면 다음 수업을 장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더구나 3월이다. 1년의 운명이 지금 해결 방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밀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줄 테니 수업 끝나고 교무실에서 보자.”

애써 화나는 감정을 누르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J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내 수업과는 무관한 수학책을 놓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교무실에 돌아온 나는 J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이는 오지 않았다. 다음 수업 시간까지는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J를 불렀다.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교실로 가서 직접 아이를 불러왔다. 나는 수업 시간에 지켜야 할 예의와 규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잠자코 앉아 있던 J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면서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꼬챙이 같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창문을 열더니 그 창문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들의 시선이 쏠렸다. 수학 교사가 뛰어와 J의 다리를 잡았다. 아이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다리를 잡고 있던 수학 교사의 어깨가 태풍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상담, 보건 교사가 뛰어 욌다. 상담 선생님은 물수건을 가져와서 수학 교사가 가까스로 눕혀 놓은 J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염려하지 말아라.”

화산처럼 뿜어 대고 씩씩거리던 J의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졌다.


J의 부모, 상담교사, 담임교사 모두 모여 J의 거취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J의 부모님은 서울대학교를 나온 유수한 인재였다. 사립 초등학교를 졸업한 J는 중학교 입학 다음 날부터 적응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가 수시로 폭발했고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초등 때는 총명한 아이였는데···.”

두 손을 포갠 채로 핏발이 선 눈동자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J어머니가 말했다. J를 위한 기약 없는 회복적 적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심한 사춘기 부적응을 회복하기 위해 아이를 온전히 믿어 주고 자신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가정에서 학교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정해졌다.


J가 상담실에 오면 그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식문화, 놀이 문화, 진로 직업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J의 자존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서 아이에게 다가가 주었다.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어 J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창백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잔뜩 움츠려졌던 어깨가 턱밑까지 올라갈 기세였다. ‘나이야, 가라’라는 트로트 노래를 구성지게 구절을 꺾어가며 불렀다.자신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 주며 하얀 잇속을 드러내며 웃었다.


2학년 말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J가 말했다.

“선생님, 이제부터 공부를 해볼까 해요. 수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기초가 모자라서 초등학교 6학년 공부부터 시작하려고요.”

결연한 의지가 굳게 다문 아이의 볼언저리에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 제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두 손이 다 묶여 있었어요. 그럴 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게요? 뱀같이 내 목을 갉아먹는 이 밧줄을 내가 끊어야겠구나. 그럼, 무엇으로 밧줄을 끊어야 하나?....... 공부를 해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J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J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어느새 수학 공신이 되어 있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사춘기를 겪게 된다. 사춘기는 어쩌면 온전한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다. 그러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불과하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더디더라도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 주위가 할 일이다. J의 열병이 사춘기라는 다리를 지나 성장의 자리를 찾아가듯 여지와 여백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해맑게 웃고 있는 J의 그 미소가 길을 알려 주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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