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너를 위한 거야
그들의 모든 말 끝은 다 너를 위한 거야로 마무리되었다.
신혼집을 구할 때는
"얘! 집 구하는 것도 어렵고 여기 Y이 직장이랑도 가깝고 딱 좋다. 너네가 여기서 일 년이나 살겠니?
일단 여기 있다가 아파트 괜찮은 거 나오면 들어가라. 다 너희들 좋으라고 그러는 거야~.
안 그러니? 아무 집에 급히 들어가는 것보다 낫잖니??"라고 했다.
그때는 전세와 매매 차이가 1억~2억 정도 났었고 그 돈이면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을 때였다.
모두가 대출을 끼고라도 신혼집을 살 때였고 결혼 비용을 아껴서 집에 투자할 때였다.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넌지듯이 띄웠지만 그는 전혀 현실은 모르는 눈치였고
어렴풋이 알고 있어도 그들과 함께 의논하였다.
그들의 혈랄한 혀놀림에 그는 그들의 생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듯
대출을 받는다는 것을 마치 암 선고 같이 반응을 했다.
그들은 명색에 은행권에 계셨던 분이시고 그렇게 뉴스를 보는 분들이 신데
어쩜 그리고 무지한 선택을 하셨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냥... 아까워서??
그들은 나르시시스트니까 자식에게 들어가는 그 돈도 아까워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사 오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니 결혼자금에 쓰거나 그의 사업 비상금으로 쓰기 위해 현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직장이 있을 때 내가 아직 내 돈을 합치지 않았을 때
내 명의의 부동산을 사지 않은
나 또한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기도 하다.
저런 태도를 간파하고 그냥 내 명의를 챙겼어야 했다.
그 집에서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하게 되긴 했다.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울 곳으로 알아봐야 했다.
그때 또 그와 나에게 "다 너희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라며
학군지도 아니고 그의 직장과 가깝지도 않은 시모 명의의 집을 전세로 들어가라고 했다.
"작은 애(동서)는 작은 애(동서) 아빠가 대출 끼는 형식으로 해서 집을 사줬잖니?
사업하시는 분이라 그쪽으로 밝으신가 보더라.
걔네는 이제 미국 가서 사니까. 너희도 형인데 멀쩡한 집이 있어야 하지 않겠니?
이제 아기도 나올 거고. 임신하고 오르락내리락 4층까지. 힘들잖니?
장보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 임신하면 힘들지.
아기 생기면 유모차도 들고 다녀야 하는데.
너네가 엄마 집으로 들어가라고.
(엄마라니... 들을 때마다 소름 끼친다.)
내가 시세보다 일억 적게 받는 거야. 그 돈으로 여기 못 들어가~
여기보다 넓고 좋잖니?? 거기서 살면서 돈 모아서 너희 집 사서 나가면 되잖아."
입덧으로 종일 토를 하는 나를
굳이 불러내어 10분이면 갈 거리를 토를 하며 30분을 기어갔더니,
굳이 밥을 먹이시며 저런 말을 하셨다.
"난 입덧해도 사이다 먹으면 괜찮던데 넌 좀 심한가 보다? 몸이 약한가? 밥 좀 먹어"
지금 같았으면 "어머니 저 못 나갑니다." 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가 나의 방패가 되어 주길 기다리며 도움을 요청하고 기대하고 반복을 하던 때였다.
생각을 해보라고 해서 생각을 해 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굳이 내 돈을 드려서 거길 들어가야 하나?
줄 테니 들어가라도 아니고 빌려줄 테니 그 돈으로 너희가 빨리 불려서 돈을 모아라도 아니고...
우리 돈으로 세 들어 사는 사람 전세금을 내주겠다는 거면
그냥 전세살이를 하러 굳이 아이가 태어나서 이사하는 마당에 비학군지로???'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도 저렇게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다 너희를 위해서라고 했다.
'같은 값에 여기서는 30평인데 거기는 40평이니 좋은 거라는데....
구조 변경인 안된 10평을 위해 비학군지로..??'
고민을 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그냥 우리가 모은 돈만큼 맞는 곳으로 가자. 애 키우기 편한 곳으로."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고 2주쯤 후에 전화가 왔다.
"얘!! 이번 주 큰집에 제사 있다. 너 토는 좀 낫다며? 그럼 제사 올 수 있겠구나. 그 정도는 올 수 있잖아??"
"............"
그 정도는 올 수 있잖아...? 가서 제사상에 시원하게 토를 했어야 했는데.
그가 목숨처럼 아끼는 차 시트까지 더블로 했어야 했는데..
그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나 그는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시부모의 등살에 너무 힘든 일 년을 보내던 시기였고
임신 후에 심한 입덧과 그의 방치 속에 임신 기간을 보냈던 나는
나의 가정을 위해 그를 하루빨리 분리시켜야 했다.
