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이 곧 법이다.

하늘아래 나만 산다.

by 몽운

10년 동안 끊임없이 그(남편)와 그들(시부모)을 이해해보려고 했었다.

어느 날 상담을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 가족을 대표해서 지금 이곳에 와 계시네요...."라고 하셨다.

그때는 고난 중에 있던 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를 못하였다.

어느 날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의 저자 원은수 선생님이 출연하신 닥터프렌즈(유튜브)의 영상을 보면서 탁! 하고 무릎을 치게 되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런 거구나.

나르시시스트라면 모든 것들이 해석이 가능했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날씨는 급격하게 겨울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의 중환자실 입원으로 발을 동동거렸어야 했던 시간들.

출산 직후 누워 있던 나에게, 그들이 회복실에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전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잔뜩 퉁명한 얼굴로 앉아서는

"많이 부었네? 수액 맞았니? (남편을 바라보며) 너 얼른 가서 밥 먹어라. 밥도 못 먹었지? 아침은 먹었니? 배가 많이 고프겠다. 요 근처에 갈비탕이라도 먹고 와. 잠도 못 잤는지 얼굴이 핼쑥하다...."

등등의 말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아기를 바로 보지 못해서 얼굴이 퉁퉁 부었던 것이었을까..


중환자실에는 보호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기를 보지 못하니 그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내 자식이 효자이다. 비록 아파서였지만 그들을 내 눈앞에서 일찍 사라지게 해 주었으니.

3일의 입원 기간 동안은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았고,

그는 배려가 남다른 장모의 도움으로 집에서 자고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입원 연장이 불가능하여서 아이와 같이 퇴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병원 산후조리원에 자리가 없어서 산후조리원을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초유를 먹이겠다는 일념하에

(책으로 본 데로 육아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던 시절이었다.)

회복실에서도 면회시간마다 초유를 짜서 날랐다.

무슨 정신으로 마사지를 해댔는지 모르겠다.


3일 후,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이동을 했다.

남편은 조리원에서 출퇴근을 하였다.

그는 총각시절 생활을 그대로 해야 하던 사람이라 그 3주간의 시간을 굉장히 답답해했다.

밤에는 본인이 만든 술자리든 뭐든 늦게까지 술을 먹어야 하고 새벽에는 헬스나 골프를 나가야 하는데

아기와 산모가 있고 다른 보는 눈이 많은 이곳이 불편했나 보다.

3주 동안 매일 퇴근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본인 마실 술과 안주가 손에 들려 있었다.

나중에는 술 마신 후에 코골이가 듣기 싫어서 여러 날은 집에 가서 자도 된다고 말했고

그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아이가 입원해 있었던 2주 동안 하루 2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초유를 들고 날랐다.

그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걸어갈 수 없는 거리여서 매일 택시를 타야 했다.

잡히지 않는 날에는 면회시간을 놓쳐서 행여 아기 얼굴을 보지 못할까 봐

퉁퉁 부어서 맞는 신발이 없어 수면양말에 슬리퍼 차림으로 병원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초겨울 찬바람이 패딩을 비집고 들어와도 누구 하나 나를 데려다줄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 면회시간이 다가와서 요청을 한 날도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고 청한 요청은

'하루 정도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초유를 먹이지 않는다고 큰일 안 난다'는 말로 되돌아왔다.

단지 초유 때문에 내가 면회를 간다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까..?

찌를 곳도 없는 작은 몸에 맞은 수액바늘 자국과

입속에 연결된 작은 관과 산소 호흡기가 아른거리고

아이의 상태는 어떤지 선생님께 물어보고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그와 그들은 정말 모르는 것이었을까..?

그도 보았으면서... 그는 내가 아니라지만.. 본인도 부모인데 왜 몰랐을까..?


그렇게 발을 동동 거리며 애태우던 아이의 2주간의 입원생활이 끝이 나고,

드디어 아이도 산후조리원으로 올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들에게 태워달라 요청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삭쯤 있었던 일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그들도 나의 상태를 궁금해하진 않았다.

단지 그들의 아들의 핏줄이 궁금했던 것 일뿐이었다.


아이가 산후조리원으로 오자 그들은 매일매일 아이의 사진을 요청했다. 가끔 전화도 했다.

"얘! 애는 괜찮니? 네가 데리고 자니?"

"잠은 따로 자도 돼서 컨디션에 따라서 하고 있어요."

"그래? 호강이다. 밥은 잘 나오니?"

"네 밥은 잘 나와요..."

"그래 밥은 안 해도 되니 많이 먹고 젖이 돌아야지. 그래야 아기밥을 주지. 애비 밥은?"

"아... 같이 여기서 먹고 나가요.."

"그래? 저녁은?"

"와서 먹거나 사 오기도 해요.."

"그래? 아비가 고생이네. 편히 쉬지도 못하고 거기서 계속 자니?"

"네..."

"네가 집에 가서 쉬라고 해라. 거기 있는다고 애비가 할 일도 없잖니? 일하는데 피곤하다."

"................."

"그래, 조리원 천국이라지?? 임신 특권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거기서 마사지도 받고 그러니?"

"네... 패키지예요. 어머니.."

"좋구나. 밥도 주고 마사지도 해주고 애도 봐주고. 천국 맞네. 젖은 잘 나오니? 모자라지 않아?"

