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건조기가 있다면, 내 마음도 뽀송해질까?

눅눅해진 내 마음 꺼내 봄볕에 말리고 싶은 날

by 김종명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 지난 월요일(2월 16일) 4남매와 조카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설 당일은 시댁에서 보내야 하는 여동생의 사정 때문에, 우리 집은 늘 설명절 전날 저녁을 함께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족 대항 윷놀이를 하며 떠 뜰썩한 시간을 보냈건만, 올해는 아버지의 상태 때문에 그런지 누구 하나 선뜻 윷놀이를 하자는 이가 없었다.


그 고요함이 못내 서글퍼 씁쓸한 마음을 달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식사를 끝내고 헤어질 무렵, 남동생이 수건 세트를 건넸다.

동생네 처남이 관리하고 있는 골프장 개장 기념 수건이라고 했다.

마침 오래된 수건들을 교체하려던 참이었는데, 참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어제 세탁을 마치고 건조기에서 막 꺼낸 따끈따끈하고 뽀송뽀송한 수건들을 가지런히 개어 화장실 수납함에 채워 넣었다.


알록달록한 수건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참 예쁘다.

가지런히 정돈된 수건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동생의 선물은 단순한 선물의 의미를 넘어 올 한 해 나의 일상도 따끈따끈, 뽀송뽀송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선물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옷장에 있는 옷들을 모두 꺼내 계절별, 종류별로 다시 정리한다.

2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의류 수거함에 넣는다.

내 마음속 가득히 자리 잡은 쓸모없는 잡생각도 함께 수거되기를 바라면서.


설거지하는 것도 좋아한다.

뽀득뽀득, 깨끗하게 씻긴 그릇들을 차곡차곡 쌓고 나면, 얼룩지고 엉킨 내 마음도 씻겨 정리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집엔 식세기가 없다.




실제로 집안정리와 설거지가 주는 심리적 보상은 생각보다 크다.


상실했던 인생의 '주도권'과 '자기 효능감'을 다시 체감할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설거지통의 그릇과 어질러진 옷장은 내 손길에 의해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뇌는 눈앞의 시각적 혼란을 처리하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쓴다고 한다.

따라서 물건을 종류별로 줄 세우고 안 입는 옷을 버리는 행위는 뇌의 과부하를 줄여주어, 불안감은 낮추고 집중력은 높여준다고 한다.


과거와의 결별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기도 하다.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옷이나,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을 비워냄으로써 마음속에 남아있던 '과거의 미련'을 정리하고 그 심리적 공간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움으로써 우울감을 떨쳐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2014년 발표한 플로리다 주립대의 연구처럼, 설거지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27% 감소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문득 간절한 바람이 하나 생긴다.

눅눅해진 내 마음도 건조기에 돌려 뽀송뽀송하게 말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마음 건조기'가 만들어진다면 가격이 얼마이던간에 당장 살 텐데.


더 큰 바람이 뒤따른다.

눅눅해진 내 마음 꺼내 건조기가 아닌 따사로운 햇볕에 바짝 말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려 이적의 노래 '빨래'에 관한 캘리를 써 보았다.

그림은 핀터레스트에서 본 작품을 모사하였습니다. 작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님 죄송합니다 ㅠㅠ




참고로,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딸과 단둘이 살다 보니 이 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조금만 방치해도 올라오는 악취와 여름철 들끓는 날파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도 써봤지만 건조 과정에서 생기는 꿉꿉한 냄새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여름철에만 사용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그냥 음식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고 만다.


'음쓰'가 읍쓰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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