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

무슨 말을 해도 반응하지 말 것.

by 몽운
"그 집 계집애가 어쩌고 저쩌고......."
시모의 입에서는 오늘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비하하는
천박한 단어가 흘러나온다.
그들은 왜 여자를 그토록 비하하는 걸까?
계집애, ㅇㅇ년, 지랄 등등은 그들의 일상 언어이다.


시부의 타인을 향한 비하는 지능적이다. 내면에서부터 정해 놓은 서열에 따라 모든 대화에서 스며들듯이 틈틈이 때를 놓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흘러나온다.


이 불편한 공기는 다시 나를 조정하기 위해 나에게 불안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거늘...

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일까.

떨떠름한 공기의 의도를 인지하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그냥 다물고 있을 걸..

.

"부산 잘 다녀오셨어요? 거기 오징어 회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예전에 일하느라 간 적이 있는데 구경은 못 하고 식당은 꽤 갔었어요. 그때 실처럼 가늘 개 채 썰어진 오징어회를 먹고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나요."

"나는 오징어회 싫어."

네네.... 그러시겠지요....

오늘도 양념게장을 춉춉 빨고 있는 시모는

"난 게 별로더라. 먹기도 귀찮고. 어디 누구가 게장 먹다가 탈 나서 죽었잖아.

게장 그거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

결혼 2년째에 어느 저녁시간 남편이 내가 꽃게를 좋아한다고 말하니 하던 말이다.

10년이 지나 그 말은 잊었는지 아님 올해부터는 먹기로 한 건지 모르겠으나

쪽쪽 빨아가며 잘도 먹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너희 담주 일본 간다며?" 하는 소리에

"도쿄는 잠시 밖에 가보질 않았어요. 그것도 일하러 간 거라서 식사랑 공항밖에 기억이 안 나요."

"네가 일본을 일하러 갔었니?"

_ 시모의 아니꼬운 표정

"흐! 그렇겠지. 네가 사장도 아닌데 뭘. 가서 일이나 하는 거지. 네가 가서 뭔 구경을 하겠냐."

_ 시부의 콧방귀와 습관성 비아냥거리는 말투.





그들을 나의 삶과 분리하기로 결심하게 된 사건이 있고서도 내가 잠잠한 듯 시댁 행사와 명절에 참여하자

그들은 다시 착취와 조종, 굴림을 하기 위해 나르시시스트의 성향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시모는 "네가 아직도 꽁하게 있으니 내가 서운하다. 내가 얼마나 살겠니. 딸처럼 굴지 않아서 기분이 안 좋으니 전화안부를 좀 자주 해라. 전화하는데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하며 요구를 했다.

시부도 항상 아니꼽고 탐탁지 않은 표정과 말투 내리까는 눈빛으로 나를 대했다.

여전히 그들끼리 속닥이다가 내가 정확하게 말해 달라고 하면, 내가 있을 때 말했다며 우기며 얼버무리는 레퍼토리를 시전 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불리한 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언성을 높였으며 자신이 그랬을 리가 없다며 역정을 내었다.

이제는 나도 의견을 굽히지 않자, 비난과 회유를 반복했다.

이런 불편함 속에서도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누리기 위해 당연한 듯 나에게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그들은 멈추지 않고 나를 조종하려 들 것이다.


저런 말투와 태도는 이 집안에서 나에게만 해당된다..

이 집 며느리들이 다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동생은 그의 나르시시스트 부모로부터 세밀하게 개입해서 그의 아내와 그의 자녀를 보호한다. 강약약강인 그들은 본인의 아들이 거리를 두니 동서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 했고 그 한을 풀듯이 그들을 받아주는 장남과 맏며느리인 나에게 풀어댔다.

침묵 또는 비아냥과 무시를 무기로 삼는 시부는 동서에게는 굉장히 호의적이고 너그럽고 관대하셨다.

동서가 하는 말은 위트라고 하하 웃으시고, 내가 하는 말은 아비 없는 호르새끼의 말이라서 기분이 나쁘시다.

내 자식에게서 손주 보는 온갖 재미를 누리시고는 손 아래의 동서 아들에게 우리 집 기둥이라고 하시니, 가끔은 내가 이 집에서 맏며느리 요구만 받고 대우를 못 받는 이 구조 때문에 내 자식도 이 집에서 재롱만 착취당하는 관계는 아닌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다.


동서는 동서 나름대로 서운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나르시시스트적인 습성에서 나오는 피해 일 뿐.

나처럼 공격과 가스라이팅의 대상이 아니므로,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공격은 당하는 나만 느끼는 것이다.

그것에 반응했다가는 '네가 꼬였다. 네가 오해했다. 네가 예민하네.'로 끝이 나는 매일의 상황.

3명의 나르시시스트 사이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살려 내는 것은 생각보다 녹녹지 않았다.


양쪽 부모가 나르시시스트였던 그(남편)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언행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폭력적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절대로 이 상황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는 참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욕설과 폭언은 나의 몸과 정신과 영혼을 처참하게 짓밟기에 충분했다.


부모에게 배운 그대로였다.

온갖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그의 부모들처럼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상상할 수 없게 좋은 사람이었다.

비난과 무시를 일삼으면서도 양심과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강약약강을 절절하게 느끼는 세월이었다.

그 사이 부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인 시부모의 언행이 되돌이킬 수 없는 부부의 거리를 만들어 주었고

나르시시스트인 그의 행동은 그 거리를 더욱 단단하게 넓혀주었다.

그와 그들에게는 자기 탓이 없었다. 그래서 미안함도 없었다.


때로는 그들이 의도처럼 내가 예민해서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으로 빠질 때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근거 없는 죄책감에 휩싸일 때도 있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날들과 나의 무너지는 감정으로 피해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사실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아이 앞에서 감정이 컨트롤이 안 되는 날 들이 늘어났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너 만.
가만히 시키는 데로.
하면 돼.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나는 이 상황을 바꾸어야 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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