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

호래자식

by 몽운

그는 말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도 천주교로 개종을 하셨다고.

큰집 형님께서 천주교를 다니셨다.

그래서 큰어머니와 큰아버지의 장례도 천주교에서 치렀다.

전해 듣기로는 큰어머니가 많은 명절 음식과 제사 음식을 손수 하셨다고 한다.


시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이었는데 전쟁이 터지고 남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이별을 하게 되었고 홀어머니 밑에서 평생을 자라게 되셨다고 했다.

이산가족 찾기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80년대에

시아버지도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아버지의 가족 즉, 이복형제들을 통해

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북한에 남으셨던 시아버지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이복형제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디에 묻혔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남쪽에서 홀어머니 아래 자식들이 3명이 있었고

큰아버지께서 가장의 역할을 하며 자식부터 형제까지 건사하셨다는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으로 생각하면 될만한 스토리를 가진 가족사를 듣게 되었다.

그 가족사의 막내가 바로 나의 시아버지인 것이다.


여하튼!! 그러하여 큰 어머니께서는 4명의 자식과 막내 도련님, 누이, 시어머니까지 모시느라

아주 큰 손이 되셨다고 했다.

그리고 두 분은 '국제시장'의 황정민 님처럼 자녀와 형제를 매우 열심히 훌륭히 뒷바라지하셨다.

그렇게 모두를 장성하게 키우시고 큰어머님은 암으로 투병 끝에 떠나셨고

그 후에는 음식 많이 간소화되었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사는 것을 사고.

그렇다고 해도 전을 부치는 일은 타협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암으로 투병하시던 큰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의 묘와 아내의 묘를 모두 가족 납골당으로 모으셨다.

제사나 차례의 문제도 큰 아들에게 다 협의를 하시고

호스피스에서 주변을 모두 정리하신 후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렇게 나는 임신을 한 상태로 중환자실과 호스피스 병동을 들 나들었고

두 번의 장례식을 참여하였다.

큰 아버님 장례식 때는 만삭이라서 보는 사람들마다

"아휴 여기 왜 왔어?? Y야 얼른 데려가라~."라고 혀를 내둘렀다.

부모님이 오라 가라 하니 효자였던 나의 남편은 나의 의사 따위는 묻지도 않았다.

나 또한 며느라기 시절이라 배 속의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남편의 뜻을 따랐다.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 그때는 그들도 생각이 있겠지 했다. )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의 병환 때문이셨는지 시댁가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눈치를 주지 않으셨던 분들이라서

나도 애도의 뜻을 전하러 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배웅을 받으면서 두 번째로 "임신한 특권이다 특권!!"이다를 외치는 시모와 고모님의 얼굴을 마주하였더랬다. ( 첫 임신 특권은 아버님 칠순잔치를 식당에서 하였더니 손수 안 차렸다고 가족 식사자리에서 들었던 외침이었다. "임신한 특권이다!! 특권!! 알지??"동서에게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큰 아버지가 떠나시고 첫 기일이었을까?

아버님은 큰형님네가 천주교에 미사를 드리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청난 사건을 만드신 것 같았다.

그 일로 큰형님네와 교류를 잠시 멈출 만큼.

아마도 그들의 자식에게 마치 아버지인양 행세하셨던 것 같다.

평생을 막내라고 외국에 있다고 어른 한 번 모신 적도

그 많은 손님들 음식을 명절이며 제사 때까지

와서 먹기만 했지 해 본 적도 없으면서 큰어머니와 큰 형님이 다 했는데

무슨 권리로 그러셨는지 모르겠다.

평생을 본인의 어머니가 희생했고 본인의 아내가 희생했고

돌아가시는 아버지께 허락을 이미 받아서 행했던 일이었는데

무슨 권리로 그들에게 노여웠던 걸까.


맏며느리였던 큰 형님은 가부장적인 집에서

다행히도 첫째를 아들로 낳았고 산후우울증이 길어져서 둘째는 생각지도 않으셨다고 했다.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 것 같은데...

