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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현 4시간전

혐오와 차별, 이해와 포용은 한 끗차이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 학원, 동아리 등 많은 그룹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 부서, 팀 등을 통해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많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느낀 것은 모든 사람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비슷한 성격이나 사람들은 있지만 자세하게 보면 개개인이 다 다른 성격이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어디까지 인정을 해야 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같은 사람 하나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왠지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속이 좁은 사람은 되고 싶지가 않아서 인정하고 이해하는 척을 해보기도 한다. 그리곤 내가 낼 수 있는 관대한 표정과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난 너를 이해했다’는 눈빛을 보내지만 애석하게도 이건 실제가 아니다. 이런 수박 겉핥기식의 사고로는 타인을 인정을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언젠가 자신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는 순간 ‘난 너를 이해했다’라는 눈빛은 ‘이거 완전 미친놈이구만’으로 바뀌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타인을 인정할 수 있을까? 우선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말을 뱉어내더라도 우선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주장을 펼치는지 상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그다음 해야 할 것은 ‘어떤 배경에서 저런 생각과 논리가 나왔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 두 가지 행동이 밑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상대도 인정할 수 없다. 특히나 의견에 대한 충돌로 토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더더욱 중요하다. 앞서 말한 두 가지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와도 토론을 할 수도 의견을 나눌 수도 없다. 이런 행동이 여러 사람을 통해 훈련된다면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말로는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말뿐인 이해가 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나와 다른 주장을 경청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의 의견과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과 주장 을 할 때 나의 생각과 주장이 옳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그리고 이런 확인 과정을 통해 여러 다양한 생각과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나의 생각과 주장은 점점 폭이 넓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넓어진 생각과 주장은 반대편에 대한 다양성이 부족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과 주장만 더해져 다양성을 가진다면 나와 다른 생각과 주장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쉽게 일어난다. 즉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사람의 생각과 주장 또한 경청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주장을 듣고 그 주장의 근거를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보다 더 다양한 사고와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다양한 사고와 생각을 통해 현재 나의 사고와 생각의 모순점을 찾아낼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타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타인을 인정하지 못하여 자기모순에 빠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발전이 매우 더디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훌륭한 주장을 한다고 해도 반대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결국은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옳다고 생각한 주장 역시 모순점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 다른 이야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정해야 한다. 그들의 우리와 왜 다른 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그 생각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말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만약 한 가지 주장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어떨까? 결국은 세력 간의 경쟁을 통해 최종 승리를 한 사람들의 생각대로 사회는 흘러갈 것이다. 이런 곳은 최종 승리를 한 사람의 생각이 법이고 정의다. 그리고 다양성이 바탕이 되지 않은 생각은 상대로부터 모순에 대한 공격을 당하면 그 방어기제로 모순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게 된다. 결국 승리 이후 남는 것은 모순투성이가 되어버린 주장과 생각이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할 때 사무실은 남자직원들만 근무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군대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나는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부조리한 면들을 하나씩 보게 되었는데 무조건적인 상명하복과 그에 따른 부적절한 명령, 언행 등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직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동을 한 부서는 일방적 상명하복이 없었다. 자신의 의견을 과감 없이 상급자에게 말할 수 있었고 회의를 할 경우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할 때는 보다 많은 업무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쓸만한 기획안은 반양이 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의 업무 성취율이 높아졌다. 그리고 직원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상사 모습은 과의 업무 능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그 개개인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이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결국 자신의 생각과 주장의 타당성을 이야기하고 그 반대에 있는 상대와 토론을 한다. 토론을 통해 더 많은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게 되는데 이때 모든 사람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화도, 토론도 더 많은 생각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리고 타인을 인정하는 힘이 부족하다면 결국 남는 것은 내 주장에 대한 취약점과 상대를 향한 혐오, 차별뿐임을 기억하며 상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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