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시절
어설픈 사회생활로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며
한 해 한 해 성장?? 을 했던 나의 일이
스물일곱 쯤에는 적응이 되었던 것 같다.
나이 많은 작가의 불쾌한 뉘앙스의 말도
아빠뻘 되는 고객의 늦은 연락도
나의 젊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약삭빠른 대표들과의 생활이
몇 년 동안의 생활로 조금은 견딜 힘이 생겼다는 것이 맞겠다.
호칭만 선생이었지 대우는 프로 잡일러나 개인 비서 정도가 정확하겠다.
선생이라서 함께 해야 했던 많은 식사와 회식.
방문을 가장한 드라이브 등등
회사의 보호는 없었다.
오히려 젊은 선생이 앞에 앉는 게 좋지 않냐며
나를 앉혔고
젊은 선생이랑 밥 먹는 게 좋지 않냐며
식사에 참석시켰다.
여자 대표는 여자임을 이용했고 남자 대표는 자신의 유희를 위해 이용하려고 했다.
그림을 떠날 수가 없었고 돈을 벌어야만 해서 선택했던 일은
나에게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몸을 주었지만
살아남는 지혜와 강단이 없었던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탈모를 얻었고
건강을 잃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번아웃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무척이나 뾰족한 예민함과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욕구불만으로
혼자서 허덕거리며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매일 하루를 통장만 바라보며 얼른 돈을 벌어야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지를 고민하며 살았었다.
사회 초년생의 투정을 받아 줄 곳도 없었고
그 돈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 없었다.
나는 그렇게 독립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공부하고 내가 아끼고 내가 벌고를 했다.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
헌데 그곳에는 알맹이가 없었다.
열정도 목표도 없이 맹목적인 생활은 행복도 여유도 꿈도 희망도 행복도 없었다.
그냥 내가 아는 현실만을 살아내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