그에게
"나 정말 생각해 봤는데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생활권에서 많이 이동하지 말고 여기서 키우자."라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대답 없이 이해하는 척 어물정 넘어갔다.
(그가 늘 하는 방치와 외면하며 미루기 방법이다.)
그 이후 그들이 전화가 와서 또 나를 밖으로 불러 냈다. 이번에는 더 기가 막혔다.
"너의 계약 종료일이 언제니? 지금 세 들어 있는 사람들 나가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네.
그때 맞춰서 집을 빼야지 그래야 부동산 복비 안 들지. "
"네..???"
"복비 아깝잖아. 지금 나가라고 하면 우리가 복비도 줘야 하고 하니까."
그에게 물어보라고 대답을 넘겼다.
그들이 나에게 한 대화를 요약해 보자면,
"다 너희를 위하는 거야. 아기를 위하는 거지.
아기 키우려면 아파트가 났잖아.
근데 네가 지금 가면 우리가 전세 놓은 집에 복비랑 이사비가 들어가니까.
전세계약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들어가라.
너희들 복비도 들고 우리도 들면 아깝잖아? 한 명이라도 덜 들어야지.
그래서 우리에게 맞추거라 우리 돈 안 들게.
뜨는 기간은 같이 살던지 레지던스 같은 곳에 좀 있어야지.
너 임신기간 다 지났고 산후조리하고
아기가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되었고 눈 내리는 2월이지만 그때 이사해라.
너희가 들어가서 돈을 모으라고 가서 살라고 하는 거다.
하지만 너네 돈으로 세입자들 전세금 내어 줄 거다."
주식이며 펀드가 나락을 치고 있던 시기라 손해 보고 빼기 싫으니
본인 아들 꼬셔서 돌려줄 전세금을 융통하려는 속셈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와 아기를 위한다면서.
그와 그들의 계획 속에 어느 곳에도 아기와 나는 없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우리가 있는 돈에 맞게 우리가 구하자고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임신 막달을 향해 달려가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이사 갈 집을 알아봐도 꿈쩍없던 그는
임신한 내가 힘들까 봐 친정엄마가 함께 부동산 다녀 주는 걸 보더니
그제야 본인의 입으로 의사를 전하기 위해 그들에게 갔다.
그들에게 간지 6시간이 넘도록 그는 그들에게 분노와 호소 그리고 남 탓(내 탓)을 듣고
가스라이팅을 당한 상태로 돌아왔다.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그들이 엄청 화가 나셨고 분노하셨다고 했다.
내가 이게 그럴 일인지 당황하며 당신 괜찮냐고 하는 물음에
이럴 줄 몰랐냐며 쏘아붙이고는
"너 문자나 찍 날리고 너 전화하래.
남들은 안 줘서 난리인데 감사하지는 못 할 망정 줘도 헛소리하고 지랄이라고!"
그렇게 니들 맘대로 살려면 호적 파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왜 나를 원망하고 있는 걸까?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걸 우리 부모님이 우리 안 좋은 거 시키지 않는데
너 때문에 힘들게 이게 뭐야라는 원망 섞인 말과 표정으로
이상화의 불편함을 내 탓으로 돌렸다.
그때의 어리석고 무지했던 나는
그게 그럴 일이냐고 대화가 어떻게 되었길래 그런 거냐며 그를 위로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심한 말들이 오갈 정도라니 놀라웠다.
나는 우리가 결혼을 했고 말씀은 감사하지만
우리 스스로 독립해 보도록 하겠다는 말을 장문의 카톡으로 보냈고
그 다음날 그가 갔는데
그곳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온갖 분노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통보할 때는 아들만 불러서 다 정함 뒤에 나에게는 일방적으로 강요해 놓고
왜 거절은 내가 가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가 화가 나셨다고 하니
어린 내가 전화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왜 난 저렇게 생각하는 구조로 자란 것일까....
그냥 모르는 척 그랬나 보다 그와 그들처럼 그러면 되는 건데.
그렇게 나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내일 전화드리겠다는
장문의 카톡을 보내고 긴 밤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남편이 출근을 하고 오전 열 시경이었을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버님. 저예요. 어제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 너.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
어른한테 카톡이나 찍 날리고. 너 날린다는 말 알지?
너 그렇게 배웠냐?
남들은 못 받아서 난리인데 준다고 해도 지랄이냐? 어디서 말을 빙빙 돌리며 헛소리야?
(시모가 전화를 받는다)
너 나한테 작은애는 아빠가 세금 안 내게 대출금 대신 갚아주는 걸로 다 처리해서 사준거지만
너는 그게 아니라서 미안해서 생각해 보겠다더니.
