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희생자...
내가 참지 않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아이도 포함이었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만 않아도 부모역할의 9할은 성공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의 폭력성이 보일 때마다 피하고 참았다. 나만 참으면 아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입을 닫는 방법을 선택했더니 계속해서 아이가 있을 때 아이 앞에서 발작하는 욱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를 막는 방법을 찾기란 나의 지식이 부족했고 나의 지혜도 부족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작은 사회활동을 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에서 참고 견디고 힘들어도 울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보이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폭력과 공격에서 매우 당황해서 블랙아웃이 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아이는 내가 얼른 달려가서 안아 주기 전까진 울 수도 없는 당혹과 두려움으로 온몸이 얼어붙어서 서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상대방이 아이라서 똑같이 밀거나 때릴 수도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집어던져 버리고 그 아이의 부모들의 얼굴을 똑같이 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폭력 앞에 무기력해진 나는 가슴에 분노만 안고 어찌할 줄을 몰라 허둥지둥하기 바빴다.
나는 괜찮냐고 묻는 나의 눈을 바라보고서야 울음을 터트리는 나의 아이를 안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는 뒤엉키고 있었다.
책을 찾아보니 기질이라고도 하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3살 때부터 틈만 나면 자신을 지키는 역할 놀이를 했었다.
아프면 울면 될 텐데. 소리라도 지르면 될 텐데. 밀지 못하면 막기라도 하면 될 텐데...
나의 아이는 그 아이가 웃고 생활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막아내지 못하였고
어른의 눈 부라림과 무서운 목소리에도 울지 못하였고
매일 맞아도 매일 사과를 받아주는 그런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아이는 상대에게 잘해줘도 보고 사탕도 줘보고 양보도 해보고 온갖 것을 해보고
계속 괴롬힘이 지속되었을 때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나는 어른에게 바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를 아직도 말하고 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나쁜 아이가 와서 놀자고 하면 거절하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내가 옆에서 보고 있어도...
동년배나 조금 나이가 많은 아이들일 뿐인데, 눈을 부라리거나 내려 깐 목소리로 누군가 말을 하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그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해버린다.
엄마보다 그 아이들이 더 무섭고 엄마가 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모습을 만날 때면 나의 10년의 모습이 고스란히 아이가 피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면 그는 남이야기 하듯이 아이에게는 신경 쓰지 말라는 위로도 안 되는 입 발린 말과
유치원과 학교 선생님께는 본인 홀로 호인인 양 타인들을 가해자를 배려하며 아이를 지켜주지 않고 지켜주려 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 당신이 알아보라고 하면
"그냥 조심해야지. 어쩔 수 없지"
로 끝이 났다.
나는 홀로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받고, 놀이 교육을 하고, 책을 읽어 주고, 위로하고 또 위로하며 그 세월을 보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상담을 받고 그에게 말했다.
도와달라 했다.
그는 '별 것' 아닌 걸로 오버하고 확대한다고 했다.
크면 나아질 건데 그러면서 크는 건데 난리 친다고 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함께 있는 나의 행동이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에게 부탁하고 부탁했다.
아이 앞에서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몇 년을 구걸하듯이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잦아지고 심해졌다.
지혜롭진 않았지만 나는 부딪히기로 했다. 똑. 같. 이.
이 방법은 나를 파괴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와 그들에게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내가 달라졌다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효과가 아주 없진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분노하든
미끼를 던지든
던진 미끼를 때로는 물어서 무너져도
다시 그들에게 조정되지 않는 나를 불쾌해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의 자세를 취하였다.
그와 그들은 그의 가스라이팅이 통하지 않자 더욱 크게 비난하고 폭언하였지만 스스로 멈추게 되었다.
내가 피해서 끝이 나는 싸움이 아니라
아이 앞에서 자신과 똑같이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멈추거나 피하였다.
하지만 그 방법은 부부도 동반자도 아닌 남에게도 못하는 남보다 못한 사이로 표면 위로 완전히 올라와버렸다.
무엇보다 나 또한 가해자가 되는 길이였다.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부모의 역할을 포기해 버린 엄마가 되었다.
소중한 영혼은 상처를 받고 불안해하게 되었고 이해되지 않아 많은 질문을 했다.
그때마다 이야기했다.
"엄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엄마를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나를 지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지금 하는 엄마의 방법이 지혜롭지는 않아.
하지만 엄마는 엄마가 조금 상처가 되더라도 그들이 알아듣는 방법으로 나에게 더 이상 함부로 하지 말라고 표현할 거야. 그래야 엄마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렇게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지혜롭지는 않았던 나의 모습은 아이에게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내 아이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이들에게 '하지 마'라고 하는 용기가 생겼고
엄마인 내가 아닌 그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과 말문이 막혀 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로 인해 나의 지혜롭지 못한 선택들로 인해 배우자와 이성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이상형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조부모와 아빠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변명을 하고 그들이 너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조금 더 자라자 왜 사랑하는데 이렇게 행동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는 것들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흘러 10년이 지나서야 아빠의 역할을 조금씩 하려고 했다.
처음으로 목마를 태워주고 처음으로 안고 길을 걸어갔다.
작고 작았을 때가 훨씬 가벼웠을 텐데 그때 실컷 안아주었다면 지금 아이가 이러지 않았을 텐데..
저런 말들과 질문은 비단 나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애가 듣고 말하는 거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 나를 꾹꾹 밟아두고 너희들을 해명하지 않았다면
내 아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나의 말을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들은 잘못이 없었으므로....
그는 아이 앞에서 나에 대한 온갖 욕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도 쉬지 않고 가스라이팅을 시도했다.
아이 앞에서 참지 않자 그는 아이가 있든 말든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았고 맹 비하와 비난도 잦아졌다.
아이는 아빠다 엄마를 헌 담 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고 나에게 종종 도움을 청했다.
귀가 썩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냥 이혼해.
다툼 중에 아빠의 입에서 이혼하자는 말을 들은 다음 날 그가 집에 오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절대 이혼은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아이는 이혼으로 아이에 인생에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모를 것이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아이에게 더 불행일지 그냥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혼을 해야 할지 더욱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선택이든 아이는 이미 겪지 않아야 하는 일을 겪고 있었고 이성에 대한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키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