이제야 다 돌아가시고 다 정리도 하셔서 홀가분하게 눈치 볼 것 없이 온전히 애도하며

내 아내를 챙기겠다는 큰 아주버님한테 시아버지의 엄청난 독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마주치지 않았고 이제야 교류가 조금은 있지만 이제는 내가 피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되자 아버지는 갑자기 본인이 제사를 지내겠다며 상을 차리기를 강요하셨다.

?????? 내가 왜???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결신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결혼을 전제로 만난 이들 중에 이 사람의 집안만 기독교 집안이었고

기도를 한다고 매일 입으로 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인가..

(이 부분은 종교적인 부분이라 타인의 이해를 구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이미 나의 마음이 상할 때로 상한 후이라 더 불만이었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이 신실한 척을 해 데는 가식덩어리들.

(결혼 후 나의 믿음 생활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전부 가식으로 느껴졌다.)

남편에게 제사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의사를 전했다.

남편도 입이 열개라고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본인만 다녀오리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애미냐?

음식을 널 더러 하라는 게 아니잖아?

나도 하기 싫어!!

(알고 있다. 그래서 매번 제사 때 음식 만지는 것도 싫다며 나에게 음식 놓는 것도 다 시켰으니까)

그래도 널 더러 우리 죽어서도 하라는 거 아니잖니.

어른이 이만 큼 양보했으면 못 이기는 척 와야지.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니?"

옆에 아이가 있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편을 잔뜩 노려보고는 시댁행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시모는 잔뜩 우거지 상을 하고 시부 앞에서

"이거 이러면 되나.............? 이건 뭔가......................?"

모르는 척 입으로 시부를 다 시키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너무 싫어하니 그만하자고

나 어깨도 무릎도 탈이 나는 걸 보니 제사를 지내서

하나님께 벌 받는 것 같다고 앓는 소리를 하셨다고 한다.

본인 살자고 나도 팔고 하나님도 팔고...)


그렇게 시부의 뜻대로기어코 본인의 어머니 제사를 지내고 자리에 앉았다.

시부의 뜻에 모두가 흡족해하지 않으니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셨던 걸까?

시부는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냐면........,,,,,,,,,,,,........."

아주 거창하고 거창하게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했던 일을

정상적인 어미라면 아직도 하고 있는 일들을

나열하고 애달파하고 찬양했다.

가만히 듣고 있는 나에 시부는 갑자기 질문을 했다.

"나는 말이야. 어려서 어머니나 형님이 하시는 말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꾹 참고 해 냈었지.

그것이 올바르다고 믿고 했단말이다.

야! 너! 애비 없는 호로새끼라고 아니?

사람들이 호로새끼 호로새끼하지?

애비 없는 호로새끼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부모님이 하라고 하면 뜻이 맞지 않아도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순종했어.

그게 맞으니까 하라고 하는 거지.

애비 없는 호로새끼라는 말 안 들으려면. 그게 부모한테 못 배워서 그렇다는 거랑 똑같거든."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남편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본인 부모가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폰 만 보고 있었다.

시모는 우리 남편 잘하고 있네 응원을 하듯 못 들은 척 과일을 먹고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귓가에 맴도는 그 말.

애비 없는 호로새끼.


밤새도록 잠이 오질 않았다.

다복하게 살다 피지도 못 한 꽃다운 스무 살에 타인의 잘못으로 아버지를 잃고

무너지지 않고 번듯하게 살아내고 자리 잡은 어린 소녀에게.

전쟁으로 4살에 아버지를 앓고 평생을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아온 70넘은 노인이 한 말이.

애비 없는 호로새끼?

애비 있는 본인 자식도 안 도운, 본인 어미의 제사상을 차린 남의 자식에게??

본인 자식도 이해 못 한다는데 싫다는데 왜 나에게....?


그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 물어볼 곳이 없었을 것이고

가장 힘들 때 기댈 곳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 말고 책임져 줄 사람도 없을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억울하고 보고 싶고 원망과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자가 그런 말은 한다는 것은

백 프로 악의적인 감정일 것이다.


이 말이 서운하다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별거 아닌 걸로 시비 걸지 마. 그냥 한 말인데 네가 성격이 꼬여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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