.....

....

...

늘 이런 종류의 대화였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화들.

그는 늘 말했다.


네가. 걱정돼서. 염려하시는 거지.



아이가 오고 며칠 되지 않아 시부모는 면회는 언제 갈 수 있냐고 물어댔다.

분명히. 올 수 없다고 여러 날 여러 번을 말했다.

현재 독감이 유행이라 외부인의 방문은 최소화하고 있다고 전화로 통화한 상황이었다.

오고 갈 때마다 소독을 하고 아빠들도 마스크를 하고 문 앞에서 전신 소독을 하고 입장하였다.

아마도 주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했다.

"지금 아빠랑 엄마 예배 마쳐서 오신다는데 내가 가서 살짝 문 열어주면 안 되나?"

(이것은 무슨 도른 자의 발상이지?????!!!!!!!)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말했잖아. 안 된다고. 내가 아니라 조리원에서 안 된다잖아.

독감이 유행이라서 지금 계속 뉴스에도 나오는데."

"그럼 아기를 잠깐 데리고 나갔다가 오면 안 되나?"

(신생아를?? 이 날씨에?? 지금 저게 말인건가??)

"병원 말고는 아기도 못 나간다잖아. 당신은 알만한 사람이 왜 이래? 무슨 생각이야 그게??"

"아! 그냥 살짝 나갔다가 오든 하면 되지. 그럼 지금 온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의 언성이 높아지며 짜증과 신경질이 섞인 비난을 하려고 했다.

"당신이 말을 제대로 잘해야 할 거 아니야!! 이게 이럴 일이야???

당신이 조리원 실장님한테 허락받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야. 이게.!!"





그렇다...

그도 나르시시스트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가스라이팅을 평생 당한 희생자였다.

그에게 그들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존재.



그들은 모두의 희생과 피해의 가능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돌진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1층으로 내려가 실장님을 찾았다.

그가 말하면 또 반말 아닌 반말(서비스직을 함부로 하는 그들과 그의 말버릇)을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표정과 말투를 할 것 같았다.

"실장님... 너무너무 죄송한데 지금 시부모님들이 오고 계시데요......"

"산모님. 지금 저희도 면회해드리고 싶은 정말 위험해서 그래요.

산모님 면회도 금지신걸요..

한 명이 걸리면 아이들 전부가 위험해져서

아버님들 오실 때도 꼭 전신 소독 진행하고 마스크도 부탁드리고....

어떡하죠.. 정말 위험할까 봐 그래요.."

"네네... 알고 있어요... 정말 저도 이러다가 일 생기면...

너무 염려스러워서 정말 여러 날을 이야기하고 또 했는데..

남편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건지 막지를 못 하고 있어요...

실장님 너무 힘들어요.."

참았던 눈물이 울컥 올라오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들이 도착하고 그는 선생님들 몰래 문을 열어준 것 같았다.

"아하~ 죄송합니다~."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시부모가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아기실에 계신 선생님들은 혼비백산이 되셨고

신생아실에 실장님께서는 "어르신!!! 어르신!!! 그냥 들어오시면 안 되셔요!!"를 외치며

달려 나오고 계셨다.

이 순간이 마치 스로우모션처럼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연극을 하는 것 같은 톤의 시부의 "아, 죄송~합니다." ,

뻔뻔한 표정과 걸음걸이,

등신같이 서 있는 그의 멍청한 표정,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시모의 기웃거림.


속 된 말로 너무 무식하고 쪽팔려서 사라지고 싶었다.

나의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에 조리원 실장님이 단호하게 출동하셨다.



"어르신 안 되십니다. 아기들이 모두 위험해요. 나가주십시오."


실장님의 단호함에 강약약강이던 그와 그들은 멈칫 행동을 멈추고 물러났다.

실장님께서 그들을 문 밖으로 내 보낸 후 나는 연신 머리를 숙여 사과를 드려야 했다.

실장님께서는

다른 산모들이 보기 전에 문화실 창문에서 보실 수 있도록 아기를 잠시 데리고 문화실로 오셨다.

그들은 조리원 밖에서 유리벽을 통해 아기를 몇 십 초 확인했다.


너무나 놀라웠던 것은 그 이후의 그들의 반응이다.

그는 "뭐 이걸로 큰일 난다고 유난스럽게....."라고 했고

시부는 "안 되는 게 어딨어! 하면 다 되는 거지. 지금도 결국 봤잖아?"

시모는 "그냥 보는 건데 되게 까다롭게 군다. 오자마자 휙 데려가고 안아보지도 못하게 하고!"라고 말했다.

이렇게 순식간의 조리원을 헤집어 놓고 시부가 봉투를 건넸다.

아들에게 줘도 되었을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그와 그들은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당신들끼리 속딱 거리고

본인들이 본인들의 행위를 찬양받고 싶을 때 나에게 직접 어필을 한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교묘히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거나 비난한다.)

"이거 너 조리하는데 보태거라."

그 모습을 보는 그의 눈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는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모는 며느리 조리원비도 보태주는 대단한 부모야. 이제 네가 감사하고 찬양해야지??'


그들이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구는 무식함과 이기심에 놀라워서 할 말을 잃고 있는 나에게

그의 행동과 표정과 말은,

그 또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또 한 번 멀어져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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