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긁지 말고 카드를 긁자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 나오는 구절을 가지고 한번 더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마침 내일이 설날이기도 하니 말이다.
'글'이 동사 '긁다'에서 파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글쓰기는 긁고 새기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글은 여백 위에만 남겨지는 게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도 새겨진다.
마음 깊숙이 꽂힌 글귀는 지지 않는 꽃이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
때론 단출한 문장 한 줄이 상처를 보듬고 삶의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나는 필사를 할 때 가로 쓰기와 세로 쓰기를 병행한다.
에세이는 가로로, 노래 가사나 시는 세로로 적는다.
개인적으론 세로 쓰기를 더 좋아한다.
필사의 완성도는 세로획을 얼마나 정확하고 예쁘게 그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데, 세로 쓰기는 기준선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ㅡ'와 같은 모음은 물결선처럼 처리해 필사에 리듬감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내 눈엔 세로로 쓴 글씨가 조금 더 예뻐 보인다.
'글'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형태학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는 글자이다.
초성 'ㄱ'은 지붕처럼 아래 글자들을 보호해 주고, 모음 'ㅡ'이 수평선을 그으며 중심을 잡아주며, 'ㄹ' 받침은 주춧돌처럼 받쳐줘 안정감을 준다.
'글'이 '손톱이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문지르는 것'을 뜻하는' '긁다'에서 파생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실제로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 우리의 조상들은 거친 바위벽이나 거북의 등껍질을 긁어 그림이나 추상적 기호 같은 흔적을 남기곤 했다.
그 흔적들이 진화를 거듭해 지금 우리 곁의 '글'이 된 것이다.
단순히 곁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다.
어떤 글귀는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져 위안을 주고, 상처를 보듬고, 삶의 허기를 달래준다.
또 어떤 글귀는 '마음 깊숙이('깊숙히'인줄 알고 있었다. ㅠㅠ) 꽂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처럼 향기를 남기기도 한다.
반면 최근 SNS나 방송에서 '긁혔다'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이는 피동사 '긁히다'의 과거형으로 단순히 물리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뜻을 넘어, '상대방의 말에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빠져서 반응하게 되었다'는 사회적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자동차나 가구와 같은 물건의 표면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처럼, 평온하던 마음에 흠집이 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긁혔다'라는 표현은 자기 복제를 통해 '너 방금 긁혔니?'를 의미하는 '긁?', 상대방을 더 화나게 만들기 위한 '긁혔쥬?', '적은 비용으로 가성비 좋게 상처 입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가성비 긁' 등의 유행어가 되어 상대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도구로 소비되고 있다.
한 글자가 더 들어갔을 뿐인데 이 낱말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이처럼 정반대다.
그 이유는 '글(긁다)'은 내가 주체가 되는 능동의 행위이고, '긁혔다'는 타인에 의해 당하는 피동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스스로 마음을 긁어 새기면 지지 않는 꽃 같은 '글'이 되는 되지만, 남에 의해 무분별하게 '긁히면' 그것은 스크래치(상처)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의에 의해 긁힌 상처는 다시 '글쓰기'라는 자발적인 '긁음'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
우리가 '글쓰기'를 하든 '글씨 쓰기'를 하든 어떤 형태로든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필사'가 유행하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또한 나의 말은 가급적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긁히는 경우는 '글'보다는 '말'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들음에서 생기고 후회는 말함에서 생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쓰기와 글씨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의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의 마음에 지지 않는 꽃을 피우기 위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려고 노력한다.
'꼰대 아저씨'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러니 올 설날엔 세뱃돈은 두둑하게 건네되,
덕담으로 포장한 잔소리(학업, 취업, 결혼, 출산 )는 넣어두시길.
가족 및 친지들의 마음은 '긁지' 말고 카드만 마구마구 '긁'는 멋진 어른들이 되시길.
그렇잖아도 얇은 내 지갑이 태수 작가의 표현대로 '반건조 오징어'처럼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세뱃돈플레이션(세뱃돈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신조어) 때문이다.
이게 모두 다 5만 원권 지폐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조폐공사에서 10만 원권 지폐 발행을 위한 위인 조사 설문을 한다는 뉴스 기사를 접하곤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계획은 잠정 중지되었다.
참 다행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