너 나한테 거짓말하니???? 거기를 들어가면 되는데 왜 안 들어간다고 지랄이니?
엄마 아빠가 들어가라면 들어가는 거지. 어디서 어른을 가지고 노니??
우리 아들한테 물어보니까 네가 싫다고 했다던데!!!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가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싫다고 하니!
니 네 돈으로 가지도 못한다니까. 일억이나 싸게 살 수 있는데!!!
(시부가 전화를 받는다.)
너 말이야 나한테 다시는 저딴식으로 카톡 보내지 마. 그러말을 하려거든 찾아와서 해야지.
어디서 문자나 찍 날리고 말이야 싹수없게. 알겠어??
왜 대답 안 해!!
(이후 쏟아지는 폭언과 욕설들은 너무 울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치욕과 모멸 같은 감정만 남아있다.)"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은 이 정도까지다.
속이 울렁거렸고 머리도 울렁거렸다.
소리는 귓속으로 웅웅 흘러갔고
쓰러지듯이 바닥과 소파에 흐느적거려서 쓰러져있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이 먹먹하게 물속으로 잠기는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의 폭언을 다 기억 못 할 정도로
심신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상태였다.
나의 어깨는 들썩이고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살면서 누구에게 이런 폭언도 이런 비난도 들을 일이 없었고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도 없었다.
한 시간이 훌쩍 넘어 두 시간 가까이 폭언은 계속되었다.
배가 뭉치고 너무 아팠다.
끊어버리면 될 것을 그 쓰레기를 다 들으며 숨 죽여 울기만 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 화가 나면 먼저 피하지도 않아도 되는 좋은 어른만을 만난 상태였다.
나이를 엉덩이로 드시는 노인을 한 명이라도 만났더라면 덜 힘들었을 텐데..
그 카톡을 본 목사님과 어른들은 매우 아주 공손하고 예의바르썼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동서는 카톡방에 한마디만 날려도 고맙다 잘한다 칭찬일색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쏟아지는 폭언을 들고 내가 어디를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아빠가 살아계셨어도
그와 그들의 태도는 같았을까....?
본인들 장남의 손주를 임신하여 입덧으로 만삭까지 누워 있는 맏며느리에게
어떻게 입에도 담지 못할 상스러운 말과 고성을 지른단 말인가..
나는 이 집에서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의문인 질문들이다..
뭉친 배를 부여잡고 자꾸만 끊어지는 의식을 찾고
흐르는 눈물이 멈추고 몸을 일으켰을 때는 해가 다 진 후였다.
도대체 몇 시간이 흐른 걸까...
그렇게 터진 눈물은 멈춰지질 않았다. 가만히 있는데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게 이박 삼일을 울었던가...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정말 죄송했다...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저런 것들이 날 이렇게 대하는데 이렇게밖에 대처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했다.
친정아빠가 알면 무덤에서 깨어날 일이었다.
살아계셨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임신 전에 시집살이의 정신적 고통으로 약까지 먹다가 생긴 아이여서 너무 안쓰러운 아이였다.
임신 기간 내내 집 문제로 들들 볶아서 스트레스로 뭉친 배를 달래는 게 매일의 연속이었다.
태교에만 신경 쓰고 싶었는데 아이에게 너무 큰 죄책감이 내도록 들었다.
줘도 지랄???? 생각해 보라고 해서 생각한 걸 말했더니
만삭인 며느리를 욕을 하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남편까지...
저건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뭘 주었다는 말인가???? 내가 내 돈 내고 가는데!!!!!!
멍청했던 나는 그때 잠시,
저런 부모아래 자란 그가 불쌍했다.
저런 식으로 자랐으니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하고 살았겠나 싶었다.
결국, 그도 똑같은 나르시시스트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치욕스럽고 능멸감과 모멸감에 치를 떨며
눈물로 지새우던 며칠 밤이 흘렀고..
결국 나는 입원을 하게 되었다. 한 없이 사랑받을 그때에 내 아이는 하루도 편치 않은 열 달을 보냈다.
그와 그들은 말한다.
네가 어미니까 니 감정 네가 컨트롤해야 한다고.
자존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건데 너는 자존감이 낫다고.
그래서 니 탓이라고. 예민한 니탓.
그때의 나는,
내가 못 나서 그런 건가..
딸이라고 했을 때 둘째는 아들 낳아라라고 하더니 딸이라서 그런 건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 건가...
내가 집을 안 사줘서 그런 건가...
온통 나에게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와 그들의 지속적이고 교묘하고 정교하게 나를 조정하고 있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나와 결혼 생활을 하던 그는 늘 한 걸음 떨어져서
나를 방치한 채로 모든 상황을 외면하며
하루하루를 모른 체하며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