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의 감옥에서 '나다움'으로 탈출하기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를 보고

by 김종명

요즘 태수 작가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읽고 있다.

오늘 읽고 필사한 에피소드는 '나는 명품백을 들고 삼각김밥을 먹어'




태수 작가의 지적처럼 한국인들의 명품에 관한 집착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별나다.


전 세계적인 불황과 소비 심리 위축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작년 한 해 약 153억 달러(한화 약 21조 원) 어치의 명품을 수입함으로써 전 세계 명품 업체들의 핵심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5년 경제성장률은 2%를 겨우 넘겼지만 그에 반해 명품 시장은 매년 5~7%를 훌쩍 넘어 성장 중이다.


1인당 소비액으로는 미국과 중국을 앞질러 압도적 세계 1위다.

(이런 건 1위 안 했으면 좋겠다. ㅠ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 급 나누기 문화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의 급 나누기 문화는 유별나다.


서울을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요즘은 그 강남마저도 테남(테헤란로 남쪽)과 테북(테헤란로 북쪽)으로 다시 나눈다.

대대로 상속을 통해 축적된 부를 가진 기득권 부유층(올드 머니)들이 전문직이나 창업 등으로 단기간에 부를 얻은 '벼락부자(뉴머니)'들을 자신들에게서 떼어 놓고 싶은 과정에서 생긴 현상이다.


대학을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등으로 줄 세우고 있다.

대학가 게시판에서는 이 순위를 놓고 매일 박 터지게 싸워댄다.


아파트는 1군 브랜드와 2군 브랜드로 나뉘며, 1군 브랜드조차 지역에 따라 하이엔드 브랜드(푸르지오 써밋, 디에이치, 아크로, 르엘)와 일반 브랜드(푸르지오, 힐스테이트, 이편한세상, 롯데 캐슬)로 다시 나뉘어 재건축 진행과정에서 어떤 브랜드로 할 것인지의 문제로 건설사와 재건축 조합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경쟁 과잉'이 휩쓸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돈과 명예'가 유일한 성공의 기준점이 되다 보니, 내가 남보다 우위에 있음을 어떻게든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명품 안에서도 다시 급이 나누어진다고 한다.


소위 '에루샤' 정도만 명품 취급을 받고 나머지 브랜드는 명품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에루샤'는 자기들을 '명품' 대신 '하이엔드' 브랜드'라고 불러달라고 한단다.


두 번째 이유는 집단 동질성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소위 '남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명품을 나만 가지고 있지 않으면 쪽팔려서 못 산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나오는 미진 씨도 명품 백 하나를 사기 위해 삼각김밥을 백 개나 먹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삼각김밥은 맛있다. 김치 참치 김밥은 더 맛있다.)


또한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자산 격차가 커지면서,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명품을 구입해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는 '스몰 럭셔리' 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의 밑바탕에는 '관심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존재한다고 태수 작가는 말하고 있다.

즉 '인정 욕구'가 이 현상의 모든 원인이라는 것이다.


오늘 몰아보기를 끝낸 본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에는 주인공 사라 킴(신혜선)의 아래와 같은 대사들이 등장한다.

출처 : 네이버


"옥스퍼드 학위가 왜 필요했냐고? 한국에서 그 종이 한 장은 에르메스 버킨백보다 백 배는 더 강력한 프리 패스니까. 사람들은 내 눈이 아니라 내 졸업장을 보고 웃어주거든."


"내가 명품이 되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라 킴은 인정욕구의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지적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을 옥스퍼드 졸업생이라고 사칭한다.

그 거짓말 위에 자신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정상적인 졸업이 아닌 논문 대필로 졸업했다는 거짓말을 보탠다.

이는 '나는 당신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한마디로 급이 다른 존재다'라는 무언의 선언이다.


자신이 세운 가짜 명품 브랜드 '드부아'를 어떻게든지 진짜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사기와 위장 결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드부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까지도 포기하고 '김미정'으로 감옥 생활을 한다.


감옥에 있는 '김미정'을 찾아온 박무경(이준혁)이 '사라킴은 무연고 화장 처리되었고, 드부아는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자 '김미정'은 이렇게 답한다.


"제가 없어도요!"

"다행이네요"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드부아가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잘 나간다는 사실에 실망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나는 명품에 별 관심이 없다.

솔직히 명품을 살 능력도 안된다.

하지만 나에게도 '인정욕구'는 피해 갈 수 없는 장애물이다.


한 달 반 전부터 시작한 블로그 때문이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웃이 몇 명 늘었는지, 내 글을 몇 명이나 읽었는지, 몇 개의 댓글이 달렸는지 확인했다.

더 많은 이웃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블로그를 방문해 이웃 추가 신청과 댓글을 정성스럽게 달아 드렸다.

이웃과 댓글의 숫자로 내 글이 평가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잖은 에너지가 소비되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상당했다.


그래서 블로그는 일상생활 기록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캘리그래피 산문집 출간'이라는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다행히 브런치 작가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나는 우울이와 친구가 되기로 했다'라는 브런치 북을 개설하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라이킷과 팔로워 수가 문제였다.

내가 올린 글에 찍힌 라이킷 숫자와 팔로워 수가 계속 신경 쓰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라이킷을 알리는 진동이 울리고 있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속물근성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레이디 두아'로 돌아가 마지막 회에서 답을 찾아본다.


박무경(이준혁)이 감옥에 있는 사라 킴을 찾아가 묻는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문일 겁니다."

"답 또한 단일하고 간결합니다."

"이름이 뭐예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젠장! 돌고 돌아 또 테스 형이다.)

미메시스(Mimesis) 적 욕망에서 벗어나 '나다움(Individuation)'을 찾아가야 한다.


남들이 나를 보고 "우와"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나를 보고 "우와" 할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몰입(Flow)의 즐거움'을 주는 공부나 취미 생활을 찾아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부터 자신이 없다.




인정욕구를 극복하는 건 천천히 하기로 하고, 드라마 '레이디 두아' 메인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아래 대사와 관련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와 관련된 대사이기 때문이다.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할 수 있나요?"


나는 '가짜라고 할 수 없다'에 한 표를 던진다.

누가 만들었지는 보다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원가가 8만 원인 380만 원짜리 진품과 원가가 100만 원인 200만 원짜리 모조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얼마 전 원가 8만 원짜리 백을 380만 원에 팔았다는 어느 해외 명품업체에 날리는 나의 소심한 견제구다.


똑같이, 아니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통해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지만 특목고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터디 모임에 낄 수 없었다고 고백했던 어느 학생의 탄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고현정이 결혼 후 시댁 동서들에게서 받았다는 수모,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불어로만 대화했다는, 그 기사를 접하고 분노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우리의 부모님께서 온 힘을 다해(?) 정성껏 만드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하이엔드급 명품'들이기 때문이다. &*




※ '우와! 제법 간지 나는 마무리다.'

별 볼 일 없는 문장이라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우와!' 하며 감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전 10화마음 건조기가 있다면, 내 마음도 뽀송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