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아빠의 죽음과 부재로 가득한 스무 살 초반은
슬픔이 너무 커 슬픔을 느끼지 못하였고
힘듦이 너무 커 힘듦을 느끼지 못하도록
젊음으로 메우며
버텨내는 하루하루였다.
코스모스같이 들꽃 같고
비타민 같이 빛났던 나의 모습은
(내 입으로 말하니 신뢰가 떨어지지만)
우울증이 온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버텨내기가 바빴다.
상황이 변해서 대학을 한국에서 졸업해야 했고
TV에서나 보던 나쁜 사람들을 많이 대하게 되었고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 형제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그 자리에서 고군분투를 하며 몇 년을 보냈다.
화장터에서 먼지가 된 아빠를 납골당에 넣고
이쁘게 꽃을 걸어주고 난 후
나는 이 세상에 혼자 사는 사람처럼 지냈다.
혼자서 밥을 먹고 말 수도 훌쩍 줄었다.
매일 작업을 하지만 머리는 멍 했고
울거나 슬퍼하지도 먹지 않고
힘들어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고
누구와 어울리지도 않고
누구에게 기대지도 않고
하루 일과를 빼곡히 짜고 그것들을 달성하며 지냈다.
나의 우울증을 인지했을 때는 아마도 졸업반이었다.
전공영어시간이었다.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일어서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졌고 그 떨리는 목소리마저 너무나 작았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크게 말해달라는 교수님의 요청에
나의 눈앞은 하얗게 백지가 되었고
나는 강의실을 나와 계단에 앉아서 꺼억꺼억 울었다.
울음소리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날 집까지 데려다준 친구가 참 고마운데
그 친구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의 환경도 나의 상태도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던 것 같다.
졸업 후 작품생활을 선택하지 않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꽃 다운 스물넷의 나는 어설픈 사회인으로 사회에 나오게 되었다.
학생이 아닌 사회인.
다시 한번 나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때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